[삶과 문화] 종자테러의 위협

입력 2020. 8. 1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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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테러'라는 무시무시한 용어가 국내외 언론 매체에 계속 등장하고 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위험한 종자를 방출한다면 그 행위는 바이오테러에 해당한다.

이번처럼 맨눈으로 보이는 씨앗도 바이오테러의 징조로 볼 수 있을까.

특히 식물의 씨앗을 이용해 전염병을 확산하는 행위를 가리켜 종자테러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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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바이오테러’라는 무시무시한 용어가 국내외 언론 매체에 계속 등장하고 있다. 발신지가 중국으로 표시된 정체불명의 씨앗들이 미국 가정에 배달된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이후 배달 양상은 복잡해지고 있다. 발신지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등 아시아 국가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잠비아까지 다양해졌다. 받은 곳은 미국과 캐나다의 모든 주를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인도, 일본, 그리고 한국까지 이어졌다. 각국 정부는 즉시 이렇게 발표했다. ‘절대 땅에 심지 말고 신속히 신고할 것.’ 고작 식물 종자에 웬 호들갑일까 싶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한 국가의 사회 경제 체계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위험한 종자를 방출한다면 그 행위는 바이오테러에 해당한다.

포장지에는 전자제품, 보석, 장난감 등 엉뚱한 이름이 표기돼 있다. 종자를 다른 나라로 보낼 경우에 필요한 승인과정이나 검역 절차를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미국 농림부에 따르면, 종자는 평범해 보였다. 로즈메리나 민트 같은 허브류, 장미나 나팔꽃 같은 화훼류, 그리고 양배추, 오이 등 채소류였다. 다만 현재까지 확인된 결과가 그럴 뿐이다. 정체가 불확실한 것도 있고, 겉으로 멀쩡해 보이지만 치명적인 병원체를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동안 바이오테러라는 말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병원체를 특정 지역에 살포하는 행위를 주로 의미해 왔다. 2001년 미국 뉴욕의 9ㆍ11테러 직후 발생한 탄저균 사건이 대표 사례이다. 미국 전역에 탄저균 포자가 담긴 편지가 배달됐고, 5명이 사망했다. 한편에서는 특정 바이러스 유전자의 합성과 변형에 성공했다는 연구가 발표될 때마다 바이오테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가령 수천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사라진 스페인독감바이러스의 유전체가 실험실에서 복원됐을 때, 또는 조류독감바이러스 유전자를 변형하니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도 전염될 수 있겠다는 소식이 들릴 때 그랬다.

이번처럼 맨눈으로 보이는 씨앗도 바이오테러의 징조로 볼 수 있을까. 최근 학계의 논의를 찾아보니 그럴 가능성이 커보였다. 먼저 병원체의 공격 대상이 인간에서 농업 분야, 즉 농작물과 가축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주장이 꽤 눈에 띄었다. 한 국가의 식량체계를 건드려 궁극적으로 세계 경제와 무역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농업테러(agroterrorism)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었다. 특히 식물의 씨앗을 이용해 전염병을 확산하는 행위를 가리켜 종자테러라고 부른다. 국제연합(UN)에 따르면, 생물무기로 사용될 잠재적 위력을 갖춘 농작물의 질병은 10가지 이상이라고 한다.

종자테러의 또 다른 위협은 생태계를 교란하는 일이다. 워낙 왕성하게 성장하기에 토착종이 잘 자라지 못하게 하고 인간에게 꽃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등 나쁜 영향을 미친다. 국내의 경우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계 교란식물은 16종이다. 지난 6월 전북지방환경청이 섬진강변에 무성히 자란 가시박을 제거한 행사는 외래식물의 고질적인 침입과 폐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다만 현재까지의 생태계 교란은 인간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이에 비해 의문의 씨앗은 누군가의 의도로 세계 곳곳에 배달되고 있다. 혹시라도 종자테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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