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노재팬 거셌지만..닌텐도 게임 등 대체재 없으면 사는 '선택적 불매'

황정일 입력 2020. 8. 15. 00:03 수정 2020. 8. 15.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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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품 불매운동 1년
아사히 매출 반토막, 유니클로 폐점
식음료·소비재 등 영업이익 급감
닛산·인피니티는 16년만에 철수
밀레니얼 세대, 개성 중시 소비
마니아 있는 카메라·담배도 건재
렉서스 등 차는 할인 공세로 버텨

노 재팬(No japan). 지난해 7월, 일본이 한국을 대상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자 인터넷을 중심으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일본 제품은 사지 않고, 일본은 가지 않는 운동이었다. 단순히 수출 규제에 대한 반격이 아니었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경고였다.

일본이 느닷없이 수출 규제 카드를 꺼낸 이유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2018년 10월)이었기 때문이다. 불매운동 1년여 만에 어떤 회사는 매출이 반 토막 났고, 어떤 회사는 아예 한국에서 철수했다. 이에 대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우리나라 네티즌이 감정적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잘 대응하면서 그 역할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불매운동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기업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한국에 진출한 일본 소비재 기업 31곳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평균 6.9%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1.3% 급감했다. 특히 식음료 업종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9.5% 줄었고,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모두 적자 전환하는 등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아사히 맥주로 유명한 롯데아사히주류는 지난해 매출이 반토막(-50.1%) 났다. 영업손실만 308억원을 기록했다. 자동차·부품(-16.8%), 생활용품(-14.5%), 기타(-11.4%) 업종의 매출도 1년 전보다 10% 이상 쪼그라들었다. 완성차 업체 혼다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2.3%(1041억원) 줄었고, 146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또 다른 완성체 업체인 닛산과 인피니티는 한국 진출 16년 만에 아예 철수를 결정했다. 생활용품 중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인 유니클로는 이달에만 국내 9개 매장을 폐점한다.

지난해 8월 187개에 달했던 유니클로의 국내 매장 수는 이달 말이면 165개로 준다.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31.3%인 4439억원 감소했고, 240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일본의 또 다른 SPA 브랜드 지유(GU)는 이달 말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화장품업종 매출은 7.3%, 유통업종은 3.4% 각각 줄었다. 편의점 한국미니스톱의 매출은 3.1% 줄었다. 한국미니스톱은 일본 미니스톱이 96.06%, 전범기업으로 알려진 미쓰비시가 3.94%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본 제품이 타격을 받은 건 아니다. 닌텐도 스위치의 인기 게임 ‘동물의 숲’은 불매운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한국닌텐도는 지난해 매출 2000억원대를 회복했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과 네티즌은 ‘본인 편의대로 불매를 하는 나라’ ‘한국만의 독특한 편의주의’라며 비아냥댔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소니코리아도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2336억원 증가했다. 이 밖에 ABC마트나 아식스코리아, 한국오츠카제약 등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 궐련담배인 메비우스(옛세븐일레븐)·카멜을 파는 일본 담배회사 JTI 역시 불매운동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불매운동이 특정 상품·기업에 치우치는, 결과적으로 이른바 ‘선택적 불매운동’이 진행된 셈이다. 서 교수는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불매운동이 일본 여행, 맥주, 자동차 분야 등에서 큰 타격을 입혔지만 반대로 한국 쪽에도 피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유통 업계에선 “최근 20~30대의 소비 습관이 영향을 끼친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른바 ‘밀레니얼(MZ·1980~2000년대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2000년대 Z세대를 통칭)’ 세대로 불리는 2030은 사회적 분위기를 따라가는 경향을 보이면서도 개성을 중시하는 특성도 보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0% 이상, 기업 구성원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박은아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의 불매운동이 애국이라는 하나의 신념에 기반을 뒀다면 최근의 불매운동은 한 가지 잣대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것 같다”며 “2030이 불매 제품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은 대체재의 여부”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불매운동 여파를 피해간 제품은 사실상 대체재가 없다. 닌텐도 스위치도 그렇고, 소니·캐논·니콘 등 일본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카메라 시장도 그렇다. 아이가 원해서 동물의 숲을 구매했다는 심지혜(41)씨는 “맥주나 옷은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상품이 있지만 동물의 숲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매출이 급락하면서 할인으로 소비자를 유인, 매출 감소폭을 줄인 예도 있다. 자동차 시장이 대표적이다. 일본 완성차 업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1000만원 이상 할인을 시작했고, 그 결과 지난해 12월 일본 완성차 5개 브랜드의 판매량이 3670대를 기록하는 등 증가세를 보였다. 그중에서도 도요타·렉서스의 판매량이 증가했다. 렉서스는 할인과 신차 효과로 올 6월 불매운동 이후 처음으로 월간 판매량 1000대를 회복하기도 했다. 도요타 역시 신차 효과 등으로 4월과 5월 각각 1128대, 1096대를 팔며 불매운동 이전 실적을 회복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은 불매운동이 무색해졌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불매운동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론조사업체인 데이터리서치가 6월 29일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5.9%는 계속 불매운동에 참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산업계도 당분간 불매운동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이 4일 한국 법원의 국내 자산 압류 명령 결정에 불복하는 즉시항고장을 제출하는 등 한·일 관계가 여전히 차갑기 때문이다. 법원이 항고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기간 동안 자산 매각 절차는 중단된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명확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한국 정부에 조속한 해결책을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가해 기업의 자산이 실제로 현금화한다면 강력한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혀왔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으로도 성공적인 불매운동을 이어가려면 타인에게 불매운동 강요 등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제품을 샀거나 이용한다고 해서 비판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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