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홍콩은 왜 사라졌나

반기웅 기자 2020. 8. 1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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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국에서 홍콩이 사라졌다. 지난해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때와 다른 양상이다. 정부는 홍콩과 관련해 별도의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일국양제 하에서 고도의 자치가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6월 일본·영국·호주 등 27개국이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통과에 우려의 뜻을 표명했을 때도 한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정치권도 홍콩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시민사회 목소리도 사그라들었다. 지난해 홍콩 송환법 시위와 맞물려 활발하게 이어지던 지지 행진과 시위, 성명도 올해는 빈도가 줄었다. 공개적으로 홍콩 민주화 세력 지지를 표명했던 종교계 역시 홍콩보안법 문제에 대한 발언을 꺼리고 있다. 통과된 지 두 달도 안 된 홍콩보안법의 위력이 시민사회의 국제연대에도 균열을 낸 것이다. 홍콩 민주주의는 이대로 무너지는 걸까.

지난 6월 4일 민주화 운동 31주년 추모집회가 열린 홍콩 코즈웨이베이. AP연합뉴스


■홍콩 민주화 지지했던 종교계 발언 꺼려

지난해 6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범죄인인도법이 인권과 민주주의, 시민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홍콩 교회와 시민을 향한 연대를 표명했다.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의 투쟁에 종교계가 힘을 보탠 것이다. 당시 홍콩기독교협의회(HKCC)는 “범죄인의 중국 본토 송환 규정이 정치적·종교적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정치적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며 한국기독교협의회를 비롯한 종교계에 도움을 청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연대 성명은 홍콩 언론에도 보도됐다. 이후 중국기독교협회(CCC)가 해당 성명을 문제 삼았다. 중국 공산당 간부 상당수가 회원인 중국기독교협회는 성명 내용 가운데 “홍콩 지도자 선출을 위한 민주적 방안을 보장하라”는 부분에 대해 한국기독교협의회가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한국과 함께 연대 성명을 냈던 일본기독교협의회(NCCJ) 역시 중국 측으로부터 사과 요구를 받았다. 일본기독교협의회는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홍콩 문제는 보편적인 인권문제로 신앙의 양심에 따라 한 성명”이라며 사과를 거부했다. 성명 역시 취소하지 않았다.

이후 중국의 비공식 ‘보복’이 시작됐다. 지난 6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세계교회협의회(WCC), 한국전 유엔참전국의 기독교교회협의회(NCC)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평화 메시지를 발표했다. 하지만 중국기독교협회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갈등을 이유로 메시지에 참여하지 않았고, 한국전 참전국의 한 축이 불참하면서 평화성명은 반쪽짜리가 됐다.

홍콩보안법이 통과되자 홍콩기독교협의회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홍콩 교회는 홍콩보안법에 대해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신승민 한국기독교협의회 국제국장은 “홍콩보안법에는 외국세력과 결탁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이 있다”며 “자칫 홍콩 교회가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도 성명을 내거나 지지 선언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에서도 지난해 송환법 시위 때와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긴 장마 등 외부 요인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홍콩 현지의 변화다. 보안법 통과 이후 홍콩 민주화 세력에 대한 탄압 강도가 높아지면서 홍콩 내 시위도 활기를 잃었다. 무더기 체포 사태 이후 홍콩 현지 민주화 세력과 교류가 끊기면서 한국 시민사회의 연대 활동도 동력을 잃은 것이다. 홍콩보안법에 있는 ‘외국인 처벌’ 조항도 한국 시민사회의 활동 반경을 좁혔다. 상현 한홍민주동행 공동대표는 “지난해에는 목소리를 내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보안법 통과 이후 현지 상황이 너무 심각해지니까 지금은 그런 믿음이 옅어졌다”며 “지금 서명하고 행진해봐야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민사회 움직임도 잠잠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1일 열린 홍콩 국가보안법 폐기 촉구 한국 시민사회 기자회견 /권호욱 기자


■홍콩보안법 이슈에 함구하는 민주당

정치권을 통한 돌파구 찾기도 녹록지 않다. 한홍민주동행 측은 국회의원 전원에게 e메일을 보내 홍콩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지난 7월 한홍민주동행을 비롯한 22개 시민단체가 진행한 ‘홍콩 국가보안법 폐기 촉구’ 성명에 동참한 현직 국회의원은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유일하다. 해당 성명에 이름을 올린 정당은 정의당과 녹색당뿐이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홍콩보안법 이슈에 함구하고 있다. 현재까지 홍콩보안법과 관련해 민주당이 내놓은 공식 입장은 지난 7월 2일 당 회의에서 나온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의 발언이 전부다.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 심화로 세계경제가 위기에 직면할 수 있으니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적극 노력해 줄 것을 양국 정부에게 촉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당은 지난 홍콩 송환법 시위 때도 홍콩 문제를 ‘대외 경제 여건 악화 요인’으로 간주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홍콩보안법 문제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걷어내고 경제 문제로 접근한 셈이다.

이렇다 보니 민주당 내에서는 홍콩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의원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상현 대표는 “민주당 의원 중에는 당내 상황 때문에 공개적으로 홍콩 문제를 언급하지 못한다며 미안해하는 분도 있다”며 “홍콩 민주화 인사와 교류도 의원 개인이 비공식적으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기로에 서 있지만 시민사회는 홍콩을 위한 활동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지난해부터 홍콩 시위 지지 집회를 진행해온 김지문 정의당 청년당원 모임 모멘텀 조직국장은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포기하는 것은 중국 정부가 가장 원하는 방식”이라며 “어떻게든 홍콩 민주화를 위한 연대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윤종석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금 상황에서는 홍콩 이슈가 잊히지 않도록 언론과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환기시켜주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며 “아울러 한국 정부의 외교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이고, 외교철학은 무엇인지 점검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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