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시시각각] 권순일 중앙선관위원장의 과욕

전영기 2020. 8. 17.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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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부정·편파 시비 낳고도
주호영 대표에 '자리 보전 뜻' 밝혀
대법관 임기 종료와 함께 사퇴해야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역대 중앙선관위원장들은 권력으로부터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대법관의 중앙선관위원장 겸임은 한국 민주주의의 좋은 전통이다. 대법관이라는 헌법적 지위가 대통령을 포함해 행정부의 누구로부터, 입법부 어떤 의원들의 압력에서도 차단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으로부터 ‘당신은 왜 야당 편이냐’는 협박이 들어와도 과거 선관위원장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대법관이자 중앙선관위원장이었던 사람들은 그 자리를 인생의 마지막 자리로 여겼다. 오로지 “선거의 공정한 관리”(헌법 제114조)에만 삶의 역량을 집중했다.

공정의 관점에서 볼 때 권순일 현 중앙선관위원장이 자리에 연연해 이리저리 유임 로비를 하고 다니는 듯한 모습은 볼썽사납다. 권순일의 6년 대법관 임기는 오는 9월 14일 종료된다. 한 달도 안 남았다. 대법관 임기 말과 동시에 선관위원장 직도 끝내야 하는데 그는 선관위원장만은 계속 갖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선배 위원장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동이다. 권순일은 깨끗하게 선관위원장 자리에서도 내려와 후배 대법관에게 직을 넘기는 게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벌써 선관위원장 사표를 내 국회 인사청문회가 후임 후보자를 상대로 진행되고 있을 시점이다. 그런데 권순일은 죽치고 앉아 있다. 이게 왜 문제일까.

1963년 중앙선관위가 생긴 뒤 18명의 대법관이 차례로 선관위원장 자리에 올랐지만 대법관 임기가 끝났는데도 선관위원장을 계속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능환 위원장이 대법관을 마치고 몇 개월 더 자리에 남아 있긴 했는데 바로 이어진 2012년 대선 등 전국 선거를 차질 없이 치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김능환의 수개월 연장근무에 대해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능환 위원장은 취임 때 밝힌 대로 “선거관리에선 좌도 없고 우도 없고, 진보도 없고 보수도 없고, 여당도 없고 야당도, 무소속조차도 없다. 오로지 엄정한 중립성과 공정성만 있을 뿐”이라는 정신을 임기 내내 실천했다.

권순일 위원장은 정반대다. 그가 이끄는 중앙선관위는 올해 4·15총선에서 집권 여당 편들기가 일쑤였다. 선거 전날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라고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개입 의심 행위에 권 위원장은 경고 한마디 날리지 못했다. 크고 작은 불신들이 쌓여 지난 30여 년간 한 번도 없었던 선거관리 기관에 의한 조직적인 부정선거 시비가 불거졌다. 지금도 사람들은 과천 중앙선관위 앞에서 부정선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런 문제들에 책임져야 할 권순일이 중앙선관위원장 직을 계속 맡고 싶다는 의사를 최근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낯 뜨거운 일이다. 아마 후임 지명권자인 김명수 대법원장과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에겐 먼저 얘기했을 것이다. 여야 간에 무슨 주고받기가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권순일의 욕심은 과하다. 이쯤 해서 멈춰야 한다.

선관위 역사에서 권순일 위원장처럼 선거 부실관리, 편파 논란에 직면한 사람은 없었다. 권순일이 입법부 요직 등을 찾아다니면서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에도 선관위원장’ 부탁을 하고 다니는 것은 유권자에 대한 배신이다. 대법관일 때도 편파와 불공정 논란에 시달렸던 권순일 위원장이 법복을 벗은 자연인 상태에서 선관위원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권순일 대법관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허위사실 공표’ 최종 판결 때 5대5 팽팽한 상태에서 ‘적극적 거짓말이 아니면 거짓이 아니다’는 궤변론에 동조함으로써 이재명 무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권자의 알권리를 외면하고 후보자의 거짓말에 관대한 권순일의 판결 이력은 선거관리 책임자로서 부적격자임을 증명한다. 상황은 명료해졌다. 권순일은 우물쭈물하지 말고 선관위원장 직에서 사퇴하시라.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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