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오일시장·양정마을 가보니..봉사 손길에 "힘내야제" 눈덩이 피해 "어찌 살꼬"

구례 | 강현석 기자 2020. 8. 17.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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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7일 오전 전남 구례군의 한 건물 옥상에 수해 복구 작업으로 물에 젖은 장갑들이 널려 있다(위 사진). 구례 지역이 자원봉사자들 도움으로 제 모습을 찾고 있지만 축산농가가 밀집한 양정마을에선 탄식이 여전하다. 소 100마리 중 60마리를 잃은 배금봉씨는 축사 앞에 주저앉았다. 연합뉴스·강현석 기자

홍수 일주일…피해 복구율 22%
집 1184동 침수·1800억 피해
봉사자 1만4000여명 다녀가
“와서 보니 너무 처참해 착잡”

소 1500여마리 키우던 마을
홍수 이후 1000여마리 잃어
“어림 없는 보상액 힘 빠진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주민들도 있는데 연휴라고 차마 가족여행은 못 가겠더라고요.”

광주 광산구 수완동에 사는 이진선씨는 연휴 마지막 날인 17일 중학교 2학년인 딸과 함께 전남 구례군 구례읍을 찾았다. 모녀는 지붕까지 물이 차올랐던 철물점에서 물건들을 모두 밖으로 빼내 말린 뒤 쓸 수 있는 물건들을 다시 정리했다. 이마에는 금세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이씨는 “주민들이 피땀으로 일군 모든 것들이 사라졌는데 모른 척 계곡이나 바다로 피서를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면서 “여름방학 마지막 날이기도 해 딸과 함께 왔다”고 말했다. 철물점 주인 박종태씨(49)는 “일주일이 넘도록 손도 못 댔는데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정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집중호우로 물에 잠겼던 구례읍이 더디지만 차츰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구례읍은 지난 7일과 8일 내린 380㎜의 기록적인 폭우로 섬진강 지류인 서지천 제방이 붕괴돼 오일시장과 양정마을 등이 모두 물에 잠겼다. 침수된 주택만 1184동에 이른다. 구례군은 1800억원이 넘는 역대 최악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워낙 피해가 컸던 탓에 물이 빠진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구례읍의 복구율은 22%에 머물고 있다.

구례 오일시장에서는 상인과 가족들이 복구에 여념이 없었다. 구례읍에서만 가게 350동이 침수됐다. 상인들은 흙탕물에 잠겼던 물건들을 씻고, 대형 선풍기를 틀어 가게 안을 말리고 있었다. 깨끗하게 씻어낸 물건들을 다시 진열대에 올리는 상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물건들이 모두 못 쓰게 되면서 가게 안이 텅 빈 곳도 여럿 눈에 띄었다. 한 시장 상인은 “겉으로는 좀 정리가 된 것 같지만 내부 집기들이 모두 못 쓰게 돼 장사를 시작하려면 멀었다”면서 “시장이 완전히 정상화되려면 한 달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망연자실한 주민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는 이들은 자원봉사자와 가족들이다. 그동안 구례를 찾은 자원봉사자는 1만4000여명에 달한다. A씨는 누나가 운영하고 있는 그릇가게에서 흙탕물에 잠긴 그릇을 씻어냈다. A씨는 “지난 주말에도 일손을 도왔는데 아직도 다 복구하지 못했다”면서 “내일이면 직장에 출근해야 해 오늘은 10여명의 친·인척이 함께 복구 작업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전북 군산시의 군산우리동네자전거 회원 4명도 이날 아침 일찍 구례를 찾았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도 이들은 못 쓰게 된 집기류를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진영관씨(44)는 “그동안 섬진강 자전거 라이딩을 하면서 많이 찾았던 구례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에 연휴가 끝나기 전에 복구를 돕기로 했다”면서 “막상 와보니 너무 처참해 마음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을 위한 온정도 이어지고 있다. 구례읍의 한 목욕탕은 자원봉사자와 주민들을 위해 8월 말까지 무료로 목욕탕을 개방하기로 했다. 누군가 읍사무소에 50만원이 든 봉투를 놓고 가는가 하면 대구에 사는 한 청년은 생수와 라면 등을 택배로 보내기도 했다.

조금씩 제 모습을 되찾는 시가지와 달리 축산농가가 밀집한 양정마을에서는 지금도 비극이 이어지고 있었다. 축사 앞에 주저앉은 배금봉씨(58)는 “참아보려 해도 자꾸 속이 상해 다리 힘이 풀린다”고 했다. 수해 전 한우 100마리를 키우던 배씨의 축사에는 현재 40여마리만 남았다. 배씨는 “어제도 먹이를 먹지 못하는 소 2마리를 도축장으로 보냈고 내일도 12마리를 보내야 한다”면서 “안타깝지만 살아 있을 때 도축해야 그나마 얼마라도 받을 수 있다”며 울먹였다.

양정마을에서는 축산농가 44가구가 소 1527마리를 키웠다. 홍수가 난 이후 소 600마리가 물에 떠내려갔고 400마리는 폐사했다. 살아남은 상당수도 먹이를 먹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고 있다.

마을 이장 전용주씨는 “도축장에 보내진 소들은 ‘등외’ 판정을 받기 때문에 마리당 200만원도 받지 못한다”면서 “정부에서 죽은 소 1마리당 120만~150만원 보상금을 준다고 하는데 그걸로는 어림도 없다”고 말했다.

구례 |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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