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뉴질랜드 성추행 피해자, 文대통령에 편지 "외교부, 증언 기회도 안줘"

노석조 기자 2020. 8. 20.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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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고 정당한 재조사를 원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말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와 통화하는 모습. /연합뉴스·AP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피해자인 뉴질랜드 남성인 W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한국 외교부의 조사 과정이 부당(不當)했다며 ‘공정하고 정당한 절차(fair and just process)’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원하는 서한을 19일 발송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정상 통화에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로부터 예고없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문제 제기를 받는 ‘국제적 망신’을 당한지 약 3주만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아던 총리에게 “관계 부처가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이후에도 재조사 방침을 명확히 하지 않고 대신 익명의 당국자를 내세워 기자들에게 “피해자의 진술이 바뀌더라” “합의금을 요구하더라”며 피해자에 불리한 주장을 폈다. W씨 측 관계자는 “W씨가 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기로 결심한 것은 외교부가 최근 보인 태도에 대한 실망감과 이번에도 공정한 재조사가 이뤄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우려때문”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W씨가 법률 대리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일부. 피해자와 가해자의 실명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조선일보

뉴질랜드 소식통에 따르면, W씨는 이날 오전 법률 대리인을 통해 문 대통령을 수신인으로 하는 서한을 청와대 공식 이메일로 보냈다.

W씨는 서한에서 자신을 뉴질랜드 웰링턴 법원이 성추행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한국 외교관 A씨의 피해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 외교부는 이번 성추행 사건 처리 과정에서 자신에게 조력자(변호사) 입회하에 조사관에게 발언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며 이번 사건을 독립된 기관이 제대로 다시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번에는 피해 상황을 조사관에게 증언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뉴질랜드 남성 W씨를 성추행한 혐의의 한국 외교관 A씨. /조선일보

W씨는 그간 외교부와 합의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수개월 전 외교부 측의 일방적 결정으로 합의 절차가 중단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후 지속적으로 재합의 시도를 했지만 외교부는 일절 응답도 하지 않고 거절했다”고 했다. W씨는 또 “(이번 사건으로) 받은 고통, 모욕감, 인간 존엄성의 상실감에 대해 알아달라”며 ‘시정(redress)’ 조치도 원한다고 했다.

한국 외교관 A씨는 2017년 말 주뉴질랜드 한국 대사관 근무 당시 현지 채용 대사관 직원인 W씨의 민감한 신체 부위를 3차례 만지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외교부는 이 사건을 조사했지만 A씨에 대해 성희롱 징계보다 가벼운 ‘감봉 1개월’ 처분을 내리고 그를 필리핀 총영사로 근무하도록 했다. 외교부는 이후 약 3년간 이 문제를 쉬쉬하며 덮으려했다.

A씨 성추행 사건에 대한 한 뉴질랜드 매체의 기사 일부. /조선일보

또 외교부는 지난 2월 뉴질랜드 법원에서 A씨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뉴질랜드 정부가 이 영장의 집행에 협조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는데도 ‘외교관 면책 특권’ 등을 이유로 대며 거부했다. 이에 뉴질랜드 언론이 한국 외교부의 부적절한 대응에 대한 비판 보도를 쏟아냈고, 급기야 아던 총리가 정상 통화에서 문 대통령에게 이번 문제를 따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류호정 정의당 의원. /서울신문 뉴시스

여권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남성 동성 간 벌어진 일이라며 피해자와 뉴질랜드 정부가 과민 반응을 보인다는 주장도 한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MBC라디오에 출연, "그냥 같은 남자끼리 배도 한 번씩 툭툭 치고 엉덩이도 한번 치고 그랬다는 것”이라며 “(A 외교관은 둘이) 친했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정부의 태도도 문제지만 (송영길) 외통위원장님의 인식은 더 충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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