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레지던트 1만명, 20년만에 파업 돌입

허상우 기자 2020. 8. 2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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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의료진이 걸어가고 있다. /뉴시스

전국의 인턴·레지던트(전공의) 1만 여 명이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 등에 반발해 21일부터 순차적으로 무기한 업무 중단에 들어간다. 전공의들의 무기한 파업은 지난 2000년 의약(醫藥) 분업 사태 당시 4개월 간의 장기 파업 이후 20년 만이다. 응급실, 중환자실 등 필수 진료 인력도 포함되며, 응급실 전공의의 경우 이날부터 전면적인 업무 중단에 들어갈 전망이다.

◇20년 만의 무기한 파업…보건당국 “엄정 대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21일 인턴과 레지던트 4년차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파업에 들어가 인턴과 레지던트 1~4년차 전원이 집단 휴진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20일 밝혔다. 22일부터는 레지던트 3년차, 23일엔 레지던트 1년차와 2년차 등이 휴진(休診) 후 자가 격리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대전협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 확산세가 엄중해 길거리 집회는 하지 않고 자가 격리 상태에서 온라인 학술회의 등을 진행할 것”이라며 “1만6000여 명 전공의 중 1만 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의 세 번째 집단 휴진을 앞두고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교인을 중심으로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의료계와 보건 당국은 지난 19일 긴급 간담회를 열었지만, 이 자리에서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의사들이 예정된 집단 휴진을 강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동안 전공의들이 집단 휴진에 들어가면 이들을 대신해 응급실, 중환자실 등의 의료공백을 메웠던 레지던트를 마친 전임의(펠로우)들도 이날 별도의 ‘대한전임의협의회’를 결성하고 오는 26일 대한의사협회의 2차 총파업에 동참하기로 했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정부로서는 의사들의 집단 행동에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대응 외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며 “국가적인 감염병 위기 상황 하에서 정부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드린다”고 밝혔다.

◇의료계 “의대생, 전공의들 분노 상상 이상”

의료계에서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 등에 대한 20~30대 젊은 의사, 의대생들의 반발이 상상 이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안팎에서는 “전공의들이 ‘우리는 열심히 싸우는데 선배들은 뭐하고 있냐’고 눈치를 줄 정도”라는 말도 나온다.

전날 의료계와 정부의 긴급 협상이 결렬된 직후 간담회장에 참석했던 박지현 대전협 회장은 페이스북에 “손영래 복지부 대변인은 코로나19가 얼마나 심각한지 전공의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서, 살짝 흥분해 6종 (방호복) 입고 코로나 의심 복막염 환자 수술해봤냐고, 나는 당직 때 그렇게 하고 있고 코도 세 번이나 찔렸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손 대변인은 본인이 참을 인(認) 자를 세 번 쓰고 나왔다면서, 의약분업 때도 필수 진료 분야를 (파업에서) 뺐는데 전공의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면서 “지금은 2020년이고 저희 세대는 그런 식의 과거 이야기로 훈계가 통하는 세대가 아니라고 답했다”고 적었다.

전공의들은 “단순히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은 지역 의료 불균형 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의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한 전공의는 “1주에 법에 정해진 최대 근무시간(80시간)을 꽉꽉 채우며 일하지만 교육을 받는 수련생이기보다 ‘값싼 노동력’으로 대우받는다”며 “이러한 수련 환경을 바꾸지 않고서 의사 수만 늘리면 고통받는 사람 수만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공의는 “한약에 건강보험 적용할 돈으로 다른 선진국 정부들이 병원에 지급하는 ‘전공의 수련비용’을 지원해주거나, 차라리 암 환자들을 위해 항암제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해달라”고 했다.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서울대 의대 3학년생이 전공의 파업 지지 등의 내용이 담긴 성명문을 옆에 두고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의전원생 90% 이상 국시 응시 취소”

전국 40개 의대·대학원으로 구성된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20일 “이날 오후 3시까지 의사 국가고시 응시를 신청했던 의대 재학생 3036명 가운데 2804명(92%)이 응시 취소 서류를 제출했다”며 “동참 의사를 밝히는 분들이 이후로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의사 국가고시는 의대생·의전원생이 정식 의사가 되기 위한 관문으로, 학생들이 정부 정책에 반발해 국가고시 응시를 거부한 것 또한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20년 만이다.

아주대 의대 4학년생인 조승현 의대협 회장은 “현재도 실습 등 여러 교육 자원이 모자란 상황인데, 무턱대고 의대 정원마저 늘리게 되면 새로운 입학생들이나 기존 의대생들 모두 교육의 기회가 더 적어질 수 있다”며 “이에 대해 정부가 교육 환경 개선 계획이나 구체적인 의료 인력 수급 계획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행하는 불통(不通)으로 일관해 많은 의대생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에서는 의사들과 대화를 하자면서 뒤로는 무시와 협박으로 일관하는 정부에 학생들은 큰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복지부가 지난 7일 전공의 1차 파업을 앞두고 전국 수련병원에 “전공의 복무 관리·감독을 철저를 기해달라”고 공문을 보낸 것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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