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친일 몰이의 부메랑

양승식 정치부 기자 입력 2020. 8. 21.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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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식 정치부 기자

문재인 정부가 지난 2019년 '독립유공자 전수조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내부적으로 반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조사 대상이 1만5000명에 달하는데 그 수많은 사람 과거를 일일이 다 끄집어내다가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분들을 또 심판대에 올려야 하느냐"는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정부는 조사를 강행했다. 순탄치 않았다. 예고했던 조사 기간 6개월을 넘겨 1년 반이 지나도 결과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다 최근 1차로 조사를 마친 619명 중 친일 행적이 의심되어 서훈 취소를 검토해야 하는 16명 명단이 행정안전부로 넘어왔는데 당황스러운 장면이 펼쳐졌다. 문 대통령이 지난 6월 현충원 추념식에서 독립군 영웅으로 칭송한 최진동 장군이 포함된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독립유공자로 치켜세운 사람의 훈장을 박탈해야 하는 지경에 놓인 셈이다. 일단 "유족들에게 설명 기회를 준다"는 이유로 발표를 보류한 정부는 어수선한 분위기다. "대체 누가 왜 이런 전수조사를 하자고 했느냐"는 푸념도 나왔다고 한다.

최 장군뿐 아니라 중·고교 교과서에 작품이 여러 편 실린 한국 근대문학의 거두 한 분도 이번 조사에서 친일 행적을 지적받았다. 친일파로 최종 낙인(烙印)되면 교과서에서 작품을 모두 삭제해야 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이 201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광복을 만든 주인공' 중 하나로 언급한 학자 한 분도 친일 이력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 장군 유족들은 반발하고 있다. 직접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시대적 상황을 몰라 하는 오해"라고 설명했다. 그 친일 논란은 1960~197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와중에 중국에 머물던 최 장군 가족들이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비판 대상에 오른 데서 출발했다고 한다. 일부 인척이 자기들이라도 비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집안 아버지(최 장군)가 친일파"라는 식으로 매도한 게 시발점이었다는 설명이다. 최 장군이 일제에 '국방헌금'을 냈다는 의혹도 있는데 이는 "최 장군 아내가 몰래 한 일로, 나중에 알게 된 최 장군이 대로(大怒)해 의절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사실인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다만 우리나라 친일파 판별법은 유난스럽다 못해 가혹하다. 작은 흠결만으로 전체를 단죄하곤 한다. 일제 36년간 평범하게 세금 내며 산 사람조차 다 친일파로 모는 식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지 않았다면 다 부역자 취급하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관계자들이 "윤봉길·안중근 의사는 일찍 순국해 그나마 논란을 피해 갈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자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이 정부는 '새로운 친일파'를 발굴하고 또 한 번 '친일 몰이'로 정치적 파급 효과를 노렸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제 발등만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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