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폭우 뚫고 가도 "사람 아닌 음식 왔다 생각해"

김미향 2020. 8. 22.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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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재난·재해 속 배달노동 24시
대기업 다니다 전직한 35살 전씨
회사보다 자유로운 점은 만족
낮은 기본료에 할증, 프로모션
무례한 고객 만나면 자괴감도
여성 라이더 23살 송씨
"혹한·혹서 모르면 라이더 아냐"
교통사고에도 치료비 스스로 마련
업주 냉대, 그림자 노동 서러워
15년 일한 산증인 50살 강씨
"내 또래 쉬지 않고 주 7일도 해"
내비 생겨 집찾기 예전보다 수월
'배달도 하나의 직업' 인식 가져야

대대적인 전염병과 기록적인 장마에 외출이 쉽지 않은 시민들은 배달 서비스에 손을 내밀고 있다. 배달원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에도, 코로나 2차 대유행이 와도, 우리 곁을 달리고 있다. 이들은 하루 12시간 일하며, 1시간에 평균 다섯건씩, 하루 50~60건의 끼니를 나른다는 조사가 있다. 집과 식당을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노동’을 수행하지만 왜인지 사람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악천후와 전염병에도 우리의 보금자리까지 따뜻한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사진은 올해 전업 배달원이 된 30대 전성배씨(왼쪽), 10개월차 배달원 20대 송서경씨의 모습. 글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사장님, 이럴 땐 배달원이나 본인 생각하셔서 (주문) 거절이 맞아요. 정말 다치실까 걱정입니다.”

“이럴 때 배달 시킨 것도 이상하지만 배달 가는 것도 문제 아닌가요?”

지난달 23일 밤, 부산의 한 도로에서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길 사이로 포장된 음식을 전해주는 배달원 사진이 9만3천건 리트위트 되며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이날 부산은 3시간 동안 200㎜의 물폭탄이 쏟아지며 도로 위 자동차가 잠기고 3명이 숨지는 인명피해가 있었다. 집 밖으로 발을 내딛기 힘든 그 시각, 누군가의 끼니를 해결해주기 위해 배달원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 사진을 올린 누리꾼은 “물난리가 났는데 이 와중에 누군가는 배달을 시키고 누군가는 배달을 한다니…”라며 탄식했다.

국지성 폭우가 계속된 긴 장마와 동네 음식점에서도 확진자가 나오는 코로나 2차 대유행으로 한끼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외출마저 쉽지 않아졌다. 가끔 시켜 먹는 치킨, 피자만이 아닌 한식 음식과 커피 같은 간식 배달도 이제 일상이 됐다. 휴대전화 배달앱을 통해 식당에서 조리한 음식을 배달해주는 음식배달 서비스 시장만 최근 3년간 2조3543억원(2017)에서 9조1045억원(2019)으로 약 3.9배 성장했다.(통계청 ‘2019년 12월 및 연간 온라인쇼핑 동향’) 음식배달 서비스에 종사하는 배달원(라이더) 규모도 최대 약 13만686명이란 추산이 지난해 있었다.(한국노동연구원 ‘배달앱 확산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가정이나 직장에서 이용하는 배달 서비스는 이제 우리 곁에 꼭 필요한 노동이 되었다. 올해 4월 조사한 ‘배달 서비스 트렌드 리포트 2020’(오픈서베이)에서 언제 음식을 시켜 먹는지 물으니 ‘집에서 먹는 일상적 식사’(52.5%), ‘직장 등 집 밖에서 먹는 일상적 식사’(17.9%) 두 항목이 각각 1위와 8위였다. 두 항목은 지난해 대비 각각 4.7%포인트, 1.4%포인트 늘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거리에서 배달용 오토바이를 보는 일이 흔해졌지만, 배달 노동자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 배달원은 “내가 가면 음식이 왔다고 생각하지 사람이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악천후와 전염병에도 우리의 보금자리까지 따뜻한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여기 3명의 배달원이 있다.

“병원 배달 갈 땐 저도 무섭죠” 35살 전씨

올해 3월부터 오토바이로 음식배달을 시작한 전성배(35)씨는 8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최근 전업 배달원으로 전직했다. 원하는 시간만 일할 수 있는 배달플랫폼사의 라이더로 일해보니 적성에 맞았다. 지루한 장마가 이어진 지난 8일, 콜이 뜸한 오후 전씨를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날도 전국엔 물난리가 났고 서울엔 국지성 폭우가 반복됐다. 그는 “배달 일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고 했다. “오토바이 탈 줄 아는 사람은 많죠. 그런데 고객이 갑자기 전화를 안 받아 10분씩 3건 연속 배달이 늦어졌다고 해봐요. 그럼 면이 붇고 음식이 상해요. 배달이 늦어진 이유를 ‘이전 고객이 전화 안 받아서’라고 말해봤자 해명이 안 되죠. 늦어지면 무조건 내 책임이니 과속, 신호 위반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와요. 그러다 다치는 거예요.”

특히 요즘처럼 갑자기 세찬 비가 쏟아지는 장마철에 오토바이 배달은 여간 위험한 게 아니라고 했다. “주소에 ‘산’이 들어가는 경우 있잖아요. 산을 깎아 만든 동네는 가파른 골목길이 많아요. 제가 일하는 성동구엔 금호동 일대가 높아요. 가파른 경사에 비까지 오면 쉽게 미끄러지다 보니 위험하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올해 장마철은 배달플랫폼에서 일하는 배달원들에게 대목장이기도 했다. 전씨는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16일 동안 195만여원을 벌었다. 한주는 일주일 동안 118만여원을 벌기도 했다. 평소보다 대략 30% 더 번 것이다. 비가 오자 우천할증이 붙어 배달 건당 높은 단가를 받았다. 그는 “비가 안 오면 절대 벌 수 없는 금액”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치킨 한마리를 시켰을 때 주문자의 위치가 식당에서 기본 거리(1.5㎞) 이내면 보통 배달료가 건당 3천원꼴이다.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면 건당 5천원까지도 간다. 예상보다 높은 소득을 올렸지만 그는 “위험업무 할 때 받는 생명수당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가 그치면 순식간에 우천할증이 사라지기도 한다. 기본 배달료는 낮고 이벤트성 프로모션과 할증이 많다. 휴식하고 있는 전씨의 폰 화면엔 ‘5시간 동안 12건 이상 배달하면 하루에 2만원 더 드려요’ 공지가 선명했다.(사진) 개인사업자인 전씨는 자신의 배달 수입에서 오토바이 기름값과 관리비, 보험료, 세금 등을 지출한다. 그 비용으로 월 50만원가량이 든다고 했다. “보너스를 주는 프로모션 공지를 계속 받다 보면, 더 많이 벌고 싶기 때문에 일하는 걸 멈추기가 어려워요. 어떤 분은 퇴근하고 집에 가서도 우비를 벗을 수 없다고 말해요. 갑자기 높은 금액을 주는 콜이 오면 일하러 뛰어나가려고요.”

전성배씨가 13일 오후 업무를 하기 위해 헬맷과 마스크를 쓰고 오토바이 위에 앉았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그는 요즘 배달할 때 마스크는 물론이고 장갑도 꼭 낀다. “제가 주로 일하는 성동구엔 한양대학교병원이 있는데, 병원에 배달 갈 때 특히 무서워요. 고객에게 ‘입구에 와서 받아달라’ 양해를 구하고 건물 앞에서 전해드릴 때가 많죠.” 전염병이 퍼지면서 배달앱에는 음식을 주문하면 비대면으로 받을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겼지만, 소비자가 아닌 배달원은 비대면 배달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전씨가 체감하기로 하루 30건 배달할 경우 15건 정도는 대면 배달을 하고 있다.

가끔 무례한 고객을 만날 때도 있다. 그는 얼마 전 배달하다 손등에 피가 나는 상처를 입었다. 초인종을 눌렀는데, 낯선 배달원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고객이 좁은 문틈으로 포장된 음식 봉투를 확 낚아채고 문을 쾅 닫는 바람에 손등을 다친 것이다. “대면을 원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비대면 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나 그땐 자괴감이 들었죠. 특별한 친절은 바라지도 않아요. 정확히 배달하고 보수를 받으면 그만이죠.”

5개월 일한 전씨는 벌써 산전수전 다 겪었다. 어떤 고객은 주문앱 배달기사 요청사항란에 ‘○분 내 도착 안 할 경우 음식 취소’란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주문하면 배달원의 동선이 고객의 앱 화면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도 분쟁을 만든다. ‘지름길로 빨리 안 오고 왜 이 동선으로 오느냐’며 항의하는 고객도 있다. 아직 ‘배달은 무료’라는 인식이 상당해서 배달료 없이 음식값만 지불하겠다고 하는 손님에게 배달료 개념을 설명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도 전씨는 대체로 이 일에 만족한다. 직장 다닐 때만큼 벌고, 조직생활을 안 하는 자유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부모님께 배달 일을 한다고 알리지 못했다. 그는 “외아들 대학 보내서 좋은 직장 다니는 줄 알고 계시는 어머니께는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직업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은 아니라도 내가 하는 일을 편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달 가면 나를 음식이라 생각” 23살 송씨

“여자가 배달을 오네? 여자가 라이더 할 수 있을까? 손님이든 식당이든 배달업체 사장님이든, 이런 생각은 다 해요. 전원, 100%.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차별이 있는 건 아니에요.”

지난 12일, 경기 안산시 상록구 지하철 한대앞역 앞에서 만난 송서경(23)씨는 배달을 하며 특별한 성차별은 겪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거리에서 배달 오토바이를 보고 ‘저게 좋은가?’ 막연히 생각하다 지난해 7월 일을 시작하게 됐다. 10개월간 일을 한 송씨는 지난 4월, 코로나19로 대구·경북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인근 지역에 방문한 것을 계기로 자가격리했고, 건강을 추스르기 위해 지금 잠시 배달 일을 쉬고 있다. 몸이 나아지면 일을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송서경씨가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한대앞역 근처에서 10개월간 일했던 경험담에 대해 말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산/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그를 만난 한대앞역 앞 ‘로데오거리’에는 음식점이 즐비했다. 도로를 건너면 바로 대형 아파트촌이다. 송씨는 로데오거리 식당에서 건너편 아파트에 배달 가는 콜을 잡으면 신이 났다. “이런 ‘꿀콜’ 잡으면 완전 좋죠. 그런데 하루에 꿀콜은 몇건 없어요.” 길이 잘 닦인 가까운 거리의 배달은 배달원 사이에서 ‘꿀콜'이라 불린다. 반대로 지나치게 먼 거리, 힘든 배달은 ‘똥콜’이다.

송씨는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무 생각 없이 7월에 시작했는데, 곧바로 장마였어요. 일주일 내내 비가 왔어요. 비 오는 날에 배달한다는 게 뭔지 그땐 몰랐죠. 장마철에 일하기가 얼마가 어려운지 알았다면 장마 끝난 뒤에 시작했을 거예요.” 덥고 습한 날씨 탓에 우비를 입은 송씨의 전신에 피부염까지 생겼다.

그가 일한 업체는 열악한 날씨에 돈을 더 얹어주는 할증 없이 사시사철 기본 배달료로 일했다. “주 7일 할 때도 있었다. 원래 주 6일 체제인데 만약 사장님이 갑자기 나와달라고 하면 그 주는 쉬는 날이 없다”고 했다. “배민 같은 대형플랫폼사에 비해 제가 일한 배달대행업체가 더 열악하다”고 했다. 그는 한달에 300만원 좀 넘게 벌어 오토바이 기름값이나 각종 유지비를 제했다.

송씨는 지난해 10월 배달 도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도로에서 앞차가 급정차하는 바람에 부딪치지 않으려고 오토바이의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중심을 잃고 넘어진 것이다. 앞차는 쓰러진 오토바이를 보고도 그냥 달아나버렸다. 이 사고로 오른쪽 이마에 주먹만한 큰 혹이 생기고 무릎을 다쳐 한동안 걷지 못했다. 일도 3주 쉬어야 했다. 송씨는 당시 배달대행업체와 계약서 없이 구두계약으로 일하고 있었다. 특수고용직인 배달원들은 업체와 공동 부담으로 산업재해보험에 들 수 있지만, 송씨는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다퉈보지 않고 그저 스스로 치료하고 말았다. “제가 10개월 배달하면서 주변에 수많은 교통사고를 봤는데, 그중 산재 혜택 받은 건은 딱 한건 봤어요. 민간보험도 오토바이는 자차 보장이 안 되는 보험(유상종합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제 나이라면 보험료가 1년에 1천만원도 넘어요.”

지난해 배달플랫폼사(배달앱)에 속한 배달원 31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산재보험에 가입한 배달원은 40%로 집계된다.(한국노동연구원 ‘배달앱 확산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한편, 배달대행업체(지역 기반의 배달회사)에 속한 배달원(표본 252명)은 산재보험 가입률이 0.4%였는데, 민간손해보험을 포함해 ‘아무 보험도 가입하지 않음’이란 응답도 22.6%에 달했다. 산재보험 가입률이 낮은 이유에 대해 84.3%는 ‘업체의 권유’라고 답했다.(한국노동연구원 ‘배달업 종사자 현황 실태파악 및 보호방안 연구’) 업체가 보험료 부담을 피하기 위해 산재보험 가입을 꺼리는 것이다.

송씨는 다치고 나서도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배달판에서 겨울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배달노동자가 아니란 말이 있는데, ‘사계절은 겪어보자’ 생각했죠.” 위험도 위험이지만 배달 일을 하며 특히 소진됐던 건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제가 음식을 픽업하러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통 사람이 왔다고 생각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식당 사장님들은 그냥 물건을 나르는 도구가 왔다고 생각해요. 가정집에서도 제가 가면 음식이 왔다고 생각하지 사람이 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배달 일에 드리워진 ‘그림자 노동’에 씁쓸해했다.

그는 편의점, 물류센터, 공장 등 몸 쓰는 알바를 두루 해봤다. “하루 일하면 사흘 못 걷는 강도 높은 육체노동도 해봤는데, 그런 일들에 비해 배달은 노동강도 자체가 높진 않아요. 20대 초반에 벌 수 있는 돈으로 치면 벌이도 괜찮은 편이죠. 그런데 배달은요. 일을 해도 내가 노동자가 아니에요.(특수고용직) 그리고 쉬는 날이 거의 없었던 점, 일하면서 건강 상하고 자존감이 낮아진 점 때문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송씨는 지난 10개월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는 형님은 하루 16시간도” 50살 강씨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않은 아이들이 집에 있다 보니 올해 초부터 콜이 더 많아졌다. 서울 은평구 한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는 강민철(50)씨는 혹여라도 감염되면 일을 할 수 없기에 주의하느라 체감하는 노동강도는 배가 되었다. 종일 마스크를 써야 하고 계단 오르내릴 때마다 숨이 가빠도 벗을 수 없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음식을 주문한 손님들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비 때문에 마스크가 젖어 잠시 벗고 있으면 바로 마스크를 쓰라고 지적을 받는다. “장마가 한창일 때 직장인들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어요. 비가 많이 오는 올해 여름은 정말 힘듭니다. 우비를 입어도 몸에 비가 들어오고 시야 확보가 어렵고요. 길도 미끄럽고 맨홀 뚜껑, 땅 꺼진 부분, 건물 주차장 들어갈 땐 특히 조심을 해야 합니다.” 비 때문에 빨리는 못 가지, 주문은 많지, 이런 날은 업체에서 ‘강배’(강제배차, 배달원이 먼저 선택하지 않는 비선호 주문을 임의 배정하는 것)를 한다.

비 오는 날 우비를 입고 마스크를 쓴 채 배달하는 강민철씨의 모습. 강씨 제공

강씨는 이렇게 하루 평균 12시간 일한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10시간, 일이 많은 날은 14시간. 주말에도 쉬지 않는다. “요새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12시간 일이 끝나고 나면 어깨와 허리, 골반이 뻐근합니다. 앉았다 일어나면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나와요.” 그와 비슷한 연령대의 배달원들은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지 못한다. “네살 많은 형님은 대학생 자녀 2명 있는 가장인데 하루 16시간 일해요. 점심도 오토바이 타면서 빵으로 대신하고요. 배달하는 사람들은 보통 주말에도 일하기 때문에 쉴 수가 없어요. 1년에 휴식은 고작 두번, 설과 추석밖에 없어요.”

강씨는 이렇게 일해 보통 한달에 300만원대 초반의 매출을 올린다. 여기서 오토바이 기름값 등 각종 비용을 빼면 실제 소득은 300만원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일하는 시간에 비해 소득이 적다고 생각하는 강씨의 바람은 배달료가 오르는 것이다. “라이더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 좀 더 벌기 위해 무리하게 운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당 배달료가 적기 때문에 여러 건 묶어 갈 수밖에 없고, 시간 내 도착하기 위해 신호 위반을 안 하기 어렵죠. 그러다 보니 안전사고 위험이 높습니다.” 그는 “사고가 났을 때 병원비, 생활비가 막막하지만 보호해줄 안전장치가 없다”고 했다.

강씨는 젊었을 때 회사 영업부에서 일하다 15년 전 형이 중국음식점을 차리며 도움을 청해 처음 배달을 하게 됐다. 옛날엔 무엇보다 길 찾는 게 어려웠다. 길을 모르면 부동산 사무실을 찾아가 물어보며 급한 마음에 안절부절못했다. 지금은 지도앱이 있어서 비교적 길을 잘 찾게 되었다. 여러 업체를 거친 강씨는 “옛날엔 사장의 갑질도 묵묵히 견디던 시절이라 지금보다 더 힘들었다”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점검 중인 건물을 만나도 고역이다. 한번은 아파트 17층까지 걸어 올라간 적도 있었다.

강씨는 “길을 나서면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아직은 배달을 하나의 직업으로, 배달원을 한명의 노동자로 인식하지 못해서 안타깝다”고 했다. 시대가 변했지만 배달원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그는 느낀다. 예전엔 주문한 음식을 가져가면 막걸리와 담배를 사오라는 황당한 심부름을 시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우리를 ‘짱깨’(주인장이란 뜻의 중국어 ‘장궤이’에서 온 말)라고 불렀습니다. 배달하는 사람을 그다지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죠. 지금은 배달 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조금 생긴 것 같네요.” 그는 십수년째 배달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거나 만족스럽게 생각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불만을 가지거나 부끄럽게 생각한 적도 없다. 그냥 업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일하듯 그 역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악천후엔 멈출 수 있다?

배달대행업체 소속 배달원들은 하루 평균 50~60건 배달한다는 조사가 있다. 이 조사에서 배달원들은 하루 평균 12시간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한시간에 4.5~5.5건을 배달하는 셈이다. 이 조사 심층인터뷰에 응한 배달대행업체 사장은 “(거의) 10분에 한건씩 배달한다고 쳐야 되는데 그냥 죽으라는 거예요. 안전하게 가려고 하면 한시간에 3건 정도가 적당한데 그러면 또 수익이 안 맞아요. 한시간에 (15분씩) 4건 정도가 적당한 거 같아요. 15분도 위험합니다 솔직히.”(한국노동연구원 ‘배달업 종사자 현황 실태파악 및 보호방안 연구’) 특히 올해 같은 악천후에는 안전한 배달이 쉽지 않다. 기상 여건이 열악할 때 배달을 안 할 수 있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현장에는 거의 적용되고 있지 않다. 고용노동부의 ‘이륜차 음식배달 종사자 보호를 위한 안전가이드라인’(2017년)을 보면, 음식배달 오토바이 사고로 한해 평균 31명이 죽고, 1645명이 다쳤다(2014~2016년 평균). 배달 사고는 12월, 7월, 8월 순으로 많았는데, 7~8월에는 주문이 증가함과 동시에 장마, 집중호우 같은 기상악화가 사고의 주원인이었다. 이 가이드라인은 폭우로 인해 가시거리 100m 이내인 경우, 시간당 15㎜ 이상의 폭우 등 호우경보와 호우주의보에 배달을 제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배달 종사자도 이런 요인으로 배달이 곤란할 때 사업주와 상의 뒤 배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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