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둥 마는 둥 했지라우"폭우 이어 코로나에 우는 곡성 이재민들

김성현 기자 2020. 8. 2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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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코로나 확진에 임시대피소 폐쇄돼
오곡면 오지리 수해 주민 49명 귀가
도배, 장판도 못하고 시멘트 바닥 거주
코로나 사태로 대피소가 폐쇄되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온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 2구 이화심(82)씨가 23일 집 마루에 앉아 수해와 코로나로 이중고를 겪는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뒤쪽 방들은 습기가 마르지 않아 벽지와 장판 작업을 못한 채 시멘트가 드러나 있다. 습기를 말리기 위해 방안을 향해 켜놓은 선풍기도 보인다. /곡성=김성현 기자

“자는 둥 마는 둥 했지라우.”

23일 오전 전남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 2구. 주민 이화심(여·82) 씨는 “침수된 뒤 습기가 마르지 않은 방에 들어갈 수 없어 사흘째 마루에서 잠을 잤다”며 수척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지난 8일 폭우로 집이 통째로 물에 잠기는 바람에 대피소 생활을 하다, 사흘 전 집으로 돌아왔다. 수해 복구가 끝나서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같은 마을 이재민 가족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자, 코로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대피소가 폐쇄됐기 때문이다.

지붕 아래까지 흙탕물에 잠겼던 이씨의 집은 모든 세간살이가 쓰레기로 변했다. 못쓰게 된 가전제품과 이불, 옷가지 등은 겨우 치웠지만, 방바닥과 벽 등은 아직 채 마르지 않아 도배를 할 수도 장판을 깔 수도 없다.

“대피소에선 세 끼 걱정을 안했었는데….” 이씨는 “냉장고와 장독대까지 모두 물에 잠겨 음식 재료가 하나도 없다”며 “구호물품으로 나온 라면이나 햇반 등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인근 음식점에 나가 밥을 사먹는다”고 했다.

◇방은 습기 안말라 도배·장판도 못해

같은 마을 조천중(81) 씨 부부는 대피소에서 돌아온 뒤 뒷방 시멘트 바닥 위에 임시로 장판을 깔고 잠을 청한다. 아내 유찬례(74) 씨는 “70 평생 이런 난리는 처음”이라며 “된장이나 간장 등 음식 해먹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 라면 끓여 밥 말아 먹는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올해 봄부터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해 온 오이고추 농사가 유난히 잘돼 출하를 앞두고 기대가 컸다. 유씨는 “그날(수해가 나던 날) 마침 오이고추를 따러 집을 나서려는데, 아침 8시쯤 갑자기 마당으로 물이 들어차 몸만 빠져나왔다”며 “아홉 마지기 하우스가 모두 떠내려가 아무 것도 건질 게 없다”고 말했다.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금천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오지리 2구와 3구는 이번 수해로 각각 43가구, 56가구가 침수피해를 입었다.

침수 주택에서 나온 수해 쓰레기들은 치워졌으나, 아직 집 담장 등에는 흙탕물이 지붕 아래까지 차오른 경계선이 선명했다. 집안의 낡은 창고와 담장 등은 허물어져 수해의 흉터로 남아 있다. 마을 외곽 창고 주변에 쌓인 쓰레기에서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마루·평상 등에서 모기장 치고 밤 지새

이 마을 침수피해 가구 가운데 29가구 49명은 대피소에서 생활하다, 지난 20일 대피소 폐쇄와 함께 각자 집으로 돌아왔다. 주민들은 방바닥과 벽이 채 마르지 않아 대부분 방 대신 마루나 마당의 평상에 모기장을 쳐놓고 밤을 보낸다.

곡성군과 오곡면은 이재민들에게 밥솥과 가스버너, 쌀·라면·김치 등 식료품, 모기장, 선풍기, 바닥용 은박매트, 이불 등 긴급 구호물품을 지급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불편을 모두 해소할 수는 없었다.

정경윤(67) 씨는 “방은 아직 습기가 많고 냄새도 심해 마루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참깨 등을 심은 500여평 밭이 모두 휩쓸려나갔지만, 아직 손도 못쓰고 있다. 정씨는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온 마을이 피해를 입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

이 마을에서 코로나 확진자 발생에 따라 지난 20일부터 복구작업도 중단됐다. 현재는 마을 안쪽 주택 등의 쓰레기 정리는 어느 정도 진행됐지만, 하우스 등 들녘의 수해 복구는 이제 시작 단계다.

정기문(66) 오지리3구 이장은 “파손된 하우스 시설물과 폐사한 작물 등을 들어내야 멜론·오이·겨울배추 등 다른 작물을 심을 수 있는데, 코로나 사태로 복구작업까지 중단돼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폭우로 침수피해를 입은 전남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 2,3구에 마을 안길에서 수해 쓰레기로 인한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 오곡면과 소방서 관계자들이 물청소를 하고 있다. /오곡면 제공.

한상용 오곡면장은 “침수 주택의 습기가 마르고 도배와 장판 작업이 진행되기까지는 앞으로도 일주일쯤 걸릴 것”이라며 “오늘 인력 80여명이 투입돼 일부 지역 복구 작업이 재개된 만큼, 신속한 복구와 주민 불편 최소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오지리 3구 주민 1명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데 이어 자녀와 배우자 등 일가족 3명이 잇따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확진자의 접촉자와 마을 주민 등 937명에 대한 코로나 검사 결과에서는 다행히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다.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뒤 곡성군은 곡성읍과 오곡면에서 운영하던 대피소를 폐쇄했다. 이에 따라 곡성읍 40명, 오곡면 49명 등 모두 89명이 귀가했다. 곡성읍과 오곡면에서 거리가 떨어진 오산면 대피소는 그대로 유지돼 9명이 생활하고 있다.

곡성군에서는 지난 8~9일 폭우로 6명이 숨지고 48개 마을에서 830가구 1353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 주택 458채와 농경지 701㏊, 하우스 1691동 등이 침수·매몰돼 1129억여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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