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죽어야 의료대란 시작인가" 중환자 가족들 불안 확산
서울성모병원, 코로나 단순 검사 희망자는 받지 않기로 결정
병원들, 장기화에 대비해 대체 인력 투입·수술 일정 등 조정
[경향신문]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 내부는 한산했다. 외래·입원 접수 창구 앞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놓인 의사 가운 수십벌이 눈에 띄었다.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들이 오전 8시쯤 파업을 시작하며 퍼포먼스 일환으로 벗어둔 것이었다. 벽에는 ‘젊은 의사들의 목소리에 한 번만 귀 기울여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성명서가 붙어 있었다. 몇몇 입원 환자나 보호자가 성명서를 읽고 지나갔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 등에 반대하며 21일부터 순차적으로 파업 규모를 확대해 온 종합병원 전공의들(인턴·레지던트)이 이날부터 전체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가 400여명에 육박한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의 코로나19 선별진료소는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해 유증상자와 입원 예정자를 제외한 단순 검사 희망자는 받지 않기로 했다. 증상의 유무를 떠나 광화문 집회 참가자 등 진단검사를 받아야 할 대상이 연일 폭증하는 상황에서 대학병원 선별진료소가 검사를 줄일 경우 보건소에 더욱 과부하가 걸릴 것으로 우려된다. 전공의 90%가 파업에 동참한 부산시도 선별진료소의 검체 채취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고 코로나19 검사 희망자는 각 구·군 보건소를 이용할 것을 권고했다.
이미 진료공백도 발생하고 있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이날 “내과에서는 당분간 응급실로 오는 중환자는 받을 수 없다고 내부에 공지했다”고 밝혔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파업뿐 아니라 중환자실 정기점검이 겹치면서 신규 환자 유입을 자제해달라고 해당 과가 내부공지를 했다”고 말했다. 김형철 대한전공의협의회 대변인이자 세브란스 전공의 대표는 통화에서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못 받는 일은 한 달에 4~5번도 더 있다. 항상 베드가 부족하다. 파업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파업 때문에 수술일정이 밀린 환자의 가족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 중년 여성은 “남편이 뇌 관련 병동에 입원해 있는데 파업 때문에 수술 날짜가 아직 안 잡히는 것 같다”며 “(파업이) 빨리 제대로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암 환자 가족은 암환자 커뮤니티에 “당장 대란이 없다고 하는데 중증 환자 중 누군가 사망해야 대란의 시작인 것이냐”면서 “암 환자 가족들에게 이미 대란은 시작됐다. 정부 편도 의사 편도 아니지만, 모든 피해를 왜 중증 환자들이 짊어져야 하나”라는 글을 남겼다.
지난 2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다음주 잡혀 있던 엄마의 암 수술이 연기됐다. 날짜를 다시 잡긴 했지만 병원 측에선 확신할 수 없어 무기한 연기라고 한다”며 “혼란과 두려움 속에 속절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처지가 너무나 안타깝다”는 글이 올라왔다.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 한방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 육성 등에 반대하며 이를 ‘철회·폐지 후 재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중환자실, 응급실, 분만실, 투석실 등 필수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들은 병원 내 협의에 따라 파업 참여 여부를 선택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날 담화문에서 “정부는 의사 수가 부족하다며 10년간 의무 복무를 조건으로 한 의대 정원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을 막무가내로 이야기한다”며 “의료정책 결정 과정에 현장 전문가의 목소리가 반영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24일부터는 전임의와 봉급의들까지 순차적으로 파업에 합류하고, 26~28일에는 동네 개원의 중심인 의협의 2차 총파업도 예고돼 있어 진료 공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병원 측은 전공의 무기한 파업에 대비해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수술 일정을 조정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교수와 전임의들이 대체하고 있고 다음주 외래·수술은 급한 환자 위주로 일정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주말엔 외래 진료가 없어 평일과 같은 수준이 아니라 의료 공백을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도 “필수의료는 유지되게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탁지영·오경민·이창윤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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