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상위 1%가 세금 42% 낸다"..무너지는 '과세 원칙'

성상훈 입력 2020. 8. 24. 15:40 수정 2020. 8. 2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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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0.1%가 내는 개인소득세
상위 1% 법인이 내는 법인세 역대 최대 비중
근로소득자 10명중 1명이
70%에 달하는 세금부담
하위 4명은 면세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0 세법개정안'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기본적인 과세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있다.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소득자에 대한 혜택은 놔둔채 상위소득자에 대한 ‘핀셋 증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과세액 중 상위 개인·법인 소득자가 부담하는 과세 비중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윤창현 미래통합당 의원실이 24일 법인, 개인 소득세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도 상위 0.1% 개인소득자가 부담하는 통합소득(근로+종합 소득)세의 비중은 18.7%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비중은 2014년(18.2%), 2015년(18%), 2016년(17.4%)로 낮아지는 추세를 보였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18.6%로 크게 올랐고, 2018년에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상위 1%가 부담하는 통합소득세의 부담비중도 전체 세금의 41.6%에 달했고, 범위를 넓혀 상위 10%로 봤을 때는 전체 세금의 78.3%를 부담했다. 전체 소득자 10명 중 1명이 80%에 달하는 세금을 내고 있었다.

 상위 0.1%, 1%의 법인의 납세비중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법인세 중 상위 0.1% 법인의 총부담세액의 58.8%로 4년 전인 2014년 53%에 비해 5.8%포인트 증가했다. 상위 1% 법인의 과세 비중도 78.4%로 4년만에 75%에서 3.4%포인트 올라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법인들의 수입액 중 상위 법인이 벌어들이는 금액의 비중은 오히려 감소했다. 상위 1% 법인의 경우 51.6%에서 50.2%로, 상위 10%는 69.8%에서 68.7%로 줄었다. 상위 법인이 벌어들이는 금액의 비중은 줄었는데 내는 비율은 증가한 셈이다. 

 윤 의원은 "각종 핀셋, 부자 증세로 '모두가 조금씩 낸다'는 기본적인 공평과세 원칙조차 훼손되고 있다”며 “이 정부 들어 효율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생각하는 '경제의 정치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 핀셋증세 흐름이 이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거꾸로 가는 정부정책...'핀셋증세 5종 세트' 준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0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0년 세법개정안 발표'에서 기본 방향 등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위 소득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의 구조는 기형적이라는 지적은 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이어져왔다. 이러한 지적에도 정부는 최고 소득 구간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높이는 등 정치적 타격이 적어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부자증세’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금도 정부는 소득세·금융투자소득세·종부세·양도세·취득세 등 이른바 ‘핀셋증세 5종 세트’를 준비하고 있다.

 전체 근로소득자 10명 중 1명이 세금의 70% 부담, 다른 4명은 면세

개인, 법인 모두 상위 소득자의 ‘버는 비중’에 비해, ‘내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인의 경우 전체 수입 중 상위 0.1% 법인이 차지하는 금액의 비중은 50.2% 였지만, 법인세 부담비중은 전체의 58.8%였고, 상위 1%의 경우 수입은 68.7%, 세금은 78.4%였다.

 개인소득자의 경우 세금격차는 더욱 현저했다. 상위 0.1% 소득자는 전체 소득의 4.2%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들이 내는 세금의 비중은 전체의 18.7%에 달했다. 상위 1%는 전체 수입의 11.2%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소득세로는 41.6%를 부담하고 있었다. 상위 10%로 넓혀봐도 36.8% 소득 비중에, 78.3% 세금 부담을 지고 있었다. 

 특히 근로소득의 경우, 격차는 더 커졌다. 전체 급여중 상위 0.1% 근로소득자가 받는 급여의 비중은 2.1%였지만 이들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비중은 12.2%였다. 상위 1%, 상위 10%의 경우 급여 비중은 각각 7%, 31.6%였지만, 세금 비중은 32%, 73.7% 였다. 반대로 하위 38.9%의 근로소득자는 아예 세금을 내지 않고 있었다. 10명중 1명이 70%에 달하는 세금을 내는 와중 다른 4명은 전혀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셈이었다. 

 “기형적 세금 체계“는 지적에도, 정부는 ‘핀셋증세’

국회 입법조사처도 현재의 소득세 체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입법조사처는 '2020년도 국정감사 이슈분석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소득세 체계는 약 10여년 동안 과세표준구간과 세율 구간의 변화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단지 고소득층의 과세표준구간 변경과 세율 증가만을 가지고 소득세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38.9%에 달하는 근로소득세 면세자를 축소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입법조사처는 "납세자인 국민의 공감을 필요로 하는 사항이지만 지나치게 확대된 면세자 비율을 축소함으로써 국민개세주의 원칙을 실현하고 납세자 간 형평성을 제고해야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정반대의 정책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새로운 새법개정안을 내놓고 소득세 과표 1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최고세율을 종전 42%에서 45%로 올리기로 했다. 그러면서 소득이 낮아 사실상 세금을 전혀 내지 않던 면세자들의 혜택은 유지하면서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및 납부면제자 기준은 상향하기로 했다. 입법조사처가 앞서 지적한 '고소득층의 과세구간 신설과 세율 증가만으로 소득세 구조를 유지' '과도한 면세자 비율'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셈이다.

 정부는 이외에도 핀셋 증세 방안을 연달아 내놓았다.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상품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득과 손실을 합산해 과세하는 금융투자소득세를 2023년부터 도입하기로 했고, 지난 4일에는 부동산을 잡겠다며 내놓은 종부세·양도세·취득세 상향안이 국회를 통과해 2021년 적용을 기다리고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핀셋 증세만에만 집착하는건 조세정의에 반하는 것"이라며 "경제의 역동성을 해친다는 측면에서 '효율성', 공평과세 원칙을 훼손한다는 측면에서 '형평성' 모두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역대 최대 공공지출 증가폭...핀셋증세 흐름 이어질까

그럼에도 정부여당이 '핀셋증세'에 집착하는건 과세의 반대편인 세금 지출에 있어서 건전성이 빠르게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부와 공기업 활동의 전체규모를 보여주는 ‘2019년 한국은행 공공부문 계정’에 따르면, 작년 공공부문의 지출은 1년만에 62.8조가 증가했다. 통계가 작성된 2010년 이후 최고치다. 최대폭의 지출 증가로 공공부문 흑자도 1년전인 53.1조에 비해 13.8조로 39.3조원(74%)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정부, 금융공기업, 비금융공기업 등으로 나눠 세부적으로 봐도 재정 건전성은 크게 악화되고 있었다. 특히 금융공기업의 경우 흑자규모가 1년만에 5.7조에서 2.9조로 반토막 났고, 비금융공기업은 3년 연속 적자를 봤다. 이러한 건전성 훼손에는 공공부문 인건비의 증가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공공부문 인건비는 1년만에 6.6% 증가를 보여 통계작성후 최대치였다.

씀씀이가 빠르게 커지는 만큼 이를 감당하기 위한 증세가 필연적이고, 그러면서도 정부가 조세 저항이 적고 정치적 타격이 덜한 부자증세 방안을 선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의 공공부문 지출 증가폭을 고려했을때 정부는 증세카드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지금의 핀셋증세 방안로는 제대로 된 세원확보조차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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