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회적 범죄" 거친 말 쏟아낸 文, 기본권 제한도 내비쳤다

강태화 2020. 8. 2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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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24일 “국가의 방역 체계에 도전하며 방역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거나 협조를 거부하는 행위들이 코로나 확산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발언에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코로나19 2차 대유행 우려가 커지면서 이날 회의에는 평소보다 적은 참석자들이 유리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 회의를 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수석ㆍ보좌관 회의에서 “현재는 코로나 사태 초기 신천지 상황보다 훨씬 엄중한 비상상황”이라며 “악의적이고 조직적인 방역 방해와 가짜뉴스 유포는 공동체를 해치는 반사회적 범죄”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해치는 불법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행정명령을 거부하며 방역에 비협조하거나 무단이탈 등 개인의 일탈 행위 또한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반사회적 범죄" "노골적 방해" "확산의 온상" 등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여태 코로나 관련 언급 중 가장 강도 높은 수위라는 평가다. 그 비판의 대상은 8·15 광화문 집회를 주최한 전광훈 목사 등 일부 보수·기독교 단체를 향했다.

앞서도 문 대통령은 최근 코로나 재확산의 원인을 8·15 집회로 돌리는 듯한 메시지를 여러 차례 냈다. 문 대통령은 집회 다음날인 16일 페이스북에 "대규모 집단 감염원이 되고 있는 일부 교회의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집회 참석자들에게 코로나가 전파되었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온 국민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비상식적 행태다.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런 기조에서 문 대통령은 20일 천주교 지도자들을 만나 “(불법 집회 등은) 단호하게 대처하겠다. 종교가 모범이 되어달라”고 말했고, 21일 서울시와의 긴급 점검 회의에서는 “공권력이 살아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어떤 종교적 자유도, 집회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국민에게 그와 같은 엄청난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정부 및 여당 규탄 관련 집회에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 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ㆍ출판의 자유와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다만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 보장·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일부 기본권을 제한할 때도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 15일 광화문 집회를 비롯해 지자체가 시행하고 있는 집회 금지나 제한 명령은 지난 3월 4일 개정된 감염병예방법을 근거로 한다. 이에 따라 행정법원은 서울시가 낸 집회금지 결정에 반발해 보수단체가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 10건 중 8건을 기각했다. 다만 2건의 집회는 허가했다. 전면적 집회 금지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헌법 가치 충돌 논란을 야기할 수 있음에도 문 대통령이 이날 종교·집회·표현의 자유 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배경에는 현재의 코로나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관측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미 국민에게 끼친 피해가 너무나 크다. 다수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고 일상을 멈추게 했으며, 경제와 고용에도 큰 타격을 줬다”며 "한숨 돌리는가 했던 여행과 공연 등 서비스업에 치명타가 됐고, 심지어 집중호우의 피해 복구조차 어렵게 만들었다"고 했다. “누구라도 코로나에 감염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금만 방심하면 언제 어디서든 감염자가 폭증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간”이라고도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지금 단계에서 막아내지 못한다면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로 격상될 수밖에 없다”며 “(3단계가 되면)일상이 정지되고 일자리가 무너지며 실로 막대한 경제 타격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부 기본권은 불가피하게 제한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대한의사협회가 14일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확대 등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총파업 궐기대회를 열었다. 서울 여의도 집회에 참석한 의협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 3만3836개소 중 1만1025개소(32.6%)가 휴진했다. [뉴스1]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두고선 법조계 일부에서 우려가 나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의 기본권과 이를 제한하는 공공복리의 가치 간에는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헌법에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조건을 자의적인 판단이 아닌 법률로 제한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향후 관련된 위헌소송이 제기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교수(헌법학)는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면밀한 법적 잣대를 거쳤다기보다는 정치인의 발언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특히 야당은 "대통령이 희생양 삼기와 공포감 조성이라는, 구태 정치를 한다"며 날선 목소리를 냈다. 미래통합당 배준영 대변인은 논평에서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고 하나로 뭉쳐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 때 정부는 화만 잔뜩 나 있다”며 “문 대통령은 모든 방향으로 손가락질하며 책임을 떠넘기는데, 국가 방역의 모든 책임은 대통령과 정부에게 있다”고 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집단행동을 벌이고 있는 의료계에 대해서도 경고의 메시지를 냈다. 그는 “코로나 확산 저지에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할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집단행동은 결코 지지받을 수 없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거나 비판할 수 있지만, 합법적인 선을 넘어선 안 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휴진, 휴업 등의 위법한 집단적 실력 행사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공공의료 확충은 우리 사회가 가야할 방향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의료인들도 공감할 것"이라며 "어제 전공의들이 중환자실 확보, 선별진료소 운영과 확진자 치료 등 코로나 진료 필수 업무에 협조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코로나 위기 극복에 우선 합심하고, 상황이 안정된 후 대화로 해법을 찾자고 내민 정부의 손을 잡아주기 바란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수석들간 거리두기 및 투명 칸막이를 설치한채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0.08.24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날 회의는 참석 인원이 최소화됐고, 참석자들은 플라스틱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은 채 진행됐다. 비서관들은 영상으로 회의를 지켜봤고, 양제츠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회담을 마친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5일간의 격리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청와대 근무자들은 출ㆍ퇴근 시는 물론 사무실에서 업무를 볼 때도 상시 마스크를 착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태화ㆍ손국희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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