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방역 올인, 기본권 제한 꺼냈다

강태화 2020. 8. 2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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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어떤 종교·표현 자유도
국민 피해 입히며 주장해선 안 돼
방역 방해, 가짜뉴스 유포는 범죄"
통합당 "코로나 재확산의 책임을
종교·집회·표현의 자유 탓 몰아가"
문 대통령, 종교·의료계 직접 지목
"지금 못 막으면 거리두기 3단계"
"한숨 돌리던 여행·공연 치명타"에
야당 "소비쿠폰 발행부터 반성을"
문재인

문재인 대통령(얼굴)은 24일 “어떤 종교적 자유도, 집회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국민들에게 그와 같은 엄청난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부는 국민 안전과 공공의 안녕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공권력의 엄정함을 분명하게 세우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선 헌법상의 기본권이 제한될 수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가의 방역 체계에 도전하며 방역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거나 협조를 거부하는 행위들이 코로나 확산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못 박았다. 특정인이나 세력을 구체적으로 지칭하진 않았지만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8·15 광복절 집회 일부 참가자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은 이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해치는 불법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 “악의적이고 조직적인 방역 방해와 가짜뉴스 유포는 공동체를 해치는 반사회적 범죄” “행정명령을 거부하며 방역에 비협조하거나 무단이탈 등 개인의 일탈 행위 또한 용납할 수 없다”며 이런 행동들이 국민들에게 입힌 ‘엄청난 피해’ 사례들을 열거했다. “다수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고, 일상을 멈추게 했으며 경제와 고용에도 큰 타격을 줬다” “한숨 돌리는가 했던 여행과 공연 등 서비스업에 치명타가 됐고, 심지어 집중호우 피해의 복구조차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종교나 집회의 자유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까지 언급했고, 특정 뉴스를 거론하지 않은 채 “가짜뉴스 유포는 공동체를 해치는 범죄”라고 단정한 것은 논란을 부를 전망이다. 당장 미래통합당의 중진 의원은 중앙일보에 “마치 코로나 재확산의 책임을 종교·집회·표현의 자유로 몰고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현재 상황을 “코로나 사태 초기 신천지 상황보다 훨씬 더 엄중한 비상 상황”으로 규정하며 “서울과 수도권이 확산 중심지가 됐고, 전국 어느 곳도 안전지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지금 단계에서 막아내지 못한다면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로 격상될 수밖에 없다”며 “3단계 격상은 결코 쉽게 말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일상이 정지되고, 일자리가 무너지며 실로 막대한 경제 타격을 감내해야 한다. 의료 체계까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대통령은 집단행동 경고 … 총리는 “임시공휴일 도움 안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회의는 투명 칸막이를 설치한 채 참석 범위를 최소화해 진행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편 공공의대 정원 확대 등의 문제로 정부와 대립 중인 의료계를 향해서도 문 대통령은 “코로나 확산 저지에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할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집단행동은 결코 지지받을 수 없다”며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휴진, 휴업 등의 위법한 집단적 실력 행사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한 기본권 제한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방역 도전 세력’과 각을 세운 문재인 대통령의 24일 발언을 놓고 학자들 사이에선 우려가 제기됐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본권과 이를 제한하는 공공복리의 가치 간에는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헌법에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조건을 자의적인 판단이 아닌 법률로 제한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향후 관련된 위헌소송이 제기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교수(헌법학)는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과 공공복리를 위한 제한 규정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해당 발언은 면밀한 법적 잣대를 거쳤다기보다는 정치인의 발언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고 했다.

여야의 입장은 갈렸다. 미래통합당 배준영 대변인은 논평에서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고 하나로 뭉쳐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 때 정부는 화만 잔뜩 나 있다”며 “문 대통령은 모든 방향으로 손가락질하며 책임을 떠넘기는데, 국가 방역의 모든 책임은 대통령과 정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통합당에선 문 대통령이 “한숨 돌리는가 했던 여행과 공연 등 서비스업에 치명타가 됐다”고 언급한 것도 문제 삼았다. 중진 의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비 쿠폰까지 발행하며 ‘방역에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하던 실책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정세균 국무총리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것과 관련해 “결과적으로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런 점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야당의 혹평과 달리 더불어민주당 3선 의원은 문 대통령 발언에 대해 “그동안 잘 대처해온 만큼 이번 고비도 잘 헤쳐나가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법리적으로 따지기보다 방역 의지를 강조한 정치적 발언으로 봐 달라는 것이다. 청와대 주변에서도 “법조인 출신인 문 대통령이 기본권의 중요성을 몰라서 한 얘기가 아닐 것” “논란의 소지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코로나 상황에 대한 엄중한 인식 때문”이란 옹호론이 제기됐다.

하지만 야당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다. 통합당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강경 발언이나, 극우세력과 통합당을 동일시하는 민주당의 태도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의심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최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8·15 광복절 집회 일부 참가자를 겨냥한 듯한 문 대통령의 발언 수위는 눈에 띄게 높아져왔다.

집회 다음 날인 16일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썼다. 21일 서울시청을 방문해선 “감염병관리법뿐만 아니라 공무집행 방해 등도 적용해서 단호하게 법적 대응을 하라” “필요할 경우엔 현행범 체포라든지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든지 엄중한 법 집행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24일엔 기본권 제한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이다. 코로나 재확산이 빨라지고 문 대통령의 대응이 강경해지면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반등한 여론조사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24일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에 따르면 YTN의 의뢰로 지난 18일부터 나흘간 전국 유권자 25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전주보다 2.8%포인트 오른 46.1%였다. 민주당의 지지율도 4.9%포인트 오른 39.7%로, 1.2%포인트가 빠진 통합당(35.1%)을 다시 앞섰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지지율 하락 국면이던 1주일 전쯤 갑작스럽게 등장했던 문 대통령과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회동 얘기는 수면 아래로 쑥 내려갔다.

강태화·손국희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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