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립스틱 남자 아이돌, 메이크업 광고 점령하다

유지연 입력 2020. 8. 25. 00:05 수정 2020. 8. 25.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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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석·김요한·강다니엘·백현 등
스타 모델로 쓴 팬심 마케팅
화보 공개한 날 매출 20배 뛰기도
남성도 겨냥, 젠더리스 새 트렌드
여배우, 여성 아이돌의 전유물이었던 메이크업 화보에 남성 아이돌이 등장했다. 핑크로 눈가를 물들인 김우석. [사진 각 브랜드]

예쁘고 멋진 유명 여성들이 차지해온 메이크업 제품 광고 모델 자리를 남자 아이돌이 꿰차고 있다. 각종 미디어 광고 코너는 짙은 립스틱과 화려한 펄 아이섀도를 바른 남자 모델이 점령했다.

지난 2월 색조 브랜드 ‘클리오’의 모델로 발탁된 그룹 ‘업텐션’의 멤버 김우석은 같은 달 공개된 뷰티 화보에서 희고 고운 피부에 붉은 입술 컬러, 날카롭게 다듬은 눈매의 화려한 모습을 선보였다. 화보의 주력 광고 제품은 붉은 립스틱이었다. 지난 10일 공개된 화장품 브랜드 ‘토니모리’의 젠더리스 메이크업 화보에는 그룹 ‘위아이’의 김요한이 등장했다. 6월 모델 선정 후 두 번째 화보다. 브랜드 측 설명에 따르면 이번 화보에서 그는 쿠션 팩트로 결점 없는 피부를 연출하고, 그윽한 음영과 또렷한 눈매를 위해 마스카라와 아이라이너를 사용했다. 화장품 브랜드 ‘티르티르’는 그룹 ‘엑소’의 백현을 모델로 지난 5월 ‘조이 오브 저니 메이크업 키트’를 출시한 바 있다. 백현이 기획부터 개발·디자인까지 참여한 협업 제품으로 립 틴트 6종으로 구성됐다.

여배우, 여성 아이돌의 전유물이었던 메이크업 화보에 남성 아이돌이 등장했다. ‘젠더리스’ 메이크업 화보 선보인 김요한. [사진 각 브랜드]

국내 브랜드만의 특징은 아니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지방시 뷰티’는 지난해 9월부터 가수 강다니엘을 브랜드 공식 모델로 발탁해 다양한 화보와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7월에는 파우더·쿠션팩트·립스틱 등을 활용한 메이크업 화보와 메이크업 튜토리얼 영상을 공개했다. 화보에서 강다니엘은 붉은 입술에 립스틱을 가져다 댄 포즈를 취했다.

여성이 주력 고객인 화장품 브랜드 모델로 남성 아이돌을 선택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핵심 타깃 층에 다가가기 쉽기 때문이다. 20대 초중반 여성들에게 호응을 얻기 위해 그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모델을 선정한다는 것. 그가 남자라도 말이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남성 아이돌의 영향력은 매출로 연결된다.

여배우, 여성 아이돌의 전유물이었던 메이크업 화보에 남성 아이돌이 등장했다. 붉은 립스틱을 든 강다니엘. [사진 각 브랜드]

클리오는 김우석을 모델로 립스틱 화보를 공개하면서 포스터·포토카드·스티커 등의 한정판 아이템 증정 이벤트를 진행했다. 당일 해당 립 제품은 판매량이 전일 대비 20배 치솟았다.

티르티르와 백현이 협업한 메이크업 키트는 출시 직후 동나 2개월 후 2차 판매를 진행했다. 티르티르의 금인화 마케팅 담당자는 “브랜드 관련 검색량과 고객 반응이 기존에는 주 구매층이었던 20대 후반 이상의 연령대에서 나왔다면, 백현 모델 발탁 이후 10대를 포함한 새로운 고객층이 늘어났다”고 했다.

여배우, 여성 아이돌의 전유물이었던 메이크업 화보에 남성 아이돌이 등장했다. 브랜드와 함께 메이크업 키트를 낸 백현. [사진 각 브랜드]

이렇듯 브랜드는 아이돌을 모델로 선정함으로써 그를 지지하는 팬덤의 관심과 구매력을 확보할 수 있다. 자신의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사람)’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아이돌 팬덤 특유의 높은 충성도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스타를 후원한다는 이른바 ‘양육자 팬덤’이 트렌드이기에 가능하다. 게다가 요즘 팬덤은 영민함도 갖췄다. 자신이 지지하는 스타가 브랜드 모델로서 효과가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각종 SNS에 화보 사진을 퍼 나르고 해시태그를 붙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남성 아이돌 모델의 경우 사진만 공개해도 트위터·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끊임없이 이미지가 재확산 된다”며 “이때 색이름과 브랜드 이름까지 꼼꼼하게 연관 해시태그로 알아서 달아주니 홍보 효과가 엄청나다”고 했다.

남성 아이돌이 짙은 화장을 하고 등장하는 뷰티 광고에 팬이 아닌 일반인들은 어색함이나 거부감을 느끼진 않을까. 업계 관계자들은 남성 아이돌의 무대 메이크업 자체가 화려해졌다는 점을 언급했다. 평소에도 무대 위에서 화려한 메이크업을 선보이기 때문에 뷰티 광고나 화보에서 짙은 메이크업을 해도 그다지 어색해 보이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 또한 나름대로 과해 보이지 않기 위해 몇 가지 장치도 한다. 한 브랜드 관계자는 “아무리 화보에서 메이크업을 진하게 해도 남자 모델에게 마스카라(속눈썹 화장)를 하진 않는다”며 “화장을 하더라도 특유의 카리스마와 신비감, 약간의 남성미는 남겨두는 게 룰”이라고 전했다.

남성 아이돌이 광고하는 메이크업 제품들.

화장품 광고업계에서 모델이 갖춰야 했던 기존 스테레오 타입이 무너진 것도 이유다. 신체적 특성이나 외모·연령대가 다양한 여성 모델이 등장하고, 젠더 경계도 흐릿해졌다. 오히려 고정된 성 역할을 지닌 안전한 모델 선정은 재미없게 여겨진다. 틀을 부술수록 대중은 신선함을 느끼기에 남자 아이돌의 립스틱 화보는 대담하고 개성 있는 선택이 됐다.

한편으론 약진하는 남성 메이크업 시장을 간과할 수 없다는 계산도 있다. 남녀 성별의 경계를 지우는 젠더리스 트렌드가 패션은 물론 뷰티와 라이프스타일 업계까지 확산하면서 메이크업 제품이 꼭 여성을 위한 제품이 아니게 됐다. 남성 아이돌이 바르고 나오는 제품의 소비자가 남성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설문조사업체 오픈서베이가 지난 4월 조사한 ‘남성 그루밍 트렌드 2020’에 따르면 ‘항상 메이크업한다’고 대답한 남성 응답자가 20~24세는 9.1%, 25~29세는 8.4%에 달했다. 토니모리 권윤미 마케팅 담당자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소비자에게도 접근할 수 있는 남성 아이돌 모델을 통해 젠더리스 트렌드에 익숙한 MZ세대를 공략 중”이라고 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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