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여당의 '테러방지법' 소환

원선우 정치부 기자 2020. 8. 25.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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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선우 정치부 기자

더불어민주당은 8·15 때 광화문 집회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겨냥해 이른바 '전광훈 방지법'을 쏟아내고 있다. 정청래 의원은 재난으로 피해를 보거나 피해 발생이 우려되는 사람에 대한 개인 정보 제공 요청에 불응하는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의 재난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성주·이원욱·오영환·전용기 의원도 감염병예방·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역학조사를 방해하거나, 집합 행위 금지 조치 등을 위반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법률안을 들여다보면,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3월 제정한 테러방지법과 비슷한 내용이 많다. 당시 테러방지법은 '국가는 테러 위험 인물의 출입국·금융·통신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9조)'고 규정했고 '테러 선동·선전물 긴급 삭제(12조), 테러 피해 지원(15조)' 등을 명시했다. 테러 단체의 수괴(首魁) 등에 대한 중벌 조항도 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테러방지법에 대해 "헌법이 보장한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했다. 의원 38명이 쉬지 않고 192시간 27분 동안 발언해 세계 최장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민주주의를 테러하는 법"(유승희) "정권은 짧고 국민은 영원하다"(정청래) "논쟁이 없는 민주주의는 위기"(홍익표) "어떠한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은수미)는 발언이 쏟아졌다. 그 직전에 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도 "야당(민주당)엔 민주화·시민·노동·인권 운동을 한 의원이 많다"며 "인권침해를 경고하는 것이야말로 야당의 존재 이유"라고 했다.

그랬던 민주당이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에 대해선 유사한 내용의 법을 적용하자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 김부겸 당대표 후보는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 등은 사실상 생화학 테러 집단"이라고 했다. 최고위원에 출마한 노웅래 의원은 "전광훈을 테러방지법 위반으로 즉각 구속해야 한다"고 했고, 이원욱 의원도 "바이러스 테러범 전광훈을 긴급 체포하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4년째이고, 민주당이 176석 거대 여당이 된 지도 4개월이 넘었다. 하지만 야당 때 '시대의 악법(惡法)'이라고 비판했던 테러방지법을 폐기한다는 얘기는 어디서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테러방지법을 발동하자"며 '즉각 구속, 긴급 체포'를 얘기하고 있다.

전광훈 목사와 일부 인사가 잘못한 것은 맞는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을 결사 반대했던 민주당이 불과 4년 만에 이들을 엄벌하겠다며 닮은꼴 법안을 만드는 모습을 보니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민주'와 '공안'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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