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재난지원금은 실패했다[광화문]

양영권 경제부장 2020. 8. 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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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관장은 씩씩하고 밝은 평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두 아이를 태권도 학원에 당분간 보낼 수 없다고 하자 그는 "이해한다"고 했다. K 관장은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지면 꼭 다시 보내달라고 거듭 간곡하게 부탁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시기를 기약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K 관장의 태권도 학원은 지난 3월 코로나19가 확산하자 거의 3개월간 문을 닫았었다. 거리두기가 완화하면서 다시 열었지만 원생은 절반 가까이 줄어 있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도와주던 젊은 사범은 결국 복직을 못했다.

코로나19가 서울과 수도권을 너머 전국으로 퍼지면서 3월의 악몽이 다시 시작됐다. 문을 사실상 닫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상가 임대료와 관리비는 꼬박꼬박 나간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헤아려 보는 게 두렵다.

지난 주 통계청이 내놓은 가계동향 조사 결과는 K 관장과 같은 교육 관련 자영업자들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도 2분기 우리 가계의 평균 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늘었다. 하지만 교육 분야 지출은 29.4% 감소했다. 고교 무상교육 확대 시행과 등교 축소 등으로 정규교육 지출이 54.1% 줄어든 게 크지만, 학원과 보습교육 지출도 23.4% 감소했다.

이 통계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보편적으로 2분기에 지급한 재난지원금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재난지원금의 목적 중 하나는 소비 회복이었다. 가계의 소비 지출을 늘려 매출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들을 돕자는 거였다.

하지만 자영업자·소상공인 비중이 큰 교육분야나 오락문화(-21.0%), 음식숙박(-5.0%) 지출 감소를 막는 데는 실패했다는 게 가계동향 조사 결과 확인됐다. 가정용품·가사서비스(21.4%), 교통(24.6%), 주류담배(9.5%) 등 코로나19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거나 오히려 소비를 더 하게 돼 있는 분야 위주로만 지출이 늘었다.

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로 줄어든 소득을 보전해준다는 본래의 취지도 한참 벗어났다. 2분기 가구의 평균 경상소득은 4.3% 늘었다. 그런데 경상소득을 구성하는 항목 중 근로소득(-5.3%), 사업소득(-4.6%), 재산소득(-11.7%)이 줄었다. 이전소득만 80.8% 늘어나 전체 경상소득이 증가했다. 재난지원금이 없었던 지난 1분기 이전소득 증가율은 4.7%에 불과한 것을 볼 때 2분기 이전소득 폭증은 재난지원금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근로·사업·재산 소득이 줄어든 것 이상으로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았다는 것은 ‘부족한 것을 채운다’는 뜻의 ‘보전’이 더이상 아니다. 총선 정국을 거치면서 나라가 빚을 내 국민에게 배당금을 줬다고 하는 게 옳다.

‘코로나 블루’를 겪는 국민들에게 위안을 준 것도 재난지원금의 의미라고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수해복구 지원금은 수해 피해를 겪은 사람에게 줘야지, 역대 최장기간 장마로 우울한 국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할 필요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난지원금으로 소고기를 샀다는 보도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했지만 재난지원금이 국가지도자가 국민에게 주는 용돈으로 인식돼서는 안된다.

코로나19가 재차 확산하면서 2차 재난지원금 도입 논의가 무르익는 모습이다. 빠듯한 재정상황을 생각하면 현재까지 나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1차 재난지원금의 긍정, 부정적 효과를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 분석의 결과는 1차와 같이 전체 국민의 평균 소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실직자와 무급휴직자, 그리고 매출이 줄어든 자영업자 등의 생계를 지원하는 걸 우선으로 생각하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한편에서 개인 증시 자금이 역대 최대를 기록할 정도로 돈이 넘쳐나지만, 코로나19 재확산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달에 이미 실업자가 21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고 취업자는 5개월째 감소하는 등 취약계층의 처지는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특히나 섣부른 거리두기 완화가 2차 확산을 불렀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보편적 지급으로 소비를 살려 경제성장률 추가 하락을 막아보겠다는 계산은 접어둬야 한다. 정책 담당자들은 정치적 의도를 추종할지 경제적 효과를 추구할지 결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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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경제부장 indep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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