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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英 울린 '맨발 아빠' 1127km 행군.."딸 희귀병 연구비 모았다"

임선영 입력 2020.08.25. 05:02 수정 2020.08.2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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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아빠, 딸 치료법 연구비 모금하려
25kg 완전군장에 맨발로 1127km 걸어
"아픈 아이들의 치료법 개발이 내 임무"
38일간 대장정 완주, 8억원 넘게 모금

한 남성이 영국 에든버러의 목적지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를 향해 박수를 친다. 무게 25kg의 완전 군장을 하고 걷고 있는 그의 발은 상처투성이다. 그는 잉글랜드 땅 끝 지역 란즈엔드에서 이 곳까지 1127km 거리를 맨발로 걸어왔다. 38일이나 걸린 대장정이었다.

크리스 브래니건이 딸을 위해 맨발로 국토대장정을 완주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완주의 순간,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를 반겨주는 딸과 눈이 마주쳐서다. 그가 손짓하자 딸은 아빠를 향해 달려온다. 두 팔을 벌려 딸을 꼭 안은 그는 뜨거운 눈물을 쏟는다.

영국에 사는 크리스 브래니건(40)은 직업 군인(육군 소령)이다. 하지만 그의 이번 행군은 딸을 위한 것이었다. 그의 딸 하스티(8)는 코넬리아디란지증후군(CdLS)이란 희귀질환을 앓고 있다. 그는 이 희귀질환의 치료 연구비를 모금하기 위해 이 도전에 나선 것이었다.

딸을 위해 국토대장정을 마친 브래니건이 마중 나온 딸이 달려오자 안으려 무릎을 꿇고 있다. [트위터 캡처]


지난 24일(현지시간) 영국 더선 등 외신은 맨발로 국토대장정을 완주한 군인 아빠의 사연을 소개했다.

그의 딸 하스티는 2018년 코넬리아디란지증후군을 진단받았다. 사람에 따라 증상이 다르지만 성장 지연, 골격과 행동 장애, 극심한 불안증상 등이 나타나는 희귀질환이다. 아직 치료법이나 치료제가 존재하지 않고 있다. 브래니건은 “우리가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듣고 망연자실했다”고 말했다.

맨발로 국토대장정을 마친 브래니건이 딸을 안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하지만 ‘군인 아빠’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3월 딸의 이름을 딴 자선 단체(CdLS Hope for Hasti)를 만들었다. 딸은 물론이고 이 질환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위한 치료법 연구‧개발비를 대는 게 설립 목적이다. 우선 기초 연구비로만 40만 파운드(약 6억2000만원)가 필요했다. 그는 온라인 모금 사이트에 '맨발 행군' 계획을 밝히면서 "아픈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40만 파운드 모금을 위한 국토대장정에 나서기 전 BBC 등과의 인터뷰에서 “실패가 두렵기도 하지만, 나는 아빠다. 딸과 희귀병을 앓고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기 위해 도전한다”고 말했다.

브래니건과 그의 딸 하스티. [트위터 캡처]


그러면서 “군대 작전에 두 번 투입됐었다. 아이들을 위한 치료법 개발을 위해 싸우는 게 내 세번 째 임무라고 여긴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6일 완전 군장을 하고 행군에 나섰다. 숙소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잠을 잘 수 있는 1인용 텐트도 메고 다녔다. 총 25kg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더욱 참기 힘든 고통은 찢어지고 갈라지는 발이었다. 발이 감염되기도 했고, 목발을 짚고 걸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는 “통증이 심할 땐 마치 유리 위를 걷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평소 고된 훈련으로 단련된 군인임에도 "육체적·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도전이었다”고 했다.

완전 무장한 브래니건이 맨발로 행군하던 중 달리고 있다. [트위터 캡처]


맨발로 국토대장정을 해 상처투성이가 된 브래니건의 발. [트위터 캡처]


힘들 때마다 그는 아픈 딸과 아이들을 떠올리며 버텼다. 그는 “모든 고통스러운 발걸음과 모든 기부는 아무리 작더라도 치료에 대한 연구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의 행군은 외롭지만은 않았다. 그의 동료 군인들과 행인들도 일정 구간에서 ‘맨발 행군’에 동행해줬다.

결국 그는 지난 13일 국토대장정을 완주해 내고 말았다. 그는 이 도전으로 목표액을 초과 달성한 52만 파운드(약 8억1000만원)를 모금했다.

브래니건의 동료들이 그와 함께 걷고 있다. 브래니건은 맨발로 걸어 상처투성이가 된 발에 붕대를 감기도 했다. [트위터 캡처]


브래니건의 대장정에 동참하길 원한 한 어린이가 맨발인 채로 그와 일정 구간을 함께 걷고 있다. [트위터 캡처]


그는 “어떤 부모라도 자녀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아픈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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