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소주 공용병 재사용 자율협약 결국 백지화..투명병·초록병 1대1 맞교환

이선애 2020. 8. 2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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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이즈백 돌풍에 10념 넘게 지속된 '초록색 동맹' 종료
소주업체 10개사, 이형병과 공용병 1대 1 맞교환 원칙 합의
일각, 이형병 출시 활발..소주병 재활용 시스템 붕괴 우려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소주업계가 10년 이상 지켜온 '녹색병 동맹'이 결국 깨졌다. 공용병(초록색 병)과 이형병(투명색 병)의 1대 1 맞교환이 가능해져 사실상 '소주 공용병 재사용 자율협약'이 백지화됐다. 초록색 병 일색이던 소주 시장에 다양한 형태와 색상의 병들이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초록색 병 아니어도 1대 1 교환

25일 환경부와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따르면 최근 소주업체 10개사는 비표준용기(이형병)와 표준용기(공용병), 비표준용기와 비표준용기 각각 1대 1 맞교환 원칙에 합의했다. 1대 1 용기 반환이 어려울 경우에는 각사와 센터가 합의한 반환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교환이 가능하다.

환경부와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는 지난 1월부터 소주병 '비표준용기 교환 및 재사용 체계 개선을 위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비표준용기로 인한 빈용기 재사용에 대한 전 과정(회수-선별-생산 등)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추가 발생 비용 등에 대한 조사ㆍ분석을 통해 적정한 교환 비용 및 교환 방식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업계는 2009년 소주 공용병 재사용 활성화와 편의성 제고를 목적으로 자발적 협약을 맺고 같은 모양의 초록색 병을 사용해왔다. 가장 유통량이 많은 '참이슬' 병을 공동 제작, 사용해 재사용률을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하이트진로가 투명색 병에 담긴 '진로이즈백'을 출시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롯데칠성음료는 진로이즈백의 투명색 병은 협약을 벗어난 이형병(모양이 다른 병ㆍ異形甁)이라며 반발했다. 초록색 병의 경우 각 소주업체가 타사 제품 빈병까지 회수한 뒤 공장에서 세척 과정을 거쳐 재사용하고 있다. 병 모양이 다를 경우 수거업체는 타사 제품의 이형병을 분류한 뒤, 각 사에 이를 돌려줘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별도의 비용이 발생한다.

롯데칠성음료 공장에 진로이즈백 빈병이 쌓여 있던 모습. 사진제공=설훈 의원실

진로이즈백 인기에 무너진 자율협약

복고 트렌드를 타고 진로이즈백은 출시 7개월만에 누적 판매량 1억병을 돌파했다. 주류 업계는 소주병 재활용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결국 1, 2위 업체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는 진로이즈백 빈병 회수를 놓고 신경전을 펼쳤다. 롯데칠성음료는 초반에 공장 앞에 쌓인 진로이즈백 공병을 하이트진로가 직접 회수해가라고 요청했지만, 가져가지 않다가 제품 판매가 예상보다 늘어나 공병이 부족해지자 뒤늦게 공병을 달라고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진로이즈백 병이 공장에 적재되는 물량이 늘어나 이형병을 분류하는데 인력, 시간, 물리적 공간이 많이 투자돼 하이트진로가 투명병을 분류하는 비용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하이트진로는 롯데칠성음료의 제품 '청하' 역시 병 모양이 다르지만 병당 10.5원을 돌려주고 있으니 문제없다고 맞대응하며 양사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결국 공용병이냐 이형병이냐를 놓고 주류업계 전체가 갑론을박에 휩싸였다. 이 과정에서 10년간 유지된 공용병 재사용 자율협약의 유지 여부와 이형병 제품 유통의 자율화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공용병만 사용하는 업체는 공용병이 아니면 회수를 할 때 분류가 쉽지 않아 어려움이 있고 제대로 분류가 되지 않으면 기계가 고장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이형병 유통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했다. 하이트진로는 제품의 자율성 인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한라산이나 무학 등 그간 이형병을 사용했던 주류업체들은 논쟁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사실상 하이트진로 편을 들었다. 여기에 더해 환경부가 비표준용기 활성화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자율협약으로 정해진 만큼 기업 간 협의를 권장한다는 입장을 밝혀 더이상 이형병 유통을 막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주류 업계는 최근까지 지속된 토론을 통해 상호교환 합의서를 도출했다. 비표준용기에 대한 회수 비용을 새롭게 산정했지만, 환경부는 물론 주류 업계 역시 비표준용기 유통을 수용하며 이형병에 담긴 소주 신제품 출시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공용병을 사용해 잘 지켜지던 기존 질서가 무너졌는데도 이례적으로 이형병 사용을 허락하는 상황이라 지금의 환경부가 추진하는 다양한 환경정책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표준용기를 사용하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의 방안이 폭넓게 검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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