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단톡방 성희롱 의혹에.. 전공의협의회 "잘잘못보다는 전공의 이익 보호"

이종민 2020. 8. 2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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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 대학병원 전공의협의회 성명 논란
의료정책 맞서 행동 주의 당부
"도덕적 허물 공격 고전적 방법
진위 알 수 없지만 더 조심해야"
"도덕적 문제 운운.. 굉장히 불쾌"
내부서도 성명 관련 반발 목소리
협의회측 "몸매 평가 범죄 아냐"
전문가, 성범죄 안일한 인식 지적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협의회가 소속 전공의들에게 ‘단체 대화방(단톡방) 성희롱 의혹 사건’을 언급하며 “도덕적 잘잘못보다는 우리 전공의의 이익보호를 위해 힘쓸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25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소재 A병원 전공의협의회는 지난달 27일 소속 전공의들에게 보낸 공지글에서 이같이 밝혔다. 해당 글은 의대정원 확대 등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의료정책에 맞서 사안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행동을 조심하라’는 취지로 작성됐다.

협의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동에 조심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드리고 싶다”며 “국민들을 의사로부터 등지게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중 특히 도덕적 허물을 공격하는 방법은 아주 고전적인 방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 불거진 ‘의사 단톡방 성희롱 사건’을 언급했다. 단체는 “진위여부를 알 수 없지만 우리 전공의들 스스로가 이러한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더욱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전공의협의회는 그 사안의 도덕적 잘잘못보다는 우리 전공의의 이익보호를 위해 힘쓸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협의회의 성명에 대해 내부에서 조차 반발이 나왔다. 정부의 의료정책과 관련 없는 성희롱 의혹을 인용하며 이를 범죄가 아닌 ‘도덕적 허물’로 치부하고, 단체의 권익을 앞세웠다는 문제 제기다. 이 병원 한 관계자는 “최근 사안에 대해 전공의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이해가 갔지만, 뜬금없이 성희롱 의혹을 언급해 황당했다”며 “글의 의도가 어떻게 됐든 성희롱에 대해 도덕적 문제를 운운하며 전공의들의 이익보호를 앞세우겠다는 것을 보고 굉장히 불쾌했다”고 말했다.

논란에도 전공의협의회 측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협의회 한 임원진은 “(공지글은) 혹시라도 법적인 대응이 필요할 경우 도와줄 것이라는 의미였다”며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에 공지글과 관련한 문제제기가 들어왔지만 다른 조치를 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 “(성희롱 단톡방 의혹) 행위가 잘했다고 한 말이 아니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수 있으나 불법적인 일도 아니다”며 “카톡방에서 소개팅한 여자의 몸매가 좋다고 하고, 이런 부분은 범죄가 아니다. 도덕성의 문제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달랐다.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서혜진 변호사는 “성추행과 달리 신체 접촉이 없는 성희롱은 처벌 규정이 없지만, (이번 사안은)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죄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다”면서 “단체 대화방이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지인이라고 해도 명예훼손의 공연성이 성립된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들의 단톡방이라며 관련 사진과 함께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의사 5명이 모인 단톡방에서 외모 품평과 성희롱이 끊임없이 일어났다”며 대화방에 본인 등의 사진이 올라와 외모 평가와 성희롱이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A병원 의사들이 가해자로 지목됐으나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의혹을 인지하고 있으나 아직 고소·고발이 접수된 게 없어 수사에 들어갈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A병원 측도 “해당 사건에 대해서 확인된 바가 없고 이 병원과 관계됐는지도 알 수 없어 답변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성희롱 의혹 사건과 별개로 이번 공지글이 협의회의 성범죄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것을 성범죄가 아닌 도덕적 허물로 사안을 축소하고 있다. 전공의 이익보호를 더 힘쓰겠다는 것은 이들의 목적이 환자의 생명과 안전, 권리보호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과 권익이 우선이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회적 소수자들인 여성들이나 환자들에게 폭력이나 인권침해 등이 일어나도 이를 덮고 넘어가야한다는 결과중심주의적 사고가 만연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종민·유지혜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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