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심상찮다" 내일 동네병원까지 파업..의료 공백 본격화

백민정 2020. 8. 25. 17: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한의사협회 2차 총파업을 하루 앞둔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입구에서 전공의들이 의과대학 정원확대 등 정부의 의료정책을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스1

전국 종합 및 대학병원의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23일부터 무기한 집단 휴진에 들어가면서 각 병원마다 진료 차질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동네병원 등 개원의 중심의 대한의사협회(의협)도 26~28일 2차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라 의료 공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25일 "병원 중추 인력들이 다 빠지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전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날 오전 기준으로 전체 전공의 498명 중 467명이 업무를 중단했다. 파업 참여율이 94%다. 여기에 지난 7일, 14일 전공의 집단 휴진 때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메웠던 전임의까지 파업에 가세한 상황이다.
전임의는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병원에 남아 세부 전공을 수련하는 이들로 임상강사, 펠로 등으로도 불린다.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전임의들이 교수들(의료진)의 환자 수술과 진료 등 각종 업무를 보조한다"며 "병원 의료 인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공의 90% 이상, 전임의 20%가량이 업무를 중단하면서 병원 진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23일 서울아산병원 로비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전공의들이 벗어놓은 의사 가운 위로 붙은 입장문을 바라보고 있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에 반대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날 전국 수련병원에서 담화문을 발표하고 의사 가운을 벗는 퍼포먼스를 펼친 후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뉴스1


서울아산병원도 전공의 500여 명 대부분 파업에 들어갔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들도 전공의 파업 참가율이 90%를 넘는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날 잡혔던 수술 190건 중 40건(21%)을 미뤘다. 전날엔 10건을 미뤘는데 전공의·전임의 파업 참여가 계속 늘면서 이날 30건을 추가로 미뤘다. 파업이 이번주 계속될 경우 매일 수술 20여 건을 연기해야하는 상황이다. 서울대병원도 하루 평균 130건 수술을 진행하는데, 평소 대비 60~70% 축소돼 진행되고 있다.

수술, 입원 등이 연기되면서 특히 중환자들의 불편과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암 환자 인터넷 카페에는 항암 치료가 미뤄질까 걱정된다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실제 날짜 연기를 통보받았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서울 중곡동에 사는 김모(72·여)씨는 31일 예정이던 췌장암 수술이 무기한 미뤄졌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전공의 집단 휴진으로 연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면서다.
김씨의 아들(38)은 “췌장암은 1년 만에 1기에서 말기로 진행하기도 한다더라”며 “의료진과 정부가 서로 입장만 얘기하며 싸우는데 누가 맞는지는 몰라도 제발 엄마 수술 좀 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토로했다.

한 인터넷 맘카페에는 '15개월 아기가 낙상해 A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전공의 파업으로 진료보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파업 안하는 종합병원이 없느냐'는 글이 올라왔다.

전국 의사 2차 총파업을 하루 앞둔 25일 오전 서울 한 병원 앞에서 전공의가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각 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 및 진료는 큰 차질없이 이뤄지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23일 정세균 국무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코로나 관련 진료에는 참여하겠다고 약속하면서다. 당시 정부는 의료계가 반발하는 의대 정원 확대 등 의료 정책 추진을 유보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김형철 대전협 대변인은 "서울아산병원, 강북삼성병원 등에서 선별진료소 등 코로나 관련 인력 요청을 해와 전공의들을 파견 보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전공의 휴진 관련해 엄정 대응을 말해 전공의들이 동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총리가 대화를 꺼낸 다음날 문 대통령의 강력 대응 지시가 나오면서 정부의 대화 제안이 진정성 있는지 의문이 든다면서다.

김 대변인은 "정부와 대화를 전제로 코로나19 치료 복귀를 결정한건데, 문 대통령 발언이 있고나서 전공의들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대한의사협회(의협)도 26~28일 파업을 앞두고 정부와 비공식 협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 이날 자정 넘어서까지 대화했지만 의협은 예정대로 파업을 실시키로 했다.
전공의·전임의에 의협까지 파업에 나서면 의료 공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 공백을 막기 위해 각 지역 보건소 중심의 비상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보건복지부 대변인)은 25일 정례 브리핑에서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 보건소를 중심으로 의료·진료지원체계를 구축하는 중"이라며 "다소 불편한 점이 있을 것으로 보지만 진료 공백이 최대한 발생하지 않게 비상진료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에선 정부가 겉으로는 대화를 내세우면서, 코로나19 국면과 연계해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며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김형철 대변인은 "전공의가 빠져 일부 진료에 차질이 생길 순 있지만, 정부가 국민 생명과 연결지으며 현 상황을 부풀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과 만나 주먹을 맞대고 있다. 정 총리는 이날 의사협회 관계자들과 만나 "의협이 집단휴진을 강행한다면 환자들은 두려워하고 국민들은 불안해하실 것"이라며 "이 자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과 진정성 있는 정책 대화에 정부와 의료계가 힘을 합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뉴스1

익명을 원한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전공의가 휴진한다고 병원이 마비된다면 그 의료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정부가 젊은 전공의를 탓하며 의료계를 이기적인 집단으로 몰아가선 대화를 하자는 태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백민정·황수연·이태윤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