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역 의사 확충이 골자"..의협 "수도권 쏠림 못 막아"

이혜인 기자 2020. 8. 2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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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파업 쟁점 뭔가

[경향신문]

응급실에 나붙은 “제한·지연” 대한의사협회의 2차 총파업을 하루 앞둔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 응급실에 일반 진료가 지연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창길 기자

지난 21일부터 시작된 대형병원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 파업에 26일에는 동네병원 개원의들까지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대유행을 앞둔 심각한 상황에서 이들이 진료거부조차 불사하고 있는 이유는 의사 수 확대 방안을 담고 있는 정부의 ‘4대 의료정책’ 철회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다. 정부는 한국의 의사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춰봐도 현저히 적은 만큼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밝혔지만, 의사단체는 향후 의료과잉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논쟁이 코로나19 비상상황에서 전 국민이 의료공백을 감수해야 할 만큼 시급한 사안인 것일까.

‘4000명 증원’이 갈등 핵심
정부 ‘증원 여론 해결’ 입장
의협 “지역 편차엔 무대책”
정부 ‘인구당 의사 수’ 계산
의협 ‘면적당 의사 수’ 셈법

■ 지역 부족 해결하려면 늘려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지난 7월23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협의를 거쳐 ‘의대 정원 확충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 방안’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추진안의 핵심은 한 해 3058명인 의대 정원을 2022학년도부터 매년 400명씩, 10년간 총 4000명 늘리겠다는 것이다. 증원되는 4000명 중 3000명은 지방의 심각한 의료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의사’로 육성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한국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선과제는 의사 수를 늘리는 데 있다고 보고 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임상의사 수는 한의사를 포함해도 인구 1000명당 2.3명으로, OECD 평균 3.5명에 못 미친다.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다. 수도권 쏠림현상으로 인해 수도권과 지방 간 의료인력 격차도 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16.27명인데, 강원 정선·철원 등 9개 지역에서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채 1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정부의 전제부터 틀렸다고 주장한다. 의협이 자체적으로 국토 면적당 활동 의사 수를 계산해 산출한 ‘의사밀도’에 따르면, 한국의 의사밀도는 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높아 의사 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한국이 OECD 1위인 16.6회(평균은 7.1회)로 이미 한국의 의료 접근성이 높아서, 의사 수를 늘리면 의료과잉만 불러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의협의 주장을 감안하더라도, 지역에 의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암 같은 일부 중증질환이야 서울에 올라와 치료받을 수 있지만, 의료 취약지에 있는 주민들은 심근경색이나 뇌졸중같이 시간을 다투는 질환이 생겨도 다른 지역으로 건너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지난 6월 발표한 ‘의사 인구 적정성 연구’ 보고서도 한국이 급속한 고령사회로 이행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2067년까지 의사 인력 수급 부족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 지역의사제 허점은 보완해야

하지만 정부의 추진안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의대 정원을 증원해 지역 의료 격차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목표가 달성되려면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에 정착할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의사들이 지역에 남도록 유도하기 위해 ‘지역의사’로 육성되는 3000명은 전액 장학금을 주는 대신 졸업 후 10년 동안 의무적으로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근무토록 할 계획이다.

하지만 의협 등은 지역의사로 선발된 이들이 10년의 의무기간을 채우고 난 다음에는 모두 수도권으로 올라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기피 과가 아니라, 돈이 되는 피부과나 성형외과에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도 없다고 지적한다.

의사 수 증원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인 보건의료시민단체와 전문가들도 이러한 의협의 지적에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증원되는 의사들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재 정부안처럼 지역 소규모 사립의대가 아니라 국공립대학 의대 위주로 선발하고, 이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지역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방의 공공의료기관 여건도 대폭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 대표는 또 “공공의료기관 의무복무 기간도 전문의 취득 후 10년으로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우 대표는 “정부안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개선하자고 요구해야 하는데, 지금의 의사파업은 아예 의사 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을 무조건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반개혁적인 방향”이라고 비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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