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시각각] 다주택자에 대한 증오를 거둬라

김동호 2020. 8. 2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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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자 적대시 정책 옳지 않아
주부와 젊은층에도 투기꾼 낙인
편 가르기로는 부동산 해결 못해
김동호 논설위원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는 인지상정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프다는 것 아닌가. 심지어 성직자조차 “약간 질투해도 좋다”고 한다. 홍성남 신부가 쓴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에는 ‘질투의 화신까진 되지 마세요’가 나온다. “질투가 없는 사람은 없다. 질투란 히브리어로 ‘키느아’, 즉 ‘곁눈질하다, 증오심을 품다, 나쁜 마음을 품다’라는 뜻이다. 질투는 부러움과는 다른 것이다. 부러움이 생산적인 것이라면, 질투는 상당히 파괴적인 감정이다. 특히 지나친 질투는 개인의 영적 성장뿐 아니라 공동체를 파괴하는 감정이기에 조심해야 한다.”

홍 신부는 “질투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너무 지나치지 말라”고 조언했다. “자칫 남의 떡이 커 보이는 환상 속에서 괴로움을 겪으며 살게 될지 모르니 질투는 불 다루듯 조심히 다뤄야 한다”면서다.

인간 내면에 대한 이런 성찰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책임자들도 새겨들을 고언이 아닌가 싶다. 지금 부동산 정책은 한마디로 집 있는 사람, 그중에서도 집을 두세 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을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다주택자 보유 부담을 높이고 양도세를 대폭 인상해 부동산 투기를 통해서는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겠다”고 7월 국회 연설에서 말했다. 최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는 “시세차익을 노린 다주택자의 불로소득을 환수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청와대 참모의 인선 기준도 사실상 무주택자나 1주택자로 바뀌었다. 대중에게 다주택자는 죄인이란 프레임을 똑똑히 보여준 형국이다.

그러나 집값과 전셋값에 기름을 붓는 실질적 동력은 따로 있다. 지난 3년간 다주택자 옥죄기에 치중하며 23차례에 걸쳐 쏟아낸 누더기·땜질식 주택 정책이 시장 불안의 뿌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주택자를 적대시하고 징벌적 규제를 거듭했지만 3년 만에 서울 아파트값이 52% 상승하고, 서울 전셋값이 60주 연속 뜀박질한 게 그 방증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묻지마 투기 탓으로 돌렸고, 그 중심에 다주택자가 있다고 했다. 그럴수록 다주택자는 물론 무주택자·1주택자의 고통도 커졌다. 시장원리가 억눌리면서 부동산 관련 세금이 오르고 내 집 마련의 꿈도 멀어져 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다주택자를 몰아붙여도 주택시장이 안정되지 않자 법질서 수호가 담당인 법무부 장관까지 나섰다. “일반 주부에 이어 젊은층마저 투기 대열에 뛰어들고 투기 심리가 전염병처럼 번졌다”고 했다. 내 집 마련이라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깡그리 무시하고, 아내이자 어머니인 주부의 존엄까지 모독한 발언이다.

다주택자는 지금 가혹한 징벌에 시달리고 있다. 공시가격을 급격히 올려 과표가 급상승한 채 종부세 6%, 양도세 72%까지 세율이 수직 상승했다. 과중한 세금을 피해 증여하려 하자 취득세율도 12%로 올렸다. 토끼몰이하듯 출구와 입구를 꽉 막았다. 그러니 매물이 사라지고 집값이 뛴다. 더러 투기꾼도 섞여 있겠지만 다주택자 전체를 투기꾼 취급하는 건 온당치 않다. 다주택자는 주택시장에서 ▶양질의 주택 건설을 촉진하고 ▶세입자에게 임대 물건을 공급하며 ▶세입자가 전세를 통해 자산을 증식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한다.

다시 질투 얘기로 돌아와 보자. 질투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데 남태평양 섬나라에선 질투라는 개념조차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북반구에서 필요한 밍크 코트나 고급 주택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런 재화를 소비하는 사람이 있어서 돈 벌어 자녀 학비 대고 생계를 유지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경제는 그렇게 맞물려 돌아간다. 다주택자도 그 일부일 뿐이다. 결국 다주택자를 죄인 취급하면 주택시장의 생태계도 흔들리게 된다. 사회주의 할 것이 아니라면 다주택자에 대한 증오를 거두기 바란다. 세상사 뭐든 지나쳐서 좋을 게 없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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