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 빚내 추경해 놓고 20개 정부 사업 한푼도 안썼다

최훈길 2020. 8. 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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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미세먼지·민생 추경 실집행 현황 분석
환경·산업·고용·농림·해수부 등 11개 부처 부실 집행
홍남기 "96% 집행" 강조했지만 실제 실집행률 저조
'부실 편성·집행' 악순환 우려돼.."철저히 점검해야"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지난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지원한 사업 중 일부 사업은 예산을 한 푼도 집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시급하다며 수조원 빚을 내가며 예산을 받아놓고도 제대로 집행을 못해 불용(不用) 처리한 사례가 줄을 이었다. 올해는 4차 추경까지 거론되고 있어 부실 편성에 이은 미집행 악순환이 우려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2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정세균 국무총리,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당·정·청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고용, 수출 등 실물경제의 위축이 본격화하고 있어 더 과감한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시스 제공
수소·전기차 추경 묵히다가 고스란히 반납

25일 이데일리가 각 부처가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실에 제출한 ‘2019회계연도 추경사업 실집행 현황’ 자료(2019년 12월말 기준)를 분석한 결과,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문화체육관광부·금융위원회·산림청·조달청 등 11개 부처에서 추경 실집행률 0%인 사업들이 다수 확인됐다.

앞서 국회는 작년 8월에 5조8269억원 규모의 미세먼지·민생 추경을 처리했다. 추경에는 △전기·수소차 보급을 비롯한 미세먼지 대응 등을 위한 국민안전 예산 △수출·내수 보강, 고용·사회안전망 등 선제적 경기대응 및 민생경제 긴급지원 예산이 담겼다. 재원의 57%(3조3343억원)는 국채를 발행해 충당했다.

나랏빚을 내서 추경을 편성해 지원했는데도 한 푼도 쓰지 않은 사업이 적지 않았다. 환경부는 ‘수소승용차, 수소버스 구매지원’ 사업으로 본예산에서 970억원을 편성하고 추경으로 334억원을 증액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대차(005380)의 ‘넥쏘’를 전용차로 도입하는 등 정부가 앞장서 수소차 홍보에 나섰던 때다. 하지만 환경부의 관련 사업 실집행액은 본예산에도 못 미치는 957억원에 그쳤다.

환경부는 ‘전기자동차 구매보조’, ‘충전인프라 구축 지원’ 사업도 실집행액이 저조했다. ‘전기자동차 구매보조’는 본예산 4400억원, 추경 237억원 받았는데 실집행액은 3614억원에 그쳤다. 충전인프라 구축 지원’ 사업은 본예산 960억원, 추경 690억원 받았는데 실집행액은 969억원뿐이었다.

산림청도 ‘미세먼지 저감 도시숲 조성관리’ 사업으로 본예산 401억원, 추경으로 150억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실집행 예산은 323억원에 불과했다.

경기대응 예산 집행도 부실했다. 산업부는 ‘수출지원기반활용’ 사업으로 본예산 563억원, 추경 108억원을 편성했지만 실집행액은 446억원뿐이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스마트공장전문인력양성’, ‘산학협력기술·기능인력양성’ 사업도 추경을 받아놓고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금융위원회의 ‘핀테크 지원 사업’, 문화체육관광부의 ‘외래관광객 유치 마케팅 활성화’ 사업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취약계층 지원 예산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다. 복지부의 ‘장애인복지시설 기능보강’ 사업 실집행액은 221억원에 그쳐 추경은커녕 본예산(388억원)도 남겼다.

고용노동부는 ‘취업성공패키지 지원’, ‘전직실업자능력개발지원’에서 각각 197억원, 124억원의 추경을 편성했지만 이 역시 본예산도 다 못썼다. 취업성공패키지 지원 사업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상담, 훈련, 알선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좋은 정책”이라며 홍보했던 사업이다.

농·어민 지원도 뒷전으로 밀렸다. 농식품부는 ‘농산물직거래 활성화지원’과 ‘가축분뇨처리지원’ 사업, 해수부는 ‘친환경양식어업육성’ 사업에서 추경까지 편성했지만 실집행액은 본예산에 많게는 수백억원이나 미달했다.

“총리·부총리가 실집행 점검해야”

이같은 실집행률은 정부가 그동안 발표했던 지표와 격차가 크다. 홍 부총리는 지난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통상적으로 96%로 집행된다”고 말했다. 이는 ‘집행’과 ‘실집행’ 차이 때문이다. 기재부는 중앙부처가 지자체나 보조사업자 등에게 예산을 교부하면 ‘집행’된 것으로 집계한다. 실집행은 국민 등 실수요자까지 예산이 도달한 것을 측정한 것이다.

추경호 의원은 “정부는 집행률이 90%대라고 하지만 실집행률을 보면 실수요자들의 현장까지 예산이 도달하지 않고 있다. 부실 편성·집행 문제”라며 “총리·부총리가 본예산·추경 실집행률을 점검해야 국정을 현장감 있게 챙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집행률이 낮은 부처들은 민원, 공사 지연 등으로 인해 예산 집행이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김민재 국회예결위 입법조사관은 “정부 단계에서는 자금이 교부됐어도 집행기관 단계에서 자금이 집행되지 못하고 누적돼 있는 등 재정이 비효율적으로 운용되는 사례가 있다”며 “재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환경부 등 여러 부처들이 추경을 편성해 사업당 많게는 수백억원을 증액했다. 하지만 20개 사업의 실집행액이 본예산에도 못 미쳐 추경 실집행률이 0%를 기록했다. 작년 기준, 단위=억원 [출처=각 부처,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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