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노랗게 칠해라"..장성군수, 공무원에 '갑질' 논란

정성환·조현중 호남본부 기자 2020. 8. 27. 10: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장성에 무슨 일이] "군수 갑질 싫다" 장성군청 공무원 사직 '파장'
옐로우시티에 고통받은 피해자 "왜 내 집에..군수 간섭 도 넘었다" 울분
유두석 군수 "사실과 달라..그쪽에서 먼저 노란색칠 제의했다" 해명

(시사저널=정성환·조현중 호남본부 기자)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시절에도 유 군수는 일꾼으로 유명했지만 장성으로 돌아간 후에도 '부지런한 것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장성군(郡)을 위해서 건설교통부 후배들을 많이 귀찮게 하기'로 유명하다." 

지난 2018년 3월 최재덕 전 건설교통부 차관이 유두석(70) 전남 장성군수의 회고록 '아름다운 귀향, 그 뒷이야기'에 대해 한 추천사의 일부다. 현재 장성을 이끄는 리더인 유 군수는 제35대와 38대에 이어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3선 군수다. 최 전 차관의 지적대로 지자체 경영에서 그의 업적은 독보적이다. 유 군수는 스스로 자신을 '옐로우시티 디자이너'라고 칭한다. 

장성군청 전경 ⓒ시사저널 조현중

장성군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의 컬러마케팅인 '옐로우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해 세계적인 색채도시로 도약을 꾀했다. 그 선두에 유 군수가 있었다. 그가 착안한 핵심 콘텐츠가 바로 '옐로우시티(Yellow City)'다. 아름다운 색채로 유명한 그리스 산토리니(백색·청색), 스페인 안달루시아(청색)와 같이 장성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노란색이 함께 떠올려지는 색채도시로 만든다는 것이다. 장성군은 대한민국 최초로 색을 활용한 고유브랜드를 창출, 경관조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룬 성과로 스타브랜드상 등 다수의 상을 휩쓸었다. 

부하 직원 귀찮게 한 국토부 출신 '일꾼 군수'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은 법이라 했던가. 국토교통부 출신 '유명 일꾼' 유 군수는 최근 국토부 후배 대신 군청 '부하 직원'을 도가 넘게 귀찮게 했다는 갑질 논란에 휘말렸다. 그의 진의와는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앞세운 무리한 옐로우시티 시책 추진으로 '고통 받는 공무원(乙)'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견디다 못한 피해 공무원이 "군수 갑질이 정말 싫었다"며 사직서를 내고 직장을 떠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피해자 A씨(여·35·장성읍)는 8월 25일 오후 광주시 북구 용봉동 모처에서 시사저널과 만나 옐로우시티를 조성을 내세운 유두석 장성군수의 사생활 침해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유 군수가 시간·장소 불문하고 자신의 집에 대해 '지붕을 노랗게 칠하라', '처마는 언제 노랗게 칠할 것이냐'는 등 권한 밖의 일을 수차례 지시했다는 것이다. A씨는 "군수는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인 저희 집에 노란색 페인트를 칠하라고 수차례 명령하듯 말했다. 참을 수 없는 간섭이었고 갑질이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A씨는 "싫었지만 계약직 공무원의 처지에서 무소불위 군수의 지시를 거역할 수가 없어 대부분 수용했다"고 했다. 

집요한 지시…"지붕 칠하라"→"처마도 칠하라"→"언제 칠할 것이냐"

지난 1년여 동안 장성군청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씨의 증언을 토대로 "색칠하라"는 군수의 일방적 지시로 점철됐던 지난 '일'을 정리하면 이렇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A씨는 장성군에서 2018년 11월부터 20개월간 임기제(계약직) 공무원으로 디자인 관련부서에서 일했다. 때마침 그는 지난해 말 결혼한 지 12년 만에 장성읍 군청 뒤편 N아파트 인근에 35평 규모의 양옥집을 신축한다. 생애 첫 가족의 보금자리인 만큼 연차를 내가며 타일에서부터 벽지, 전구, 창문색, 기와 등 자재를 직접 골랐다. 그러나 뜻밖에 걸려온 군수의 전화 한통은 깊은 시련의 신호탄이었다. 

2019년 11월 1일 금요일 오전 9시쯤, 군수가 군청 내선 번호로 전화해 '집 지붕을 노란색으로 칠하라'고 직접 얘기하면서 'L아무개 팀장과 상의하라'고 지시했다. 집 색칠 건에 관한 군수의 최초 지시였다. A씨는 새로 지은 건물일 뿐만 아니라 스페니쉬 기와 특성상 페인트를 칠하기 어렵고, 애초에 노란색 기와를 얹을 생각이었다면 저렴한 기와를 올렸을 것이란 생각에 내키지 않았지만 고민 끝에 결국 500만원을 들여 노란색으로 지붕을 칠했다.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군수는 이번에는 L계장, H계장 등을 통해 '지붕에 덧칠(붓칠)을 하라', '처마에 노란색을 칠하라'고 지시했다. A씨는 자신의 처지에서 군수 지시를 정면으로 거부할 수 없어 대신 노란빛이 도는 나무 '에메랄드골드' 100만원 어치를 구입해 나무 울타리를 조성했다. 그 후에도 군수의 노란색 색칠에 대한 요구는 시간·장소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다만 '지붕'에서 '처마'로 지적 대상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군수는 A씨를 만날 때마다 '처마를 왜 안 칠하느냐'고 추궁하듯 말했다. 다수의 직원들 앞에서도 처마 이야기를 했다. 군수는 올해 4월 초, 간부급 직원들이 군청 부근 식당에서 모인 회식자리에서도 또다시 지붕 덧칠, 처마, 노란대문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군수의 지나친 사생활 간섭에 기분 나빴지만 공직자의 숙명으로 여겨 꾹꾹 억누르며 참을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왜 군수가 우리 집 건물까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매우 편치 않았다"고 술회했다. 

장성군수의 지시로 피해 공무원 A씨의 신축 당시 주택 지붕(왼쪽)이 노란색으로 칠해진 모습 ⓒ해당 공무원 제공

군수 "칠하라" vs 공무원 "떠나겠다"

결국 5월 13일 시아버지가 힘들어하는 A씨를 안쓰럽게 생각해 300만원을 들여 처마에 노란색을 칠하는 대신 노란대문, 노란울타리를 설치해 줬다. 그럼에도 군수는 노란 집 사진을 휴대폰 문자로 전송하는 등 지붕 덧칠과 처마 또한 노랗게 칠할 것을 끈질기게 강요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A씨는 "처마를 노란색으로 칠하면 그 다음에는 창문 등으로 요구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아 '연구 중'이라고 둘러대며 처마를 사수했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결국 군수의 무리한 요구를 견디지 못한 A씨는 지난 6월 25일 사표를 제출했고, 7월 말 사직 처리됐다. 

시사저널은 26일 오전 갑질 논란과 관련된 입장을 듣기 위해 군수실을 찾았으나 유 군수는 "관련 부서에서 이미 해명했기 때문에 별도로 할 말이 없다"며 접견을 거절했다. 장성군 소통정보실 한 관계자는 "A씨 쪽에서 먼저 집을 노랗게 칠하겠다고 군수님께 의사를 표현했다. 그 후 군수님께서 담당 부서에 전화해 디자인 등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을 알렸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후 본인이 부담스럽다는 의사를 표현해 (색칠을) 안 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A씨 집 지붕이 노랗게 칠해져 있었고, 그걸 본 군수님이 이왕에 칠했으니 그러면 '이것도 더 해봐라'하는 차원에서 이야기한 것뿐이다"며 "강제적인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고 유 군수의 입장을 대신 전했다.

A씨는 현재 병원치료 중이며, 주상병(급성 스트레스 반응), 부상병(경도 우울 에프소드)을 진단받아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유 군수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법조계 일부에선 지자체장이 권위를 이용해 공무원의 개인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은 직권남용에 해당된다는 해석이 나온다. 광주의 한 변호사는 "제보자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지자체장이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직원 개인 사유재산에 대해 지붕, 처마 등 노랗게 칠하라고 수차례 지시하는 것은 강요,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