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거부 중단" 요구하는 의료계의 '또다른' 목소리
파업이유 일부 공감하지만 집단행동 반대하는 이들도
'의대생 시험거부 이면고발'·'다른 전공의들' 등 sns 활용
"대부분 단체행동 실명투표로 진행돼 충격..블랙리스트도"
"의료환경 개선 위해 작은 의견들도 충분히 개진, 토론돼야"
27일 인의협 등 123개 단체 "진료거부 즉각 중단해라"
"코로나 유행 속 환자 생명 위태..의협 비판받아 마땅"
"국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공론화위원회 등 고려할 필요"
집단휴진 첫날 오전 정부는 당초 고려하지 않았던 행정명령까지 발동하며 의사들의 업무 복귀를 재촉했다. 하지만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2시간 동안 휴대전화를 끄고 외부 접촉을 차단하는 '블랙아웃(Blackout)' 행동지침을 내렸고 세브란스 병원 응급의학과 소속 전공의들은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맞불을 놓았다.
◇"의대 군기문화 여전…점점 휩쓸려 과열되는 분위기"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7일 정오 기준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 3만2787개소 중 진료를 쉬고 있는 곳은 2926개소로 휴진율은 8.9%로 집계됐다. 지난 25일 200개 수련병원 중 163개 기관이 응답한 점검결과를 보면 전공의는 1만277명 중 5995명(58.3%)이 업무에서 손을 뗐고 전임의는 2639명 가운데 162명(6.1%)이 파업에 동참한 것으로 조사됐다.
집계시점 이후 더 많은 인원이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해당 수치에 편입되지 않는 인원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의협과 대전협 등 '협회' 측의 목소리가 주류로 노출되다 보니 내부에서 이견을 가진 종사자들의 존재는 가려지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조금씩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당 계정을 통해 국시 거부나 휴학 등이 '강요'된 정황 등을 익명으로 제보받고 있는 A씨는 "우선 대부분의 단체행동이 실명투표로 진행된 것이 가장 충격이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이 주관한 설문에서 개인정보는 파기된다고 명시했지만 솔직히 전적으로 믿기 어렵다"며 "나중에 실제로 타 대학 제보를 통해 '블랙리스트'의 존재, 일부 선배들이 (이름을) 공개하라고 압박을 주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다수 의대생들은 실명투표 자체에 문제를 못 느끼더라. 중대한 사안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이라며 "집단행동에 참여하는 학생 명단이 필요하다면 우선 무기명 투표를 실시한 뒤 받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A씨는 "국시 응시를 취소한다고 실제 취소로 이어지진 않을 거라는 '다수'의 의견에 휩쓸려 강압적으로 한 배를 탄 '소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의대 내 전반적 분위기가 상당히 과격하고, 점점 더 과열되고 있는 느낌인데 대부분의 의대생이 이런 파업사태를 겪는 게 처음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전했다.
물론 의협이 '4대 악(惡)'으로까지 규정한 정부의 정책 노선에 모두 공감해서 이번 파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A씨는 "(정부의 주장대로) 의사 수가 부족하고 지역의료가 확충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전공의들의 주장대로 기피과(科) 의료환경이 열악한 것도 맞다"며 "지역의대의 실효성 지적처럼 정부의 정책이 다소 이상적인 면은 있다"고 짚었다.
또한 "의료계의 입장을 이해하며 어느 정도 동의한다. 다만 공공의대 등의 문제는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가 나왔던 부분이고 의협이 보건의료정책에 대해 국민들이 만족할 만큼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며 "당연히 정책과 관련해 비판할 점도 많겠지만 의료인으로서 책임감 있는 자세로 개선방향을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에서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들' 역시 지난 17일 "우리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논의하고 사회에 대해 고민하며 함께 행동하는 것은 중요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강하게 추진되는 행동들 속에 소수의 목소리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고 밝혔다.
앞서 대전협이 1차 집단휴진에 들어간 지난 7일 '의사와 환자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의료환경을 바라는 어느 전공의들' 또한 "의대증원 정책의 바탕에는 더 가까운 곳에서 더 좋은 진료를 받고 싶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있었다"며 "전공의들의 투쟁 역시 이들의 요구를 인정하는 동시에 정부와 병원에 진료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는 요구사항을 제시하며, 시민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인의협 등 "환자생명 위태로운데 파업…비판받아 마땅"
무엇보다 이번 파업에 위화감을 느끼는 이들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거리두기 3단계' 격상까지 논의되는 시기에 중환자실·응급실 근무인력까지 예외 없이 파업을 감행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의사들이 환자 생명을 '볼모'로 삼고 있다는 비판도 여기서 비롯됐다.
이들은 "의사들의 면허는 사회와 시민들의 위임한 권리이지, 자신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한 배타적 권리가 아니다"라며 "코로나19 환자가 늘고 중환자 병상이 모자란다는 뉴스가 연일 쏟아지고 있는 지금, 의사들이 있어야 할 곳은 진료 현장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인원 배치의 문제일 뿐, 국내 의사 수는 전혀 모자라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의협에 대해 "한국은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중 인구 대비 가장 낮은 의사 수를 보유하고 있다. 공적 부분에서 활동할 의사 수를 늘려야 한국의료의 지역불균형, 진료과목별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다"며 "한국의료의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현직 의사들이 고작 자신의 특권과 돈벌이를 위해 사실 왜곡까지 서슴지 않는 것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실제 전공의 등의 공백을 간호사들이 대신 메꾸고 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이어 "의사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지방에서) 의사를 못 구하는 거다. 이런 처참한 상황을 어떻게 개선할지 의협에 묻고 싶다"라며 "어떻게 환자의 생명을 최전선에서 지키는 의사들이 코로나19로 환자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응급실, 중환자실을 비우고 나가나.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날을 세웠다.
다만, 정부와 의료계가 팽팽히 맞서는 지금의 사태는 폐쇄적 논의과정이 낳은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첫 단추' 자체가 잘못 꿰어졌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어떤 세력하고 협의를 해서 이렇게까지 양보하겠나. 다만, 양보하면서 얻은 결과도 (결국) 파업 강행"이라며 "의사 정원 확대 등은 사실 시민사회의 공론화가 필요한 부분 아닌가. 국민건강과 안전에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안인데 의사단체랑만 이야기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어느 정도 숫자를,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 늘릴지 정하려면 공론화위원회 같은 것이 필요하다. 민원처리하듯 하거나 협회랑 단둘이 의정 협의로 하려고 한 것도 문제"라며 "(의사들) 내부에서 생각이 다 다르니 최저 수준의 합의란 게 (정책) '전면 철회'밖에 없어 대안 제시를 못한다. 정부가 좀 더 균형적인 자세를 갖고 젊은 의사들을 만나서 설득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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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서민선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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