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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뒤흔든 조은산의 시무7조..파장 일으킨 진짜이유

이동우 기자 입력 2020.08.29. 05:03 수정 2020.08.29.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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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자신을 '진인(塵人) 조은산'이라고 칭한 익명의 청원인이 쓴 장문의 글이 청와대를 뒤흔들었다. 비공개 논란에 이어 공개된 지 하루가 채 되기도 전에 답변 요건을 채웠다. 이제 관심은 '폐하'로 지칭된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에 쏠린다.

지난 28일 오전 9시15분을 기준으로 '진인(塵人) 조은산이 시무(時務) 7조를 주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살펴주시옵소서'라는 제목의 청원 글은 동의 20만명을 돌파했다. 20만명 이상 청원에 동의하는 경우 청와대나 정부 관계자가 공식 답변을 해야 한다.

청원인은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들은 제 당파와 제 이익만 챙기며 폐하의 눈과 귀를 흐리고 병마와 증세로 핍박받는 백성들의 고통은 날로 극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글은 총 1만3058자로 원고지 117장에 달한다. 그런데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었다.
조선 시대 '상소문'의 독특함? '해찬', '조국' 등 세로 읽기도 숨긴 꼼꼼함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시무 7조'는 청원 게시판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상소문 형식으로 쓰였다. 조선 시대에는 임금의 잘못된 정책에 반발하는 유생들이 상소를 올리고는 했는데, 1만명 내외의 서명을 받는 만인소(萬人疏)가 대표적이다.

세제, 외교, 헌법 등 총 7개의 주제로 나뉘어 쓰인 청원 글은 옛 문인들이 쓸법한 '난세의 천운', '치세의 근본' 등 표현으로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충정(憂國衷情)이 바탕에 깔려 비판의 진정성이 살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청원인은 글 중간에 '(이)해찬', '(김)현미', '(추)미애', '조국' 등 여권 인사의 이름을 숨겨두기도 했다. 해찬은 '해괴한 말로 백성들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고', 조국은 '조정의 대신 열 중 셋은 허황된 꿈을 좇아, 국사를 말아먹는 이상주의자'로 표현하는 식이다.

형식은 옛것을 빌려왔지만 현 정부의 논란을 신랄하게 비판한다는 것이다. 시무 7조에 앞서 지난달 올린 글에서는 '다주택'를 '다치킨'에 비유해 '2치킨'을 가진 이들을 처벌해 달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처럼 풍자 넘치는 글에 누리꾼들은 "필력이 대단하다", "난세의 영웅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1만명 동의 얻었는데도, 2주간 비공개…'반발 심리' 키웠나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 / 사진=뉴시스

이 글은 당초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 화제가 됐다. 부동산 정책에 불만 가진 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여기에 청원을 올린 지 2주 넘도록 공개가 이뤄지지 않으며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청와대 청원은 100명 이상의 사전동의가 있으면 공개로 전환되지만, 시무 7조는 1만명 넘는 동의에도 검토 상태였다. 비공개 요건인 명예훼손 성격이나 중복청원에 해당하지 않아 청와대가 일부러 글을 공개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이런 상황이 지난 26일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조은산'과 '시무 7조'는 종일 화제가 됐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권에도 올랐다. 논란이 계속되자 청와대는 "해당 청원이 '숨겨졌다'거나 게시글에 대해 처리한 것이 없다"며 "통상절차대로 진행되고 있는 청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1만명이 넘는 동의에도 2주 이상 비공개로 검토가 진행된 원인에 대한 설명은 없는 상태다.

글이 공개되자 많은 이들이 청원 동의를 하기 시작했다. 26일 오후 4시 기준 8만명을 넘어선 데 이어 27일 오전 9시15분 20만명을 달성했다. 불과 하루도 걸리지 않은 셈이다. 비공개 조치가 '정부가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반발 심리를 자극해 빠른 답변 요건 달성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지지'했던 인천의 평범한 30대 가장…진심 통했나
이지혜 디자이너 / 사진=이지혜 디자이너

청원인의 정체는 이날 오후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했던 그는 오히려 자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라고 밝혔다. 또 남다른 필력 탓에 소설가나 시인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인천에 사는 30대 후반의 평범한 가장이라고 소개했다.

'진인'이라는 필명도 스스로 먼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용직 공사장을 전전했던 총각 시절, 현장에 가득한 먼지와 매연이 제 처지와 닮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시무 7조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마음을 담아 쓴 글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 현상으로 해석된다. 그는 "제가 가진 얕은 지식으로 현시대를 보고 문제점을 느꼈고 그 부분을 얘기했을 뿐"이라며 "제가 지지하지 않는 정권을 향한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닌, 제가 지지하는 정권의 옳고 그름을 따지며 쓴소리를 퍼부어 잘되길 바라는 것이 제 꿈"이라고 말했다.

이동우 기자 canel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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