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파병부대원, 자비로 격리라니요?" 군인아내 울분의 청원

노석조 기자 입력 2020. 8. 29. 19:29 수정 2020. 8. 3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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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동명부대원 아내의 청와대 국민청원
"손끝은 분노로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국방부, 청원 사흘 뒤 "사실과 달라"
"해외 파병 복귀자는 자가격리가 원칙, 격리구호품은 지자체가 지원"
동명부대 18진 환송식에서 경례하는 한 여중사의 모습. /뉴시스

10여 개월의 파병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레바논 동명부대원들이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 물품을 정부 지원 없이 ‘자비’로 충당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호소하는 글이 지난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것으로 29일 파악됐다.

정부가 중동 분쟁지에 파병 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한 파병 장병들에게 최소한 코로나 격리 관련 비용 정도는 지원해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냐는 취지이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30일 오후 11시쯤 자료를 내고 “사실과 다르다”면서 “해외 파병 복귀자들은 자가격리가 원칙”이라며 “다만 개인 희망 또는 자가 격리가 제한되는 경우에는 부대 시설에서 격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외 파병 복귀자의) 자가격리 구호품은 각 지자체에서 지원한다”면서 “방역물품(마스크·체온계 등)은 모든 지자체에서 공통으로 지급하지만 식품 키트(라면·햇반·생수 등) 지급은 지자체 별로 다르다”고 했다.

자신을 ‘대한민국 군인 아내’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지난 27일 이 같의 내용의 청원을 제기했다. 그는 글에서 남편이 10개월의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가 됐지만, 코로나로 1개월이 더 늦춰진다는 소식을 듣고 “피 말리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매일같이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레바논이라는 곳에서 무사히 돌아온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면서 “(그것만으로) 안심했다”고 했다. 최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선 대형 폭발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부상했다.

하지만 그는 “(남편이 귀국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저에게 부탁을 했다”면서 “(코로나로 인한) 자가 격리에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를테면 '체온계, 손소독제, 마스크, 휴지, 쓰레기봉투, 비상식량(햇반, 컵라면, 김치, 김, 장조림 등) 등'의 기본적인 자가격리 구호품을 말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또 뭔가 군 가족으로서 인내해야 하는 일이 생겨났구나 싶어, 즐거웠던 대화는 끝이 났다”면서 “손끝은 분노로 차가워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내가 커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수행이 부족한가 보다”고 했다.

동명부대 소속 한 여군이 조카를 안고 있는 모습. /뉴시스

그는 “'해외 입국자'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무조건 받을 수 있는 '자가격리 구호품'을 왜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지 자초지종을 들어봤다”면서 지자체에선 동명부대원들이 해당 지자체 지역 주민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자체에선 격리 관련) 구호품을 제공할 수 없고, 또한 코로나 관련 검사도 제공할 수 없어서 2차례에 해당하는 검사를 성남에 있는 수도병원과 대전에 있는 국군병원에 직접 가서 해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해당 지자체가 어딘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지자체명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면서 “지자체의 가까운 보건소를 놔두고 (동명부대) 많은 인원이 그 (먼) 거리를 다녀오는 것에 불합리함이 있어 보이지만, 이 부분은 군인이기에 국군병원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고 했다.

29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 /노석조 기자

그는 또 “입국 후 바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오지 않으면 (국군수도병원에) 절대 입소시키지 않겠다고 한다”면서 “(지자체는) 배출한 쓰레기도 (동맹부대원들보고) 가지고 돌아가라고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울분이 터졌다”고 했다.

또 그 지자체는 격리된 자기 주민에게는 KF 94 마스크, 쓰레기봉투, 손소독제, 살균소독 스프레이, 체온계, 휴지, 생수 30병, 햇반, 3분짜장, 3분 카레, 라면, 김, 초코파이 등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눈물이 너무 나더군요” “오랜만에 서럽게 울었습니다”고 했다.

그는 “그간 많은 역차별을 겪으면서도 말 한마디 안 하고 인내하고 살아왔는데 이번만큼은 이 세상에 부당함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참여한 배경을 밝혔다.

동명부대 24진 환송식에서 연설하는 서욱 당시 육군참모총장. /국방TV 조선일보

그는 해외입국자들, 우한 등 다른 나라의 교민들을 포함해서 신천지·이태원·광화문집회 관련 국민은 어떤 국민이냐면서 “나라의 중요한 외교적 임무를 훌륭하게 마치고 돌아온 우리 '대한민국의 군인'들은 어떤 국민이냐”고 했다. 그러면서 “정말 그저 소위 '바이러스 덩어리'들인 겁니까”라고 했다.

이어 “이런 기본적인 대우에서조차 배제되어야 하고 본인들은 이런 부당함에 아무 말 못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군인'이고 군 가족인 겁니까”라고 했다.

그는 “심지어 전에 복귀한 아크부대원들은 집단 격리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그 군인들과 가족들은 대체 어떤 생각으로 나라를 바라보게 되었을까”라고 했다. 이어 “개인의 비용으로 처리(약 200-300만원 정도 소요)하거나 자가에서 격리했다”고 말했다.

동명부대 18진 환송식. /연합뉴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을 멀고도 먼, 어지럽고도 어지러운 중동으로 보내놓고, 수없는 낮과 밤을 걱정으로 속을 끓여가며 지내왔는데, 이제는 코로나19 관련 자가격리 물품에 관한 걱정도 해야 하는 겁니까?”라며 “무사히 돌아오는 가족에 대한 기쁨만을 가질 수 있도록 미리 방안을 마련해 줄 수는 없던 겁니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청원의 글을 마쳤다.

대통령님, 국무총리님, 국방부장관님, 그리고 해당 지자체장님.

국군 통수권자의 명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하달받은 대로 해내려고 노력하는 군인들입니다.

그리고 부당함에 대해서도 상부의 명이라며 오히려 분노하는 가족들을 다독이는 그런 군인들입니다.

레바논에서 일어난 큰 폭파로 인해 '그 나라 구호물품 조달' 등의 외교적인 사안은 모두 현재 그곳에 있는 동명부대원들이 한 것이죠.

그들의 임무였으니까 당연한 겁니다.

그리고 그 임무를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 그들도 '이 나라 코로나19 자가격리 구호물품' 정도는 당연히 기본적으로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새롭게 레바논으로 들어가는 24진의 건승 기원만 SNS에 올리지 마시고, 그리웠던 고국으로 돌아오는 23진 및 기타 다른 파병 부대원들에 대한 사후 관리(자가격리 관련) 처리도 부탁하고자,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동명부대 23진 환송식’에서 한 부대원이 딸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아빠 잘 다녀오세요!" /연합뉴스

29일 오후 7시 현재 이 청원에는 9437명이 동의했다.

[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2088?fbclid=IwAR0kL31i1W5dmDBZD7211GWTvex6atuVXTopCxaS92Kmjbr1mgqbPR95uaE ]

이날 한 예비역 육군 장성은 본지에 연락해와 “이 청원 내용이 사실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고 파병지에서 돌아온 군인을 나라가 이렇게 대우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신속히 이 청원 내용의 사실 관계를 확인해 적절한 조치를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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