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핀 휴게실..청소 노동자 사망 1년 지났지만 '여전'

박민경 2020. 8. 30.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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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8월 9일, 창문도 없는 계단 아래 골방에서 쪽잠 자다가….

에어컨은커녕 창문도 하나 없이 작은 환풍기를 숨구멍으로 삼는 계단 아래 골방. 무슨 용도로 쓰이는 공간일까요?

이곳은 서울대학교 제2 공학관 남자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휴게실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지난해 8월 9일, 환기조차 안되는 이곳에서 쉬는 시간을 이용해 쪽잠을 자던 청소노동자가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 뒤로 이곳은 폐쇄됐고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 공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청소노동자들은 어떤 곳에서 지내고 있을까요?

서울대의 경우 청소노동자가 숨진 제2 공학관을 포함해 청소노동자 휴게실 대부분은 환경이 개선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청소노동자들을 포함해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은 부족합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으로 서울대 내 건물 총 166곳 가운데 45.8%인 76곳에는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휴게실이 없습니다. 절반에 가까운 청소노동자들은 잠깐이라도 쉬고 싶으면 다른 건물까지 가야 한다는 겁니다.


■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학교가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있어"

'깨끗하고 편리한' 서울대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은 청소노동자뿐만이 아닙니다. 학교 안 카페와 매점, 식당에서 일하는 '생활협동조합' 노동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휴게실 공간은 없거나 열악합니다.

카페 노동자들은 화장실 바로 옆, 창문도 없는 계단 아래 창고를 탈의실로 쓰고 있습니다. 이들은 "워낙 습하다 보니 환풍기에 선풍기까지 돌리고 있지만 퇴근할 때 옷을 갈아입으면 옷에 밴 곰팡이 냄새와 습기 때문에 힘들다"고 입을 모읍니다.

교내에서 생필품 등을 주문받아 공급하는 생협 노동자들의 사무실 겸 휴게실은 더 심각합니다. 의자와 책상, 서랍장으로 이미 가득 차버린 이 공간에는 창문도 환풍기도 없습니다. 심지어 이 좁은 곳을 성인 2명이 함께 사용해야 해서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 합니다. 문밖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카페여서 답답하다고 문을 열고 지낼 수도 없다고 합니다.

이 사무실 밖 카페 벽에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 들어 관악을 보라.'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 에어컨 바람이 쾌적한 카페와 문 하나 차이로 곰팡이 냄새가 너무 심해 숨조차 크게 쉴 수 없는 작은 방 안에 두 사람이 앉아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지난 10일, 청소노동자 사망 1주기를 맞아 추모 기자회견과 집회를 연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사내 식당 근로자들은 배식 시간을 제외한 근무 시간에는 에어컨조차 나오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대학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동등한 학내 구성원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럼 다른 학교 상황은 어떨까요?


■ '지하, 계단 아래, 창문 없는 방, 창고, 곰팡이'… "돌아오는 대답은 예산도 공간도 없어요."

동국대학교 서울 캠퍼스를 찾아가 봤습니다. 건물 지하 창고처럼 쓰이는 공간 한쪽에 청소노동자 남자휴게실이 있습니다. 종이로 써놓은 '미화원 남자대기실'이라는 표지가 없었다면 휴게실인지도 알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축축한 기운과 함께 퀴퀴한 곰팡내가 코를 찌릅니다. 학생들 실습공간인 '자체제작실'에서 사용하는 페인트와 접착제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도 가득합니다. 이곳 역시 '당연히' 창문도 환기구도 없습니다. 휴게실 안에 채워진 선풍기 등의 물건들은 근로자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수년에 걸쳐 십시일반 가져온 것들이라고 합니다.


여자휴게실도 열악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청소노동자 휴게실 대부분이 계단 아래나 근처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임시 벽을 세워 만든 곳이다 보니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데다 1년 365일 습기가 차고 결로에 곰팡이에 시달립니다. 장마가 지나간 뒤 또다시 창궐한 곰팡이에 "지난 며칠을 쓸고 닦아 이 정도"라고 합니다. 추위와 습기를 막기 위해 신문지며 달력 종이며 '뽁뽁이'까지 벽을 따라 덧대어 놓았지만 역부족입니다.

특히 취재진이 다녀온 여자휴게실은 출입문과 방 안의 높이가 140cm밖에 되지 않아 고개와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부상을 막기 위해 문 위쪽에 스티로폼을 덧대어 놓았지만 오가며 자주 머리를 부딪치다 보니 붙여놓은 스티로폼이 거의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 위쪽 공간은 계단과 흡연실인데 휴게실의 유일한 창문이 흡연실 쪽으로 나 있다 보니 담배 연기를 피할 방법은 사실 없습니다.

청소노동자들은 학교 측에 휴게실 환경 개선을 요구할 때마다 '예산도 공간도 없다'는 대답을 반복해서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늘 맨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탄식합니다. 그리고 취재진에게 물었습니다. "서울대처럼 누군가의 죽음이 계기가 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거냐"라고 말입니다.

박민경 기자 (pm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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