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소득 대비 집값' 서울은 12배, 뉴욕·런던보다 월등히 높다

박현 2020. 8. 3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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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R 서울 12.04배 vs. 뉴욕 5.4배, 런던 8.2배
서울 중간소득 계층이 12.4년치 소득 한푼도 안쓰고
모아야 중간가격 주택 매입 가능
2016년말 10배 넘어선 뒤 2018년 12배로 상승
집값 거품 커질수록 그 후유증도 커져
서울 강북지역 주택가 모습.

‘서울 12배, 샌프란시스코 8.4배, 런던 8.2배, 뉴욕 5.4배.’

주택 가격의 거품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추산 방법인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 Price to Income Ratio)로 비교해본 서울과 미국·영국 주요 도시의 주택 가격 수준이다. 이는 중간 정도의 소득을 가진 가구가 해당 지역 중간 가격의 주택을 구입하는 데 소득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았을 때 소요되는 햇수를 말해준다. 서울의 집값 수준이 선진국에서도 집값이 높고 주거 여건이 나쁜 것으로 평가되는 주요 도시보다는 높다는 것이다.

세계 주요 도시의 집값 거품 정도를 추정하기는 것은 쉽지 않다. 집값 거품은 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확산되면서 주택의 ‘내재가치’(주택 소유로 미래에 얻을 수 있는 편익)를 초과해서 형성된 가격을 말한다. 내재가치를 구하려면 소득, 교통, 학군, 이자율 등의 변수들이 집값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해야 한다. 그런 만큼 거품의 정도를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한계가 있지만, 집값이 소득이나 임대료에 견줘 얼마나 높은지, 과거 추세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등을 보고 거품 여부를 판단한다.

PIR는 국제적으로 상당히 많은 기관들이 채택하고 있는 추산 방법이다. 그래서 각국의 집값 거품 정도를 비교할 때 유용하다. 전문가들은 이 비율의 적정 수준을 보통 3~5배 정도로 본다. 물론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이라면 이보다 높을 수 있다. 그래도 이 비율이 10배를 넘으면 과도하게 상승했다고 판단한다. 즉, 거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잣대로 보면 서울의 집값에는 상당한 거품이 끼어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감정원과 통계청이 제공하는 주택가격과 도시가구의 소득 통계를 토대로 이를 산정해보니, 서울의 PIR은 올해 2분기 기준으로 12.04배 수준이었다. 한국감정원이 제공하고 있는 서울 지역의 중위 주택가격(아파트·단독·연립 포함)은 올해 6월 6억4500만원인데, 이를 도시 전체가구(2인 이상) 중간 소득계층인 5분위의 연소득 5400만원으로 나눈 것이다. 도시 전체가구 연소득은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올해 2분기의 월평균 소득(450만원)을 환산한 것이다. 이 비율은 2013년 3분기부터 2016년 3분기까지 9배 수준에서 맴돌다 2016년 4분기에 10배를 넘었으며, 집값이 폭등했던 2018년에 12배로 올라섰다.

서울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 추이. 한국감정원이 제공하는 중위 주택가격을 통계청이 매분기 발표하는 도시가구(2인이상) 5분위의 연소득 환산액으로 나눈 값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외국 주요 도시의 PIR는 미국 소재의 부동산컨설팅회사인 웬델콕스컨설팅(demographia.com)이 16년 전부터 매년 내놓고 있는 ‘국제 주택 구매력 서베이’(International Housing Affordibility Survey) 자료를 참고할 수 있다. 이 컨설팅사는 지난해 3분기 가격과 소득을 기준으로 8개국 92개 도시를 평가한 서베이 결과를 올해 1월 내놨다. 아쉽게도 한국은 이 서베이에 포함돼 있지 않아 직접적 비교는 어렵다. 다만 이 컨설팅사는 주요 도시의 중위 주택가격을 중위 소득자의 연소득으로 나눠 계산한 PIR 숫자를 내놓고 있어, 비교하기에 유용하다.

조사 결과를 보면, 홍콩이 20.8배로 가장 높았다. 사실상 도시 국가인 홍콩을 제외하면 10배 이상을 나타낸 도시는 캐나다 밴쿠버(11.9배)와 호주 시드니(11배) 두곳뿐이었다. 이어 호주 멜버른(9.5배), 미국 로스엔젤레스(9배)·샌프란시스코(8.4배), 영국 런던(8.2배), 미국 뉴욕(5.4배) 순이었다.

외국 주요 도시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 Median Multiple은 해당 지역의 주택가격 중위값을 해당 지역 중위 소득자의 연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자료: Demographia.com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서울과 외국의 주요 도시간 집값 비교는 계산방식의 차이뿐만 아니라 주거 여건도 많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서울의 과거 집값 추세와 비교해서 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다행히도 국민은행이 2008년 12월부터 이런 통계를 내놓고 있다. 국민은행이 내놓은 가장 최근 수치인 올해 6월 PIR는 14.1배다. 이 비율은 2008년 12월 11.9배에서 2009년 9월 12.1배까지 올랐다가 하락하기 시작해 2014년 1월 8.8배까지 내려갔다. 그러다가 2014년 하반기부터 다시 상승하기 시작해 2016년 4월 10배를 넘었으며, 2017년 6월 11배, 2018년 3월 12배를 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서울 집값 PIR가 이전 집값 고점 시기로 거품 논란이 일었던 2008~2009년보다도 높은 수준에 형성돼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은행은 주택가격과 소득계층을 각각 5분위로 나눈 뒤, 중간값에 해당하는 3분위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서울의 3분위 주택가격 평균을 도시 전체가구(2인이상) 3분위 소득으로 나눈 것이다.

자산가격 거품은 대개 사람들의 심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집값이 한동안 상승세를 타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값이 더 오를 것 같다는 집단 심리에 빠져든다. 집을 가진 사람은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고, 집을 못가진 사람은 지금 사지 못하면 영영 원하는 주거 여건의 집을 사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소득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의 빚까지 내어 집을 사는 사람들까지 나타난다. 여기에다 투기꾼들은 단지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주택을 추가로 구매하게 된다. 집값이 정점을 향해 치솟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들이다.

자산가격 거품 이론의 권위자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이를 ‘사회적 전염’(social contagion)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미국 주택시장 거품과 그에 뒤이은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을 분석한 책 (번역서 제목은 <버블 경제학>)에서 이렇게 썼다.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분명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내가 <이상과열>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모든 투기적 붐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요소는 붐이라는 가격 폭등 현상을 함께 지켜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전염’이다. 사회적 전염 때문에 붐이 계속되리라는 믿음을 강화시키는 이야기들, 소위 ‘새로운 시대’에 관한 이야기들이 점점 신빙성을 더하게 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이른바 30대들의 ‘영끌’ 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는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신조어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집 매입 자금을 마련한다는 뜻이다. 은행 신용대출도 모자라 제2금융권에서 자금을 끌어쓰는 것이다. 심지어는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기까지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집값 상승세도 언젠가는 꺾이게 마련이다. 다만 시기가 문제일 뿐이다. 집에 대한 투자자의 수요가 영원히 증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집값 폭등이 이어져 거품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후유증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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