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는 왜 돼지 뇌에 생각 읽는 칩을 심었나

조승한 기자 2020. 8. 3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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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럴링크, 뇌 속에 컴퓨터 칩 심은 돼지 선보여
뉴럴링크의 칩 '링크 0.9'를 뇌 속에 이식한 돼지 '거트루드'가 이달 28일 뉴럴링크 미국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 열린 시연회에서 공개됐다. 거트루드는 물을 마시는 등 다른 돼지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을 선보였다. 뉴럴링크 유튜브 캡처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뇌-컴퓨터 연결 기술 개발기업 ‘뉴럴링크’가 뇌에 전극 칩을 심은 돼지를 선보였다.

뉴럴링크는 이달 28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고 2개월간 생활한 돼지 ‘거투르드’를 유튜브 생중계로 공개했다. 뉴럴링크는 인간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칩을 개발해 생각을 올리고 내려받는  것을 목표로 2017년 머스크가 설립한 회사다.

거투르드의 뇌 속에는 ‘링크 0.9’라는 뉴럴링크가 새로 개발한 칩이 심겼다. 링크 0.9는 뇌파 신호를 수집하는 가로 23mm, 세로 8mm 크기 칩을 전극이 달린 동전 모양의 케이스로 감싼 형태다. 칩은 수집한 뇌파를 초당 10메가비트 속도로 무선 전송할 수 있다. 무선충전이 가능하며 한번 충전하면 하루종일 쓸 수 있다.

거투르드가 주둥이를 이용해 냄새를 맡자 신호가 컴퓨터로 전송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이날 시연회에서는 거투르드가 주둥이를 통해 사물의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자 뇌 속에 전달된 신호가 그대로 컴퓨터에 전송되는 모습이 공개됐다. 돼지가 사물을 판단할 때 쓰는 주둥이는 뇌와 많은 신경으로 연결된 부위다.

뉴럴링크가 지난해 처음 공개했던 칩의 형태는 귀 뒤에 작은 통신 모듈이 있었으나 이번엔 칩 속에 통신 모듈이 탑재됐다. 외부에서 보면 칩을 심었는지 알 수 없는 셈이다. 머스크는 “두개골 속 ‘핏빗’과 같다”고 설명했다. 핏빗은 이용자의 운동량이나 심장 박동 등을 측정해 데이터화하는 스마트워치 제품명이다. 머스크는 링크 0.9 또한 블루투스를 통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연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뇌 신호를 읽으면서 동시에 세포에 자극을 주는 초소형 칩을 지난해 개발해 선보인 조일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단 바이오마이크로시스템연구단장은 이번 발표에 대해 “기술 측면으로 보면 논문으로 이미 선보인 내용들을 발표한 만큼 새로운 기술들은 아니다”면서도 “이전에는 기술을 단순히 선보였다면 이번엔 현실에서 어느 정도 모습을 구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뉴럴링크가 개발한 새로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칩 '링크 0.9'의 구조다. 유튜브 캡처

이날 머스크는 거투르드 외에도 컴퓨터 칩을 2개씩 이식한 돼지 3마리와 이식 경력이 있는 돼지 1마리가 있다며 모두 다른 돼지와 다를 바 없이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머스크는 “이식된 칩에 입력된 자료에 따라 러닝머신에서 다리를 움직이는 돼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돼지에 칩을 이식하는 데 성공하면서 뉴럴링크가 목표로 하는 사람 뇌 속 칩 이식에 한층 가까워졌다는 평이다. 조 단장은 “비슷한 연구에 쓰이는 원숭이는 사람보다 작다 보니 실제 뇌 크기가 사람과 비슷한 돼지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뉴럴링크에서 기억력 감퇴나 우울증 치료를 목표로 한 만큼 고등 인지를 할 수 있는 어느 정도 똑똑한 동물에게 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머스크는 이날 칩 이식 수술을 자동으로 할 수 있는 임플란트 로봇 시제품 ‘V2’도 함께 선보였다. 머스크는 이 로봇이 1시간 안에 뇌 속에 지름 5마이크로미터(㎛·100만 분의 1m) 미세 전극 1024개를 심을 수 있다고 밝혔다. 뉴럴링크는 칩 이식을 라식 수술만큼 간단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 단장은 “혈관을 피해 전극을 심는 기술은 실제 사람에 적용할 때 가장 필요한 기술”이라며 “수술 로봇이 실제 적용 가능한 제품 형태로 나왔다는 건 높은 완성도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 뉴럴링크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시연회에서 칩 이식 수술을 자동으로 할 수 있는 임플란트 로봇 V2도 선보였다. 유튜브 캡처

머스크는 “기억 상실, 청력 상실, 우울증, 불면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경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이용자의 건강을 모니터링하고 심장 마비가 오면 경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머스크는 지난해 발표에서 2020년까지 인간의 뇌에 칩을 심겠다고 밝혔음에도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는 못했다. 매튜 맥두걸 뉴럴링크 신경외과 수석은 이날 “소수를 대상으로 한 뉴럴링크의 첫 임상 시험이 하반신 마비 치료를 목표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뇌에 칩을 심는 시도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의료계에선 뇌에 전극을 심어 사지마비 환자가 로봇을 장착하고 걷게 만드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지난해 10월 프랑스 그르노블대 연구팀은 사지마비 판정을 받은 청년의 뇌 속에 2개의 칩을 심어 뇌 신호만으로 외골격로봇을 조종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뉴럴링크 시연회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DVvmgjBL74w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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