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동목장에 세운 풍력발전..임대료로 장학금, 관광객도 온다
③ "환경훼손 안돼" 주민 뜻 지킨 제주 가시리
“목장의 말, 소 모두 유산하는 일 없이 잘 살고 있죠. 어떤 마을에선 골프장을 만들기도 했던데 (풍력발전을 유치한 게) 훨씬 친환경적인 것 같아 좋아요. 전력도 생산되고….”
제주도 가시리 목장의 오창홍(65) 조합장의 말이다. 가시리의 풍력발전단지는 마을 주민의 공동 소유인 이 목장에서 2012년부터 가동됐다.
2만9649㎡에 이르는 가시리 목장엔 큰사슴이오름(대록산·472m)을 배경으로 국산 풍력발전기 13기가 설치돼 있다. 말 150마리와 소 300마리도 함께 키우고 있다. 발전단지는 연간 3만4164㎿ h 정도의 전력을 생산한다. 발전단지를 운영하는 제주에너지공사의 고영준 운영관리팀장은 “읍 규모에 해당하는 90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풍력발전단지의 건설과 운영 과정엔 종종 사업주체와 주민과의 갈등이 빚어지곤 한다. 환경 훼손 논란, 발전기로 인한 소음, 인근 농업·목축업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때문이다. 이런 곳은 대개 발전사업자가 부지를 선정한 뒤 발전기를 설치하는 식이다.
하지만 마을 주민이 스스로 유치한 가시리의 풍력발전단지는 이런 문제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주민 김명숙(48)씨는 “마을 공동 목장을 자연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주민에게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풍력발전소를 선택하게 됐다”고 전했다. 개발을 앞두고 주민 사이에 '대규모 관광사업은 하지 말자', '땅을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주자', '원상복귀가 가능한 사업을 하자' 등의 합의가 있었는데, 주민 스스로 풍력발전이 적합하다고 판단해 신청했다는 설명이다.
2008년 12월 제주에너지공사가 국내 최초로 풍력발전단지 공모에 나서자 제주도의 마을 네 곳이 신청했다. 심사 결과 가시리가 최적지로 꼽혔다. 가시리엔 약 500가구, 1200명이 사는데, 발전단지가 있는 곳은 마을로부터 5㎞가량 떨어져 있다. 소음 문제로 민원이 발생할 일이 없었다. 국비 254억원 등 공사비 435억원을 투입해 발전단지를 세웠다.
국산 제품으로만 지어진 가시리 풍력발전단지는 국내 풍력발전 제조업체와 운영자의 사업 경험을 축적하는 데도 도움 주고 있다. 풍력발전기 사업은 협소한 국내 시장만으로는 유지하기 어려워 수출이 필수다. 고영준 팀장은 “가시리 단지는 국내 제조업체의 역량을 키워 해외로 진출을 돕기 위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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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공유화’로 마을주민과 상생해
이렇게 세워진 풍력발전단지는 마을의 '효자'가 됐다. 주민이 적극적으로 찬성할 수 있었던 이유엔 ‘이익 공유화’ 방식 덕분이다. 주민들은 연간 3억원가량을 임대료 명목으로 받는다. 풍력발전소 운영 주체인 제주에너지공사가 마을 발전기금으로 내놓는 돈이다.
뿐만 아니라 가시리에 2년 이상 거주하는 주민이라면 가구당 월 2만원씩 전기료를 지원받는 혜택도 받고 있다. 정윤수 가시리 이장은 “임대료 명목으로 받은 발전기금은 가시리에 사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그리고 노인 복지기금으로 이용된다”고 말했다.
가시리 발전소는 “훗날 원상복귀가 가능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건설됐다. 발전소 울타리는 시멘트 대신 제주도의 특색을 살린 돌담으로 지었다. 공사 중 가시리 목장에서 나온 돌은 외부 반출하지 않고 모두 목장 한구석에 쌓아두기로 했다.
'제주도다움'을 잃지 않은 발전소의 외관 덕에 관광객도 크게 늘었다. 제주 고유의 목가적 풍경에 하얀색 바람개비가 빙글빙글 도는 이국적 풍광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풍력발전기 밑에서 자유로이 풀을 뜯어 먹는 가축들의 모습은 관광객의 시선을 끌었다.
풍력발전과 주민과 상생하는 기반이 마련되자 풍력발전단지가 추가로 들어서기도 했다. 제주에너지공사가 만든 발전소 건너편엔 SK D&D가 조성한 풍력발전단지다. 풍력발전기 10기를 갖춘 총 30㎿급 규모다.
김범석 제주대 풍력공학부 교수는 “풍력발전단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지역 고용창출과 수익 환원 등 상생의 방안을 마련해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며 “발전사업비의 일부를 주민 투자 몫으로 돌려주는 등의 정책들이 풍력산업의 사회적 수용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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