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가 진보?..미래 안보고 국민을 과거 진창속에 넣는 수구세력"[청론직설]
끊임없이 국민 갈라치고 반목시키는 정권 본 적 없어
文정부, 순도 높은 포퓰리즘..지지층 겨냥 지속불가 정책
국민욕망 억누르는 부동산정책·국정난맥에 불만 쌓여
전국민 기본소득은 '훈고학'..빈곤계층 지원이 합리적
-경제학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유는.
△4년 전에 비례대표 제의를 거절했다. 그 귀한 자리에 가서 4년 동안 국회에서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한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달라졌다. 어떤 정권이든 정부를 지원하는 게 우리(KDI·한국개발연구원) 일이고 그게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현 정부를 서포트해봤자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지 않더라. 해방 공간에서 우리 사회에 갈등이 많았지만 한국전쟁 이후 이렇게 국민이 분열된 적은 없었다. 특정 소수의 사람들이 핍박을 받은 적은 있지만 정치권력이 국민을 끊임없이 갈라치고 반목시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정책 측면에서 더 그렇다. 능력이 없어 정책을 잘못 편다기보다는 목표가 따로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이데올로기적 지향이 바닥에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이 되는 세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느껴진다.
△전혀 아니다. 공관위원장이 보자고 하길래 비례대표 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 심지어 공관위가 비례대표를 다루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더러 ‘윤 박사는 지역구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무슨 얘기인가 했더니 ‘내 외모가 서민적이래···(웃음).’ 살짝 기분이 나빴다(웃음). ‘윤 박사는 시장통에 가서도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내가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느낌의 교수가 아니어서 (공관위원장이) 안도하는 것 같더라.
-어떤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가.
△지금 정부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갈등·분열·과거 지향적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 미래에 대비해야 할 일이 많은데도 갈등과 싸움 속으로 국민들을 끊임없이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 단계를 지나가야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국민들이 과거 지향의 진창에서 벗어나려면 반대쪽의 힘이 필요하다. 우리 앞에 도사린 도전의 과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하고, 그 과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게 아닌가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하는가.
△보수냐, 진보냐고 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사안마다 다르다. 사회적인 성향은 나름 상당히 진보적이다. 여당에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지만 그분들을 진보라고 절대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굉장히 수구적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안 보는데 무슨 진보인가. 소위 진보라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나는 진보가 맞다.
△자유토론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원내대표가 그냥 허공에 대고 하면 된다고 하더라. 그래도 내가 모범생이니까 준비는 많이 했다(웃음). 큰 실수 없이 마무리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다음날(7월31일) 점심 먹을 때까지 몰랐는데 오후 들어 실검(실시간 검색)에 내 이름이 막 올라가더니 저녁때 송혜교· 현빈까지 눌렀다(웃음). 주말에 기자들로부터 전화가 엄청나게 오고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문자가 막 날아오고···. 겁도 나고 해서 문을 걸어잠그고 전화 끊고 그냥 숨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해야 하니까. 이해하는 데 3일쯤 걸렸다.
-페이스북을 통해 현 교육 정책을 ‘전 국민 가재 만들기’라고 비판했는데.
△지금 사회에서 용은 원하고 싶은 대로 되는 것이다. 그게 뭐가 됐든 말이다. 되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애들이 열망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게 교육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래야 박지성도 나오고 BTS도 나온다. 우리 교육은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열패감을 갖게 한다. 학교에서 엎드려 자도 깨우지도 않고 기초학력이 미달해도 그러려니 하고 다 포기한다. 공교육의 가장 기초적인 책무를 저버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말한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라도 기본적으로 읽고 생각하는 능력은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제도권 교육으로부터 포기를 당했다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해줘야 자기 나름의 용이 될 수 있다. 사다리 밑바닥에서 열패감에 빠지게 하면서 공부가 다가 아니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래서 ‘수포자(수학 포기자) 언니’를 언급했나. 언니는 뭐라고 하던가.
△어떻게 그것을 다 기억하느냐고. 언니가 마지막 모의고사 수학 시험에서 40점 만점에 6점을 맞았다. 연필을 굴려도 10점은 나와야 하는데···. 우리 식구들이 언니가 대학에 떨어질 것 같아 모두 걱정했는데 학력고사는 그보다는 더 맞았다. 그날 우리 식구들이 다 울었다.
-공교육을 강화하자는 말인데, 그럼 자사고와 특목고 폐지 찬성하는가.
△어느 나라든 공교육 체계 밖에 우리의 자사고 같은 사립학교 시스템이 여러 가지 있다. 사립학교를 허용하는 이유는 공교육이 할 수 없는 새로운 시도나 창의적 실험을 사립학교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공교육을 자극해 교육 시스템 전체에도 활력을 높일 수 있다. 이런 토양을 만드는 게 중요하지 무턱대고 없애겠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자사고·특목고가 욕을 먹는 것은 과연 이런 실험을 하느냐 여부다. 제 기능을 못하면 해소하는데 역점을 둬야지 폐지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5분 연설’ 이후 통합당 지지율이 역전됐는데.
△연설은 작은 해프닝일 뿐이다. 내가 느꼈던 것은 국민들이 엄청나게 바라는 게 많다는 점이다. 그게 뭐냐면, 현 정부를 믿기 어렵고 불만이 많고 그런 불만을 받아줄 만한 대안세력도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제 연설에서 아주 가느다란 합리적인 목소리를 발견했다고 본다. 꽉 눌려져 있던 국민들의 분노가 굉장히 컸고 그게 부동산 정책을 통해 폭발한 것이다. 사실 그 앞에 굉장히 문제가 많았다. 소득주도 성장부터 시작해 탈원전과 선거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문제나 조 전 장관 임명까지. 모든 게 고압적이다. 국민의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여당이 문제가 있어도 그동안 야당에 플러스가 안 됐다. 그게 총선에서 드러났다. 저 정도로 잘 못하면 이쪽으로 넘어올 것이라고 잘못 생각했던 것이다. 원래 야당은 여당의 실수를 먹고 산다고 하는데, 지금은 야당이 제대로 쇄신하지 않으면 저쪽의 마이너스가 이쪽에 플러스 되지 않는 구조다. 이건 새로운 상황이다. 야당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있다. 우리 당의 100명 중에 60명이 초선이다. 예전엔 계파가 있었다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안 보인다. 다선 의원들도 굉장히 조심하고 다들 초선의 기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19 사태로 지지율은 엎치락뒤치락 하겠지만 추세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2차 재난지원금을 두고 논란이 많다. 부양이 아닌 구제에 맞추자고 했는데.
△전 국민 지급은 소비진작을 통한 경기부양의 성격이 강하다. 부양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들이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을 때가 돼야 부양 효과가 나온다. 그 목표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다른 기준이 필요 없다. 이번에는 타격받은 사람들에게 주면 되는 거다.
-학자 때 시혜성 현금살포를 반대한 것으로 안다.
△비상 상황이다.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이 위기가 끝나도 다시 돌아갈 사업체가 없어지고 그곳 근로자 역시 돌아갈 일자리가 없어지는 상황이다. 이는 경제의 기초적인 기반이 무너지는 문제다. 일단 막아내고 떠받치는 것이 우선이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복지 제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통합당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말한 것은 뜻밖이다.
△우리 사회에서 예전보다 체제 유지 비용이 훨씬 높아졌다. 많은 사람이 나라가 발전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게 없다는 소외감을 느낀다. 그런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나쁜 정책을 선택할 우려도 있다. 응집력도 많이 떨어졌다. 사회통합에 굉장히 큰 장애 요소라 지속 가능한 성장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건 훈고학(고전 본래의 의미를 해석하는 학문)이다. 기본소득의 정신이나 개념은 모든 국민이 그 사회의 기본적 지분을 갖는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보장해줘야 하는 기본권은 소득과 분배 수준에 따라 계속 변한다. 그 변화의 끝은 아마도 4차 산업혁명으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시나리오일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생존하기 위해 살아남은 자산가·자본가들에게 왕창 세금을 걷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상황까지 염두에 둘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노동시장이 살아 있기에 똑같이 나눠줄 상황이 아니다.
-기본소득이 일종의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데.
△빈곤구제는 포퓰리즘이 아니다.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빈곤층 구제가 시급하다고 보는 것이다. 빈곤선 이하 계층이 딱히 통합당 지지 기반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현금살포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미 발생한 빈곤에 대해서는 구매력을 확보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60·70대 노인은 일을 더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높은 연령층은 현금밖에 없다. 기본소득을 하자고 해서 현금지원에만 ‘몰빵’하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KDI 재직 시절부터 ‘포퓰리즘 파이터’로 불렸다. 현 정부는 포퓰리즘 정부인가.
△순도 높은 포퓰리즘 정부다. 기준은 명확하다. 정책 측면에서 보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지속 가능성이 없는 얘기를 하는 거다. 예를 들어 지금 구조개혁을 안 하면 국민연금은 당장 30년 뒤 붕괴한다. 지금 연금을 내는 사람들은 앞으로 연금을 제대로 받을 확률이 없다. 정부는 혈세를 쓰는 데만 열중했지 지금껏 구조개혁을 한 게 없다. 재정 측면에서도 그렇다. 재정준칙을 만들고 지키려는 의지가 있는가. 두 번째는 모든 국민이 아니라 특정 포퓰레이션(대중)을 위한 정책을 편다는 것이다. 자신의 지지층, 자신이 좋아하는 포퓰레이션만 골라서 정책을 편다. 문재인 정부는 두 가지 기준을 완벽하게 만족한다.
△현 정부는 자신들이 명령하면 시장이 들을 것이라는 이상한 성향을 갖고 있다. 시장에서 이상 움직임이 나타나면 왜 그런지 분석하고 대응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내 집이 가지는 안정감은 매우 강하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만 너무 특이해서 가계 자산 구성에서 부동산 비중이 크다고 오해한다. 그렇지 않다. 미국만 예외적으로 낮지 유럽도 우리와 엇비슷하다. 내 집 마련에 대한 욕망, 나아가 아이들이 크면 조금 더 넓고 쾌적한 곳으로 가려는 욕망을 인정하는 게 시장에 대한 이해다. 한데 정부는 집이 없어도 임대주택에 오래 살게 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월세로. 이건 국민더러 욕망을 억누르라는 명령이다. 위로 올라가겠다는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복지정책 연구부장,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16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반대하며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을 사퇴하기도 했다.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로 서울 서초갑에 출마해 당선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으로 통합당 경제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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