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좀" 보호자도 갑질..코로나 전선 간호사의 하루

최재영, 신승이 기자 2020. 8. 3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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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매일 녹초가 되도록 일하면서 이런 폭언을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코로나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인데요, 일부 확진자들이 밥이 맘에 안 든다고, 택배가 늦는다고 화를 내고, 거기에 보호자들까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며 갑질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횡포로부터 간호사들을 지킬 방법은 없는 건지 최재영, 신승이 기자가 차례로 전해드립니다.

<최재영 기자>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말인데… '손님 접대를 이렇게 해서 되겠냐'고, '똑바로 좀 해라' 이런….]

간호사 출신의 간호사 인권 활동가 오성훈 씨에게 최근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오성훈/널스노트 대표 : (한 병원에서) 호텔식사를 제공하는데도 '내가 이런 싸구려 먹으려고 지금 이렇게 입원한 게 아니다' '고기나 생선 위주로 갖다주고…' 간호사에게 화내면서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일부 확진자들은) 간호사들을 막 촬영하고, 웃으면서 촬영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24시간 동안 상주해서 간호해달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그런 성적인 수치심이 느껴질 만한 발언들도 한다고 합니다.]

취재진과 연락이 닿은 서울 지역 병원의 한 현직 간호사는 심부름 안 한다고 욕까지 먹고 있습니다.

[코로나 병원 간호사 : 택배가 도착했는데 바로 가져다 주지 않았다고 이기적인 X들 이렇게 욕을 하면서….]

최근에는 환자 보호자들까지 간호사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병원 간호사 : (보호자들이) 과일이나 이런 것들을 사서 보내 줄테니 급식 배식할 때 조금씩 나눠서 계속 챙겨줘라]

[오성훈/널스노트 대표 : 두 번 정도 음성이 나오면 퇴원을 해야 하는데, 자기네들이 감염될까 봐 (환자를) 퇴원시키지 말라고. 퇴원시키면 안 받는다고, 우리 가족에서 못 받는다고….]

코로나 병동의 간호사들, 감염 공포를 뒤로 한 채 땀 줄줄 흐르는 방호복 입고 간호 업무에, 배식에, 청소까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극도의 감정 노동까지 더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김문경/서울 서남병원 간호부 파트장 : (지금) 신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태입니다. 힘든 상태에서 심리적인 문제까지 얻게 되면 받아들이는 게 조금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신승이 기자>

재작년 한 지방의료원이 일부 환자들의 횡포로부터 의료진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검토한 내부 보고서입니다.

만약 환자가 욕을 하거나 없는 말 지어내 괴롭히면 모욕죄, 명예훼손죄로 고소·고발할 수 있고 거친 말로 의료진에게 겁을 줘도 10만 원 이하 벌금을 매길 수 있다고 짚고 있습니다.

성적 모욕을 줄 경우 성폭력처벌법이나 모욕죄, 또 요구 사항 안 들어준다고 큰 소리 치고 난동 부리면 업무방해죄가 적용돼 각각 벌금형 이상의 형에 처해 질 수 있고요,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마련돼 있는 셈인데 그렇다면 현장에서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전국 1만 8천여 명의 간호사 등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환자로부터 폭언을 들었을 때 공식 기구나 법을 통해 해결한 경우가 단 1.5%에 불과했습니다.

그냥 참았다는 사람? 10명 중 8명꼴이었습니다.

환자는 돌봄 대상이라는 인식, 그리고 문제를 키워봤자 뒷감당은 다 의료진 몫이라는 현실 때문입니다.

[코로나 병원 간호사 : 그것(법적 대응)까지 생각을 하면서 8시간 일을 하기가 너무 벅차요. '아, 내가 그냥 상처 받았어'하고 그냥 그렇게 하고 가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피해를 입은 경우 병원이 의료진을 업무에서 배제해 보호하는 게 원칙이지만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코로나 병원 관계자 : (코로나 이전에는) 강제 퇴원조치를 한다거나 이런 경우도 아주 간혹, 정말 심한 분들 같은 경우에는 있었지만, 여기서 퇴원을 못 시키는 부분이고….이분들(코로나 환자들) 퇴원하면 어디로 가겠어요?]
 
[이정훈/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장 : 해외에서는 명확한 처벌지침, (의료진을) 보호해야 된다는 규정 이런 것들을 많이 게시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환자가 뭘 하고 뭘 안 해야 되는지 인식이 잘 안 돼 있습니다.]

더 이상 의료진의 희생에만 기댈 게 아니라 의료기관과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때입니다.

(영상취재 : 이병주, 영상편집 : 김종태, CG : 홍성용·최재영·이예정)     

최재영, 신승이 기자stillyo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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