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힌 '사교육 일번지'..학생·학부모·학원 모두 울상

31일부터 일주일간 집합금지 명령..학생들 "집에선 공부 안 돼요"
독서실·스터디카페도 탄식.."집합금지 명령문, 마치 사형선고 같아"

인적 드문 대치동 학원가 [촬영 임성호]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2시께 '사교육 일번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텅 빈 거리에서는 책가방을 메고 바쁘게 오가는 학생 몇 명만 가끔 눈에 띌 뿐이었다.

수도권 학원에서 비대면 수업만 허용되고, 독서실과 스터디카페에도 사실상 운영을 금지하는 집합금지 조치가 실시된 첫날인 이날 대치동과 양천구 목동, 노원구 중계동 등 서울의 대표적인 학원가는 적막이 감돌았다.

학생과 학부모, 학원·독서실 등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고자 6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조치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어려운 현실을 호소했다.

◇ 적막한 대치동·노원 학원가…닫힌 문엔 '집합금지명령' 공문

이날 오후 대치동의 한 수학학원에는 원장과 직원들만 빈 강의실을 지키고 있었다. 학원 강사는 "오늘부터 대면 수업은 전혀 없고, 교재를 받거나 등록 연장을 하려는 학생들만 간간이 찾아온다"며 "수능이 얼마 안 남은 시기에 이렇게 돼 안타깝지만, 학생들 공부에 차질이 없도록 온라인 강의를 이어갈 생각"이라고 했다.

아예 일주일간 문을 닫은 학원들도 눈에 띄었다. 한 소형 수학학원 출입문은 6일까지 대면 수업을 불허한다는 집합금지명령 공문이 붙은 채 잠겨 있었다.

이번 방역 조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9인 이하 교습소도 문을 닫은 곳이 있었다. 대치동의 한 논술 교습소 강사 김모(47)씨는 "학생이 9명이 되지 않는다고 수업을 진행하는 게 안전한 것은 아니어서 일주일간 문을 닫기로 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중계동 학원가 일대도 적막만 흘렀다. 9층짜리 건물은 각 층의 학원과 독서실, 스터디카페 문이 굳게 닫혀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수강생 200여명 규모의 수학학원을 운영하는 조모(65)씨는 학원 문을 닫은 채 비대면 수업 준비에 바쁜 모습이었다.

조씨는 "정부가 우선 일주일만 휴원 명령을 내리긴 했지만, 추세를 보니 더 길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 사태가 천재지변에 준하는 수준인 만큼 모두가 동참해야 빨리 끝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안팎으로 조용한 학원가 [연합뉴스 자료 사진]

◇ 학생 "갈 데가 없어져 힘들다"…학부모 "과외 알아봐야 하나 고민"

수도권 학교에서 다음 달 11일까지 등교 수업이 중단(고3 제외)되면서 학생들은 최근 그렇지 않아도 공부할 곳이 마땅찮았다. 그런데 이날부터는 당분간 평소 공부하던 그 어느 곳에서도 책을 펼치기 어려워졌다.

학생들은 대부분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고는 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아 걱정된다고 입을 모았다.

선릉역 근처 한 스터디카페를 다니다가 오늘부터 집에서 공부 중이라는 고등학교 3학년 김모(18) 학생은 "밖에서 공부할 데가 단 한 곳도 없어 집 책상에 앉긴 했지만, 확실히 방해 요소가 많아 효율이 많이 떨어지고 몸도 처진다"고 했다.

노원구의 한 여고에 다니는 진모(18), 조모(18) 양은 "갈 데가 없어져 더 힘들다"고 울상을 지었다.

코로나19로 단축 수업이 이뤄져 오후 1시 50분이면 수업이 끝나는데 도서관, 독서실 등이 모두 닫으면서 집에서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진 양은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제는 화도 나지 않고 모든 걸 체념하고 해탈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학부모들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워킹맘 정모(48)씨의 고교 3학년 자녀가 다니는 대치동 과학학원은 30일부터 대면 수업을 전면 중단했다. 독서실도 함께 쉬면서 정씨의 자녀는 온종일 집 안에서 공부하고 있다.

정씨는 "밥을 챙겨줄 시간도 별로 없다 보니 아이가 점심에 혼자 라면이나 즉석밥 등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 때가 많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주모(52)씨의 재수생인 둘째 아들도 이제 집에서만 공부해야 한다. 주씨도 재택근무를 하고 대학생인 첫째도 집에 있는 등 온 가족이 집에 있게 됐지만, 수험생 둘째를 위해 모두가 큰 소리도 못 내고 숨죽인 채 지내고 있다.

주씨는 "수능을 봐야 하는 아들이 가장 힘들 것 같다"며 "수능이 100일도 안 남았는데 학원도 독서실도 못 가니 과외를 알아봐야 하나 고민"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맘카페 등에도 학원 휴원 소식에 "'집콕'을 하던 3월로 돌아간 것 같다", "제대로 일상생활을 못 하는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수도권 거주 부모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대치동의 한 학원에 붙은 집합금지명령 공문 [촬영 임성호]

◇ 신음하는 학원·독서실·스터디카페…임대료가 가장 큰 걱정

학생들의 발길이 끊기며 학원과 독서실은 당장 임대료·세금·인건비 등 기본 유지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수강생 30여명이 다니는 노원구의 한 종합학원 부원장 이모(43)씨는 "오늘 학원 문에 붙어있는 집합금지명령문을 보면서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코로나 확산 초기인 지난 2, 3월에도 2주간 2번씩을 쉬었다는 그는 "휴업을 해도 임대료가 나가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휴원하면 학원비 부분 환불이나 교습 기간 연장을 원하는 학부모들이 있어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다.

최모씨가 운영하는 목동의 스터디카페 역시 31일부터 잠시 문을 닫았다. 그는 코로나 사태 이후 한 칸씩 띄어 앉도록 좌석을 줄이고 손님이 이용한 자리는 바로 소독하는 등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켰다. 그러나 끝내 휴업을 피할 수 없었다.

최씨는 "독서실이나 스터디카페는 특성상 말도 거의 안 하고 집단 감염이 나온 적도 없는데 영업을 완전히 막으니 억울한 마음도 있다"며 "그동안도 손해가 컸는데, 이제는 임대료나 낼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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