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형 칼럼] 시무7조 상소, 무엇이 국민 가슴 때렸나

김세형 입력 2020. 9. 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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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내각의 장관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다른 얼굴이다. 홍남기, 추미애, 김현미, 박능후, 이정옥, 조국, 정병두…. 전·현직 장관들의 면면이다.

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면서 그들이 했던 발언을 생각하면 장관들은 사실만을 말했던가. 아니면 거짓말을 더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드는가.

문재인정부 이전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장관들의 말을 감히 거짓말이란 단어와 등치시킬 상상조차 안 했다.

그런데 문(文)의 장관들은 헌정사 이후 처음으로 변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31일 오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현미 장관은 지난주 "임대차법 국회 통과로 집값 안정 효과가 8월 이후 나타날 것인데 30대가 영끌해서 다주택자들이 내놓은 집을 사는 게 안타깝다"는 발언을 했다.

국토부의 23번째 대책의 핵심은 은마, 잠실5단지 재건축 시 공공임대 개념을 넣어 '강남 공급 확대'가 핵심이었는데 실제 추진되는가를 취재해보니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건축법 위반으로 용적률 500%가 애초 성립하지 않아 은마, 잠실5단지 공공참여 재건축은 불가능했다는 게 SH공사 측의 설명이다.

검토조차 안 해보고 대책이라고 발표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8월이 지나면 안정될 것이란 말은 도대체 뭘 믿고 하는 소린지 참 뻔뻔스럽다.

지난 7월엔 국회에서 올해 아파트값이 11% 올랐다고 말해 '김현미 거짓말'이 실검 3위에 올랐다.

22번째 대책을 낸 후 국회에서 지금까지 4번밖에 안 냈다고 하고, "부동산 정책은 잘 작동한다"고 우겼다.

진인 조은산이란 사람이 "역적 김현미를 파면하소서"라는 상소문2를 올린 게 이즈음이었는데 당시 잘 안 알려졌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게시된 일명 '시무7조 상소문'이 공개 전환 하루만에 답변기준인 20만명을 돌파했다. /사진=청와대 게시판 캡쳐
상소문3 '시무7조'로 지난주 전 매스컴을 도배한 다음 온 세상이 그 내용을 알게 됐다.

원고지 50장쯤은 되는 장문의 상소문을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어보면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강도가 상상을 초월함에 놀랍다.

그래서 청와대 게시판에서 숨기고 싶었을 터인데 언론에 들키고 말아 할 수 없이 내걸었다.

그 내용을 보면 1)세금이 높은 가렴주구 2)소주성 최저임금 복지과다지출(54조원)의 부당성 3)한·미·일 동맹파탄, 친북파탄 4)인간욕망 인정할 것 5)인재 발탁 인사 6)문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고 7)문 대통령이 일신하라는 등으로 구성돼 있다.

청와대 비서실장, 수석, 장관들이 불리하면 거짓말하고, 제 이익만 탐하는 간신배들이라고 비판한다.

진인(塵人, 먼지·티끌 인간)이란 청원문 게시자는 잘못된 인사(人事), 무분별한 증세, 소득주도성장 등 엉터리 정책, 빈손 외교 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으며 한국일보 취재로 39세 인천에 사는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커밍아웃했다. 미네르바처럼 상당 기간 신비전략으로 몸을 숨겼더라면 정말 진인(眞人)의 위력을 떨쳤을 텐데 경솔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시무7조 내용도 탈원전의 잘못, 중국의 2025 같은 성장전략 부재 등 좀 더 넓은 시각은 전개하지 못했다.

30대 평범한 가장으로는 글솜씨나 세상 물정 파악은 뛰어나지만 핵심을 다 짚는 안목은 부족한 점이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역사는 군왕의 업적을 논할 뿐 당대의 지지율은 논하지 않는다. 후대의 평가를 받아라"는 대목은 경탄할 말이다.

미국 역사상 아이젠하워, 레이건은 당대에 무시당하는 수준이었으나 현대의 재평가에서 역대 10위권 내에 드는 대통령들이다. 진인의 말이 옳다.

돼지가 통치하는 숯불공화국은 촛불로 추대받은 문정권을 은유했을진대 "돼지가 먼저다"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두 다리는 나쁘고 네 다리는 좋다"는 표어를 상기시킨다.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파시즘적 통치기술을 통렬하게 패러디했다.

그는 경자년(2020년) 여름 간신이 쥐떼처럼 창궐해 정책은 난무하고 결과는 전무해 백성은 증세(增稅)와 (코로나)병마로 고통을 겪었다고 썼다.

김현미 추미애 노영민을 3인의 역적이라며 파직하여 그 자리에 국토부 장관은 23번 대책을 내고도 효과를 못 보니 3초 만에 잊어먹는 붕어를 시키는 게 낫겠다 하고 추미애 법무장관은 개(犬)로 교체하라고 희롱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추미애 장관은 윤석열 죽이기 인사를 단행해놓고 "가장 공정한 검찰인사를 했으며 ○○사단이란 말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참과 거짓의 경계를 넘은 발언은 법무장관이란 신분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자신의 영역도 아닌 부동산 실패에 대해 "정부 책임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는데 경제학자 77%는 "정부의 공급정책 실패"라고 준엄하게 지적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은 딸 동양대 입학추천서, 아내 정경심 씨의 사모펀드 투자인식 여부에 대해 재판이 진행 중임에도 끊임없이 SNS에 뭔가 민심의 속을 확 뒤집는 소릴 지속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코로나는 중국에 다녀온 한국인이 퍼뜨렸다"는 답변으로 새빨간 거짓말 논쟁을 일으켰다.

중국인이 하루에 수만 명씩 오는데 어디다 유치하느냐는 어린애 같은 말로 국민의 염장을 질렀다. 당시 미국 러시아 대만 베트남은 이미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키던 참이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장례식 이후 이정옥 여가부 장관은 "오거돈 박원순이 권력형 성범죄가 맞느냐"고 국회에서 아무리 여러 번 물어도 답을 안 하고 딴소리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7월 고용통계에서 청년실업률이 25.6%로 사상 최고이고 실업자도 113만8000명으로 역대 최고였음에도 "고용사정이 좋아지고 있다"고 뻘소리를 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고용에 관해 거짓말을 한 홍남기에게 "OECD 경제성장률에서 한국이 1위라니 코로나 시대에 기적적으로 방어했다. 자신감을 갖고 일하라"고 격려해줬다.

이 정도면 가히 거짓말 내각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래서는 국민이 정부를 믿고 따를 수 없다.

국회 가면 야당이 따지지 않을 수 없고, 장관이 순순히 응하지 않고 뻑뻑 우기는 못된 행동을 보이면 싸움판은 커진다.

그런 저질 국회를 유도해 발목 잡는 정당으로 야당을 싸잡아 네이밍해 인기를 얻자는 전략을 짠 것인지 묻고 싶다.

2020년 코로나가 온 나라 경제를 망가뜨려 어려운 참인데 위정자들이 이 모양이니 진인 조은산의 시무7조에서 간신배 장관들을 파면하라는 말이 사이다처럼 통렬한 것이다.

이번 홍수사태에서 장관들의 잘못이 클 것이고 거짓말한 장관도 많을 터인데 문 대통령은 아무 책임도 묻지 않았다.

역사상 김영삼 대통령은 잘못을 저지른 장관은 단칼에 날려버리는 용단을 내린 데는 최고였다. YS였다면 김현미 추미애 노영민을 진인의 읍소 이전에 벌써 몇 번이고 날렸을 것이다.

조은산의 시무7조의 구석구석을 보면 문 대통령에 대한 욕을 심하게 해놨다.

폐하는 4대강을 씹어대고 물어뜯고, 왕돼지 침소에 가보니 금은으로 치장한 비단침소에 구유통에 머리를 처박고 편가르기로 인해 폐하 옥체도 갈라내고 찢어내 육시할 참인가라는 섬뜩한 험담을 했다.

백성과 합쳐 나라를 망친 이로 기록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복수에 눈이 멀고 간신에게 혼을 빼앗겨 적군 아군 구분 못한다고도 썼다.

바로 이런 표현들 때문에 게시판 담당 실무자들이 몰래 숨겨놓으려 했을 것 같은데 이해가 된다.

시무7조 소동을 보면서 청와대 게시판의 존재, 그리고 이런 글이 과연 청원의 대상이 되는지에 관한 원초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청와대 게시판을 왜 만들었는가. 국정운용에서 국민의 불편함, 혹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띄워 빨리 제도화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걸핏하면 "광화문 집회 허가를 내준 판사를 잘라라"는 식이다.

작년 5월에는 국회에서 여당이 선거법 개정, 공수처법 등을 날치기 통과시키자 야당은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는 장외집회를 열자 문빠들은 '한국당 해체하라'는 청원을 게시판에 했다. 그러자 보수 측은 "민주당 해체하라"를 동시에 올렸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동의율이 높은 청원내용은 응급환자가 있는 구급차를 막아세운 택시기사를 처벌해주세요가 73만명으로 1위이고 정부의 교회 정규예배 이외 행사 금지를 취소해주세요 42만명, 추미애 장관 해임을 청원합니다 24만명, 제21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개최를 반대합니다 23만명, 8·15광화문시위 참가자 코로나 확진자는 자비 치료케 하자 28만명, 조은산 상소문 29만명 등의 순이다.

이 가운데 청와대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가? 법무장관이야 대통령이 자르려면 단칼에 가능하겠지만 나머지는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이번 진인 조은산의 시무7조는 장관, 수석들을 간신배로 몰아 아웃시키자는 주관적 주장이고 문 대통령에 대해 씻을 수 없는 험담을 해놓은 내용이다.

건조하게 말한다면 개각을 해달라는 건의문이다. 대통령이 헌법을 잘 지키고 국가운영통치방식을 일신해달라는 것은 진퇴가 아닌 한 불가능한 주문이다.

이런 게 청원게시판 운용의 본질적 성격과 맞는가? 왜 죽어도 청와대는 내키지 않은 이런 청원문을 게시해야 하는가.

나는 그 이유가 조은산의 숯불왕국의 돈왕(豚王)론에 답이 있다고 본다.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상대방을 공격할 격문용으로 청원게시판을 운용해 재미를 보려 한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 3년간 주로 좌파적 관점에서 적폐세력, 친일세력 공격용 창구로 활용해온 측면이 강하다. 이것은 진정한 청원이 아닌 정치공세의 장이다.

청원게시판에 20만건 이상 청원이 올라왔을 터인데 거기서 건진 아이디어로 한국 산업을 부흥했거나 정치 사회적으로 멋진 법안을 탄생시킨 게 있는가.

하나도 없다. 미국 백악관의 위더피플(We the People)이나 영국 독일 핀란드 등이 운영하는 청원게시판은 입법 사법 행정을 엄격히 분리해 게재한다.

차제에 청원게시판 운용을 확 바꾸거나 좌파에 기울어진 이념 선전장이라면 차라리 폐지하는 게 어떨까.

이제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장관들의 자세에 대한 문제다.

우리 헌법 7조는 공무원에 대한 내용을 정하고 있다.

7조 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에 의해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이지만 그에 앞서 헌법은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라고 준엄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을 보면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의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한 장관은 브레이크를 거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된다.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이 북한은 핵을 놓지 않을 거라며 트럼프를 '얼간이'라고 불렀다. 그러고도 몇 달간을 다투다 폼페이오로 경질됐다.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 장관들은 위헌장관들이고 소신이 없으니 진인은 법무장관을 개(犬)로 바꾸자고 번롱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번 시무7조 상소문은 세 가지를 웅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은 장관들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거짓말 장관은 즉시 내쳐야 한다.

둘째, 청와대 청원게시판의 운용원칙을 확고히 하라는 것이다.

청와대가 할 수 없는 사안은 애당초 게재요건에서 배제할 일이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 대통령은 내 편만이 아닌 국민 전체의 대통령 역할을 해달라는 절규다.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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