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사 정원 확대는 인간 본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정책

김현철 홍콩과기대 경제학과·코넬대 정책학과 교수 2020. 9. 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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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홍콩과기대·코넬대 교수

정부는 의사를 연간 400명씩 10년 동안 4000명 늘린다고 한다. 우리나라 의사 수가 OECD 평균에 미달하고 특히 지방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이유다. 또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 10년간 의무 복무할 의대생을 뽑고 공공 의대를 만들겠다고 주장한다.

의료 취약 지역 문제는 심각하다. 치료할 수 있는데 죽는 사람이 서울 강남 지역은 10만명당 30명인데 경북 영양, 강원 양구 같은 지역은 100명에 이른다.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번 정책은 인간 본성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어설픈 정책이다.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린다고 취약 지역 의료 환경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억지로 원치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의사는 그곳에 오래 남을 가능성이 낮다. 열심히 일할 가능성도 낮다. 의사는 성직자가 아니다. 특별한 사명감을 가진 소수가 있지만, 대부분 가족을 부양하는 생활인이다. 지방 의사 전형으로 입학하기 위해 특별한 봉사정신으로 무장했던 10대 고등학생은, 의사로 활동할 때가 되면 더 나은 환경에서 살기 원하는 가족을 둔 보통 생활인이 될 것이다.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시에 자리 잡을 것이다.

전공을 선택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원치 않는 전공을 강제할 수 있을까. 의사가 부족한 전공은 이유가 있다. 보통 그 직에 대한 열망이 강한 사람이 가도 버티기 힘든 곳이다. 수련을 마쳐도 받아줄 병원이 없다. 이들이 인간답게 수련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전문의가 되어서도 그 수련에 맞는 진료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먼저다.

둘째, 의사만 보낸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제대로 일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료 보조 인력과 검사 설비가 동반되어야 한다. 또 중환자일수록 의사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이 팀으로 일한다. 이렇듯 의사뿐 아니라 다양한 투자가 동시에 필요하다.

그럼 취약 지역에서 장기간 일할 수 있는 의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재미 교포 의사이자 경제학자인 스콧 리와 그 동료들은 잠비아 국가 보건 요원을 선발하는 과정에 개입했다. 일부 시군구에서는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보건 요원을 뽑는다’고 선전했다. 나머지는 ‘의사가 될 자리에 지원해서 커리어를 극대화하라’고 선전했다. 그 결과 전자에서는 사회봉사 정신이 강한 사람, 후자에서는 인생에서 성취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선발됐다. 실제로 배치됐을 때 누가 더 일을 잘했을까. 놀랍게도 후자다. 환자를 열심히 돌보고, 응급 의료 상황에 빨리 대처하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백신을 접종하는 등 모든 척도에서 자기 인생 성취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압도했다.

이 연구는 다른 나라에서 하긴 했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더해준다. 사회봉사 정신이 강한 학생을 선발하여 강제로 배치하는 방식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의사들이 취약 지역에 스스로 갈 수 있는 다양한 인센티브를 도입하고, 기피 전공을 지원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면 된다. 그러면 그곳에서 인생의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의사들이 나타날 것이다. 바로 이들이 취약 지역에 오래 남아 변화를 일으킬 사람들이다. 좋은 정책은 인간 본연의 욕망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공공선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의사들이 파업하는 건 단순히 의사 정원 확대에 반대해서가 아니다. 진짜 이유는 장기간 개선되지 않은 의료계 문제 때문이다. 의료 취약 지역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 이 분야에 정부가 책임 있게 재정을 사용하는 걸 보지 못했다.

정부는 실패할 게 자명한 지역 의사 선발이나 공공 의대 계획을 포기해야 한다. 대신 의료 취약 지역과 기피 전공에 대한 장기적 투자 계획을 먼저 세워야 한다. 의료 취약지역은 소위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민간이 들어가지 못한다. 정부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손해를 감소하고 직접 병원을 운영하던지 혹은 민간의 투자에 보조금을 지불하고 수가를 보전하는 것이다. 여기에 국민의 세금이 사용되는데 시장의 효율성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세금을 쓰는 과정에 국민의 이해와 동의가 필요하다.

이번 사태는 협상의 여지가 충분하다. 많은 의사들이 의대 정원 문제에 비교적 유연한 입장이다. 정부가 의사들을 형사고발하는 건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분노한 의사들의 파업동력이 세지고 장기화되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의사들도 강경일변도에서 탈피해야 한다. 아픈 사람들에 대한 치료도 멈추어선 안되고, 국민의 마음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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