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주의에 찌든 콘텐츠".."어떤 의사를 고르시겠습니까?" 의사협회 홍보물 논란

조문희 기자 2020. 9. 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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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한의사협회 산하 기관은 의료정책연구소가 지난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카드뉴스 형식의 게시물 ‘의사파업을 반대하시는 분들만 풀어보세요’의 일부. 의료정책연구소 갈무리


대한의사협회 산하 기관인 의료정책연구소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공의대와 기존 의대 출신 의사를 비교하는 내용의 홍보물을 올렸다가 비판을 받았다. 의료인의 자질과 직결되지 않는 수능 성적을 앞세워 학력에 대한 차별적 시선만 드러냈다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해당 게시물은 2일 오후 수정됐다.

연구소는 지난 1일 SNS에 ‘의사파업을 반대하시는 분들만 풀어보세요’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렸다. ‘2020학년도 의료정책고사 문제지 공공의대 영역’이란 문구가 적힌 해당 게시물은 10장 분량의 카드뉴스에 총 4개의 질문지와 답변을 담았다.

첫 문항은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둘 중 누구를 선택하겠냐”는 질문이었다. 선택지로는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르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라는 두 가지가 제시됐다. 두 번째 문항은 “두 학생 중 나중에 의사가 돼 각각 다른 진단을 내렸다면 다음 중 누구 의견을 따르겠냐”고 물었다. ‘수능 성적으로 합격한 일반의대 학생’과 ‘시민단체장의 추천을 받아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입학한 공공의대 학생’이 선택지로 나왔다.

한 문항은 “폐암 말기로 당장 치료제가 필요한 생명이 위독한 A씨, 생리통 한약을 지어먹으려는 B씨. 건강보험 적용은 누구에게 돼야 할까”라고 질문했다. “환자가 많은 의대 병원에서 수많은 수술을 접하며 수련한 의사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지방 공공의대에서 수술은 거의 접하지 못한 의사 중 누구에게 수술을 받길 원하냐”고 묻는 문항도 있었다.

이 홍보물을 두고 SNS상에서 비판 의견들이 제기됐다. 수능 성적과 의사의 역량을 직접적으로 연관시키는 관점이 부적절한 데다, 학력을 기준으로 한 차별적 시선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엘리트주의에 찌든 콘텐츠를 보니 답이 안 나온다. 공부 잘한 의사가 좋은 의사라는 논리 구조는 어떻게 나오는 건가”, “수능은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지 대학에서 실제 수학한 결과물이 아니지 않나. 의심스러우면 국가고시 기준을 높여서 거르면 되는 것 아닌가” 등 반응을 보였다. 일부 “공공의대 관련 법안의 실제적인 문제들을 잘 전달한다”는 긍정 평가도 있었지만 이 홍보물에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 대다수였다.

게시물 일부는 부정확한 근거를 가져와 논란이 됐다. 이 연구소는 지난달 24일 보건복지부가 게시한 공공의대 관련 카드뉴스를 캡처한 뒤 공공의대 선발 과정에 대해 “(추천제로) 정말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선발이 가능할까요? 공공의대가 ‘현대판 음서제’라 욕먹는 이유입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공공의대 학생 선발은 공정성과 투명성 원칙 하에 통상적인 전형 절차와 동일하게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으며, 구체적인 선발 방식에 대해 “향후 국회 법안 심의를 통해 결정된다”고 밝혔다. 이 외에 한방첩약 급여화를 비판하는 데 여성의 그림과 생리통을 끌어온 것은 성차별적 시선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연구소 측은 이날 통화에서 “우리 입장에선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국민들에게 우리 문제 의식을 알리려고 했다”며 “취지가 뭔지 맥락을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능 성적을 언급한 문항에 대해서는 “의사가 되려면 최소한 수능처럼 점수·객관적 팩트로 검증되는 걸 기초로 허들을 만들어놔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라고 말했다. 연구소 측은 “정부가 한방 급여화를 추진하며 3개 질병을 시범 대상으로 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생리통이라 문항에 넣었을 뿐”이라며 “한방이 과학적·의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려 했을 뿐, 여성에 관한 특별한 의도는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논란이 이어지자 연구소 측은 “의대증원 및 공공의대 문제에 대해 쉽게 풀어 쓰고자 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표현으로 불쾌감을 드린 것, 사과 드린다”며 게시물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수정은 첫번째 문항에 대해서만 이뤄졌다. 기존 “매년 전교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란 선택지는 “정당한 경쟁과 입시 전형을 통해 꿈꾸던 의대에 진학한 의사”라는 문구로, “성적은 한참 모자르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는 “선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시민단체 추천으로 공공의대에 진학한 의사”로 바뀌었다.

수정된 게시물에도 “단어 좀 바꾼다고 대중들이 다르게 읽어줄 거라고 생각들 하신 건가”, “왜 이런 ‘선택지’만 제시하는 건가” 등 비판적 시선의 댓글이 달렸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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