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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일본어 이해했나요" 답변 대신 모욕감 준 日 모테기 외무상

고은경 입력 2020.09.02. 20:00 수정 2020.09.02.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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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기자 질문에 답변 대신 "일본어 이해했냐"
"외국인에 대해 차별의식 은연중 나타났다"지적도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

'포스트 아베'로까지 거론됐던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이 최근 외국인 기자에 대해 차별을 했다는 비판이 일본 내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고 일본 마이니치 신문 등이 1일 보도했다.

문제가 된 사건은 지난달 28일 장기 체류비자(재류 자격)를 가진 외국인에 대한 출입국 규제 완화를 앞두고 실시된 모테기 외무상의 기자회견 장에서 벌어졌다. 영자지 재팬타임스의 오스미 마그달레나 기자는 모테기 외무상에게 재류 자격이 있는 외국인에 대한 입국 완화 방향성과 당초 입국 규제를 결정했던 과학적 근거에 관해 질문했다.

일본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그동안 장기 체류비자를 가진 외국인에 대해서도 일단 출국하면 출산 등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재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1일부터 이를 완화해 적용하고 있다.

모테기 외무상은 "재류 자격이 있는 외국인의 재입국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최종 조정을 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처럼 일본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과학적 근거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았다.

기자가 다시 과학적 근거에 대해 묻자 모테기 외무상은 갑자기 "What do you mean by scientific?(과학적이라는 건 무슨 뜻이죠?)"라고 영어로 되물은 것.

당황한 기자는 "일본어도 괜찮다. 그렇게 바보 취급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항의했고, 이에 모테기 외무상은 "무시하지 않는다. 바보 취급하지 않는다. 전혀 바보 취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기자는 "일본어로 이야기 하고 있으니 일본어로 대답해달라"며 "재류 자격이 있는 외국인들에 대해 당초 입국 규제를 한 과학적 근거가 무엇이냐고"고 재차 물었다. 이에 대해 모테기 외무상은 "출입국 관리의 문제이기 때문에 출입국 관리청에 문의해달라"며 "일본어를 이해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정작 과학적 근거는 끝까지 함구했다.


日 언론과 누리꾼 "외국인에 대한 차별" 비판 목소리

오스미 마그달레나 재팬타임스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모테기 외무상의 발언을 지적한 기사들을 공유해 올렸다. 오스미 마그달레나 트위터 캡처

단순 해프닝으로도 볼 수 있지만 일본 언론과 누리꾼들은 모테기 외무상의 태도와 그 배경을 비판하고 있다. 일본 사회가 외국인에 대해 갖고 있는 차별의식이 은연중 나타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이민문화, 이민사정을 전하는 웹 매거진 '닛폰 복잡 기행'의 모치즈키 히로키(望月優大) 편집장은 2일 포털사이트 야후에 기고를 통해 두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모치즈키 편집장은 먼저 모테기 외무상이 결국 질문에 대해 답하지 않고 넘어갔다는 점을 언급했다. 관심을 기자의 언어 문제로 돌리면서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비켜갔다는 것이다. 그는 "대답하지 않는 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기자의 문제처럼 보이게끔 초점을 바꿨다"고 비판했다.

모치즈키 편집장은 이어 "일본국적이 없는 주민에 대해서만 엄격하게 규제를 가해왔던 것인데 이에 대한 근거가 없다면 일본 정부가 이들을 차별하고 있다는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렇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나 논리를 대는 건 매우 중요하다"며 "재류 자격이 있는 외국인에 대한 재입국 규제는 근거가 없었던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두 번째로 "정부정책에도 나타난 외국인에 대한 경시와 이번 기자에 대한 모테기 외무상의 모욕적 행동이 완벽히 일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 정부의 정책이 일본 국적을 갖고 있지 않은 시민을 경시하고 있다는 걸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오히려 눈앞의 기자를 모욕함으로써 결국 감췄던 속내가 드러난 게 아닐까"라고 분석했다.

버즈피드 재팬 역시 이번 사태와 관련 일본 내 외국인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감정에 대해 보도하며 일본 법무성의 2016년 관련 조사 결과를 언급했다. 결과에 따르면 일본에 사는 외국인이나 외국 출신자 4명 중 1명은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괴롭힘을 받았다고 대답했다.

또 최근 5년 동안 일본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모욕당하는 등 차별적인 말을 들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29.8%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아가 "어차피 일본어를 모른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 있다"는 응답도 나왔다.

버즈피드 재팬은 "모테기 외무상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는 불분명하다"면서도 "그 배경에 일본 사회 내 (외국인에 대한) 잠재된 차별의식이 있었다면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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