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 1 대 1 맞교환' 이후..녹색·파랑 재사용 시스템 깨지나

김한솔 기자 2020. 9. 2. 20: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롯데칠성의 ‘처음처럼’ 등 현재 판매되는 소주들은 제조사와 관계없이 대체로 ‘녹색병’에 담겨 있다. 이는 11년 전 환경부와 소주업체들이 소주병 재사용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녹색병을 ‘표준용기’로 사용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런데 최근 소주업체들이 표준용기가 아닌 병도 ‘1 대 1 맞교환’하기로 하고, 이를 선별하는 데 따른 수수료 금액까지 공식적으로 합의하면서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10여년간 지속된 ‘녹색병 협약’은 왜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금 간 ‘녹색병’ 협약

‘소주병 공용화 자율협약’
이형병 인기 끌며 ‘삐걱’
소주병 1:1 맞교환으로 중재

2009년 6월 환경부와 10개 소주업체는 360㎖ 용량의 소주병을 동일한 색상·형태의 표준용기로 제작해 사용하는 데 합의했다. 표준용기를 만들면 여러 종류의 소주병 중 자사 소주병을 굳이 선별, 회수하는 데 드는 비용이 줄어, 결과적으로 한 번 쓴 병을 재사용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당시 환경부도 이 협약의 취지를 “생산비용 절감 및 자원순환성 향상이라는 윈-윈 전략”으로 설명했다. 국내 대표 소주업체인 하이트진로(당시 (주)진로)와 롯데칠성도 이 협약의 당사자다. 이 협약은 2010년 3월부터 최근까지 별 탈 없이 지속돼 왔다.

문제는 지난해 4월 하이트진로가 출시한 ‘진로이즈백’이 큰 인기를 끌며 시작됐다. 푸른빛이 도는 투명한 색상을 띤 진로이즈백의 병은 ‘비표준용기(이형병)’이다. 이형병에 담긴 진로이즈백은 출시된 지 몇달 만에 1000만병 이상을 판매하며 인기를 끌었다. 그만큼 시장에서 비표준용기 비율도 늘어갔다. 2일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97.3%, 2019년 93.9%였던 소주병 표준용기 비율은 진로이즈백 출고량이 증가하면서 올해 7월 기준 약 83.3%로 떨어졌다.

비표준용기가 늘어나며 이를 선별, 회수하는 비용이 증가하자 롯데칠성은 자사에 수거된 진로이즈백 병을 하이트진로에 돌려주지 않고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하이트진로는 이미 진로이즈백 전에도 비표준용기들이 시장에 유통되고 있었다고 반박했지만, 두 업체 간 갈등은 한동안 지속됐다. 결국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가 중재자로 나서 이형병 처리에 관한 연구용역에 착수했고, 그 결과가 지난 7월22일 나왔다. ‘소주병을 일대일로 맞교환하되, 수량이 맞지 않아 발생하는 수수료는 병당 17.2원으로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하이트진로가 ‘처음처럼’을 100병, 롯데가 ‘진로이즈백’을 120병 수거했을 경우 100병은 서로 일대일 맞교환을 한다. 나머지 20병은 하이트진로가 병당 17.2원을 롯데에 지불한 뒤 회수하게 된다.

■재사용 시스템 붕괴의 시작점 우려

환경단체, 시스템 붕괴 우려
“선별 부담…재사용에 문제
환경부, 무너진 질서 책임을”

공용병 협약의 목적은 ‘재사용’이다. 그렇다면 이형병이라도 재사용만 가능하면 되는 것 아닐까. 하이트진로는 “상반기 진로병의 평균 회수율은 95%, 재사용률도 83%가량으로, 2017년 환경부의 공병 회수율 95%, 재사용률 85%와 유사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형병이어도 재사용률이 높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이번 합의가 10년 넘게 지속되며 안정화된 공용병 재사용 시스템 자체를 흔드는 ‘시작점’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진로이즈백’ 하나의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사실 이번처럼 공식화되진 않았지만, 업계 내부에선 ‘진로이즈백’이 출시되기 전에도 이형병을 10.5원의 수수료와 함께 1 대 1 맞교환해 왔다. 그러나 이런 식의 합의가 계속된다면, 업체는 앞으로 굳이 공용병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업체마다 마케팅에 유리한, 원하는 모양의 이형병을 팔고, 나중에 맞교환하면 그만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병 모양이 다양해지면 그걸 중간에 선별하는 데 부하가 많이 걸린다. 한두 해는 재사용이 잘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 이것을 시작으로 이형병들이 계속 나오면 결국 재사용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은 “환경부는 무너진 질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환경부가 이번 문제에 대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환경부는 일단 이형병 재사용률을 분석할 계획이다. 김효정 자원재활용과장은 “비표준용기 출고량이 늘어난 것은 사실인데, 재사용률이 얼마나 떨어졌는지는 분석을 해보려고 한다. 그것에 따라서 정책을 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