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2년전 국립의료원장에 낯선 이름..'의사의 난' 그때 예고됐다

안혜리 입력 2020.09.03. 00:23 수정 2020.09.0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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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이 '조민' 뽑는 공공의대"
2018년 대통령 측근 정기현 작품
정, 문 지지 더불어포럼 대표 출신
"장기집권 노림수" vs "사실 아니야"


의사 집단반발 불러온 공공의대 배경엔 대통령 측근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코로나19 점검을 이유로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했다. 이후 지난 달에도 다시 찾았다.

2017년 말. 신임 국립중앙의료원(NMC) 원장직에 모두 8명이 공모했는데 낯선 이름이 1순위로 지명돼 의료계를 놀라게 했다. 통상 유명 의대 교수가 맡아오던 자리를 결국 차지한 건 정기현 순천 현대여성아동병원장이었다. 지방 소아과 의사가 어떻게 한국의 감염병 대응 핵심기관인 NMC 원장에 임명됐을까.

심사를 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00점 만점을 준 게 컸다. 임명 당시 문 대통령뿐 아니라 여권의 유력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풍문이 돌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NMC 원장이 대단한 요직이 아닌 데다 인사청문회도 필요 없는 자리이다 보니 그냥 그렇게 잊혔다.

2018년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정 원장의 “캠코더 낙하산”을 문제 삼았던 박인숙 전 의원(미래통합당)의 표현대로 “지금 돌이켜보니 대통령 측근에게 그냥 아무거나 한자리 준 게 아니라 이 정부는 처음부터 다 계획이 있었다”는 게 이제야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지금의 ‘의사의 난(亂)’을 촉발한 공공의대 정책과 정 원장의 NMC 원장 임명, 전혀 무관한 듯 보이는 이 두 점을 연결해야 이 정부의 공공의대 정책의 한 축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점을 연결해 봤다.

‘의료사회주의자’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김용익 라인’(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출신)이 문재인 정부의 의료정책 전반을 좌지우지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어느 자리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의료계도 정확히 모른다. 코로나19 방역을 둘러싸고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대립각을 세우는 과정에서 의료관리학 교실을 만든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의 제자인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서울대 의료관리학 부교수)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뿐이다.

정기현 국립중앙의료 원장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4년 전남지사에 당선되자마자 인수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6년 이 지사가 정 원장 병원을 방문했을 당시 모습. [사진 전남도]

교수진의 전공의 파업 지지 성명을 비롯해 각 의대 전임의의 사직서 제출과 전국 본과 4학년의 국가고시 거부, 의대생의 동맹 휴학 등 지위·나이를 가리지 않는 초유의 이번 ‘의사의 난’ 배경에도 김용익에서 김창엽·김윤 교수로 이어지는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실의 입김이 작용했으리라는 막연한 추측만 나온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교수(의협 과학검증위원장)는 “서남의대 폐교를 겪으면서 의료계는 물론 복지부도 ‘의대는 함부로 만들면 안 된다’는 컨센서스가 있었다”며 “이번 사태는 정부가 직접 조종할 수 있는 의대가 필요하다는 김용익 사단의 오랜 신념에다 확실한 지역표를 통해 장기 집권을 꾀하는 집권당의 노림수가 결합해 나온 결과”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1일 “공공의대 설립 정책을 철회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권 때문이냐”고 문제 제기한 것처럼 이번 사태는 단순히 신념과 정치 구도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공의대와 관련, 주목해야 할 사람이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NMC) 원장이다. 2012년 대선은 물론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모임인 더불어포럼 공동대표를 맡았던 문 대통령 측근이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2014년 전남지사에 당선됐을 때 인수위에 이름을 올렸던 인물이다.

정 원장은 전북의대 출신으로 원장 취임 직전까지 순천에서만 소아과 진료를 봤지만,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실에서 석사를 마쳐 김용익 사단으로 꼽힌다. ‘의사의 난’을 촉발한 지난 7월 당정 협동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은 지난 2017~18년 정 원장이 순천 현대여성아동병원장 시절 위원장을 맡았던 민관 합동 ‘공공보건의료 발전위원회’가 내놓은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과 거의 똑같다. 예컨대 복지부 산하에 국립공공의료대학원(공공의대)을 설립하고, 학생은 시·도별로 미래 공공의료 인재에 적합한 별도의 평가체계로 지역 전문가를 포함한 선발위원회를 구성해 선발하는데, 국립중앙의료원(NMC)을 교육(수련)병원으로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필수 공공보건의료인력은 공중보건장학제도를 통해 시·도지사 추천으로 선발한다는 것도 최근의 당정협의안과 유사하다.

지난 2018년 10월 1일 보건복지부는 이번에 내놓은 공공의료 정책과 거의 똑같은 정책을 발표 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맨 오른쪽) 옆으로 정기현, 임준, 김윤 교수 얼굴이 보인다. [뉴시스]

이 안대로라면 최근 논란이 된 것처럼 의대생을 교수 인력 외 다른 사람이 성적 외에 다른 잣대로 뽑는 것은 물론이고, NMC 원장이 사실상 수백 명의 신설 의대 교수 선발권을 쥐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쉽게 말해 조국 전 장관과 같은 이 정권과 가까운 인사는 논문 1저자 품앗이나 표창장 위조 없이도 자녀를 의대에 보내고, 이후 공공의대를 나오면 서울에 있는 NMC를 오가며 교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NMC는 수련병원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인근 미군 공병단 부지에 병원 신축이전을 준비 중이다)

‘의사의 난’ 일지

정 원장은 김윤 서울의대 교수와 임준 서울시립대 교수(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센터장) 등 김용익 라인과 함께 이 안을 만들던 2018년 1월 NMC 원장이 됐다. 이재갑 한림의대 교수는 “정부가 정 원장에게 ‘NMC를 공공의료 허브로 만들라’는 미션을 줬다는 얘기가 당시 나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NMC 상황을 잘 아는 한 현직 의사는 “의대와 병원 설립 권한을 NMC 원장에게 몰아준다는 의미로, 의대 교수 선발 권한 등을 감안하면 좌파 정권에 대대손손 왕국을 선물로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 원장의 임기는 2021년 1월이지만 의료계에선 벌써 연임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공공의대와 NMC수련병원, 그러니까 사람과 돈을 움직이는 자리를 정 원장이 다 관여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추산하는 공공의대 건축비는 271억원, 연간 운영비만도 100억원이다. 목포든 순천이든 공공의대 유치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는 전남도는 “의대 설립에 1000억원, 병원 설립에 3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면서 의대는 전액 국비, 병원은 30% 국비와 70%의 지방비로 마련한다는 안까지 내놨다. 정 원장은 이런 소문을 묻자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 “2018년 공공의대 정책을 내놓을 당시 그림만 그리고 실행은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정부도 큰 의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18년엔 야당 반대로 국회 복지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박인숙 의원은 아예 의대 설립 이전에 엄격한 평가와 인증을 의무화하는 ‘공공의대 설립 저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의사들이 파업까지 하며 저지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여당의 총선 압승 후 당정청은 의료계와 협의 없이 공공의대를 비롯해 의대 정원 증원과 첩약 문제, 원격의료까지 더해 의료계를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전공의 1만여 명이 사직서를 내고 지난달 21일 파업에 돌입하자 복지부는 의사 집단 휴진 수사는 각 지방경찰청이 직접 지휘한다고 압박하면서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고, 이에 불응한 전공의 10명을 고발하기까지 했다. 의대생 90%가 국시 응시를 취소했지만 시험 전날까지 시험 강행을 외쳤다. 교수들이 채점을 거부하자 군의관까지 동원해 채점하려다 결국 슬그머니 의료계에 양보하는 척 일주일을 미뤘다.

해결의 열쇠를 쥔 문 대통령은 “코로나 상황이 급박하기 때문에 정부의 입장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다”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잊지 말라”고 의료계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데 이어 2일엔 “코로나 헌신은 (의사가 아닌) 간호사”라며 노골적으로 간호사와 의사 편 가르기에 나섰다. 이번 파업 사태는 이런 배경에서 진행 중이다.

■ 정기현 원장 “대통령 낙하산? 난 할 생각도 없었다”

「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시중에 떠도는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낙하산 논란에 대해 “난 할 생각도 없었는데 누가 제안을 했다”며 그 인물이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의 친분을 묻자 “2012년 대선 당시 호남 지지율이 바닥일 때 잘 아는 후배가 도와달라고 한 게 이어져 2017년 대선 당시 더불어포럼에도 이름을 올렸을 뿐”이라고 했다.

김정숙 여사와 더 가깝다는 소문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인연은 이렇게 설명했다. “2014년 전남지사 당선 후 보건복지여성 파트 인수위원을 찾다가 나를 찾아온 것”이라며 “내가 섬 보건의료 체계 등 기발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다보니 함께 일을 많이 하게 됐다”고 했다.

공공의대 학생 선발을 시민단체가 한다는 논란에 대해선 “대단히 왜곡됐다”면서도 “기존 의료인력 선발과는 달라야 한다”고 했다. 공공의대 등과 관련한 의료계의 반발에 대해선 “의료인력에 대한 정책이지 의료인이 정하는 정책은 아니다”며 의료계의 협의 요구를 간접적으로 반대했다. 또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수단이 의료수가뿐이라 한계가 있으니 민간병원을 공익의료법인으로 전환해 지원하는 등의 공공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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