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미국의 '쿼드 공식화' 구상..나토 같은 안보동맹?

김혜영 기자 2020. 9. 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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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건이 작심하고 띄운 '쿼드(Quad) 공식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최근 공식석상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내놓았습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핵심으로 꼽히는,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자 안보대화체인 '쿼드(Quad)'를 마치 유럽의 나토(NATO)처럼 다자 안보동맹으로 공식 기구화하겠단 의지를 밝힌 건데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차기 행정부에서라도 한국과 베트남, 뉴질랜드 등 3국까지 포함한 '쿼드 플러스'도 출범시켰으면 하는 속내를 내비쳤습니다.

이런 비건 부장관의 메시지는 지난달 31일 '미국-인도 전략동반자 포럼' 화상회의에서 리처드 버마 전 인도주재 미국대사과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먼저 비건의 발언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Q. (리처드 버마) 쿼드의 군사적, 정치적 의미는? 앞으로 얼마나 중요한가?
A. (비건) 쿼드는 미국, 인도, 호주, 일본으로, (역내) 민주주의 국가를 대표하는 4개국이다. 이들 국가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안보의 혜택을 지역 전체에 확대하려는 책임감과 의지도 공유하고 있다. 쿼드는 배타적 기구가 아니다. 역내 다른 국가도 기구 공식화 논의에 참여할 이유가 많다. (미국 주재 컨퍼런스 콜에서 쿼드 4개국 외 한국, 베트남, 뉴질랜드도 참여한 걸 소개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우리 이해관계 조합을 발전시키는데 최선을 다할 국가들의 자연스러운 집단을 봐야한다.

Q. 쿼드 플러스를 공식화하려는 시도가 있나? 쿼드 확대·공식화가 중국 겨냥한 것 아닌가?
A.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이익과 가치를 반영하는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건 그 어떤 (미국) 대통령에게도 커다란 성과가 될 거다. 미국 관점에선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우리가 여기서 이것을(쿼드 플러스) 만드는 것엔 조금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속도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인도·태평양 지역은 실제 강력한 다자 구조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들은 나토나 유럽연합 같은 강인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어느 시점이 되면, 이것(쿼드 플러스)처럼, 구조를 공식화하자는 제안이 확실히 있을 거다.

중국의 위협이나, 잠재적 도전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긍정적인 의제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의 목적은 공유된 가치와 이익을 중심으로 인도·태평양 지역, 더 나아가 전세계 더 많은 나라들을 모이게 하는 것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PP가 그런 이니셔티브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TPP는 너무 큰 야욕으로 무너졌기 때문에 신중하고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쿼드부터 시작해서, 4개국만으로 시작하는 게 매우 중요한 출발일 수 있다. 그리고 이건 트럼프 2기 행정부든, 아니면 차기 대통령의 첫 행정부든,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걸 오로지 중국을 억제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만 규정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할 거다. 난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쿼드 확대·공식화를) 너무 야심차게 하지 않도록 조심할 거다. 나토 조차도 비교적 작은 기대에서 출발했고, 많은 나라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나토 회원국보다 중립을 선택했다. 나토 동맹은 현재 27개 회원국인데, 시작은 12개 회원국에 불과했다. 작게 시작해서 회원국을 늘려갈 수 있다.


위 내용처럼, 비건 부장관은 일단 "쿼드부터 시작해서, 4개국만으로 시작"하길 희망합니다. 나토도 과거 작은 규모로 시작해서 회원국을 늘렸다며, '나토' 같은 안보동맹을 만들어가겠단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또, 이런 구상의 목적에 대해 "중국의 위협이나, 잠재적 도전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했습니다. 즉, '반중국 의도'만으로 뭉친 나토 같은 안보동맹은 아닐 거라면서도 사실상 중국 견제 의도를 숨기지 않은 겁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센터장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기저에 깔린 미국의 인식, 반중국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너무도 명확히 보여줬다"고 했습니다.

쿼드 확대 대상국으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우리 이해관계 조합을 발전시키는데 최선을 다할 국가들의 자연스러운 집단"이라며 한국, 베트남, 뉴질랜드를 꼽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가 같은 속도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먼저 쿼드 4개국부터 공식화한 뒤 시간을 두고 한국, 베트남, 뉴질랜드를 설득해나가겠단 뜻을 밝힌 겁니다.

● 미국의 '강한 의지'…당장 실현될 가능성은?

전문가들은 비건 부장관의 발언이 미·중 갈등 속 사실상 줄세우기를 압박하는 메시지였다는 데 이견이 없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국 입장에선 확실히 인도 태평양 전략에 참여한 동맹국과 그렇지 않은 동맹국을 가르겠다는 그 메시지가 발신된 거라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비건 부장관은 이번에 쿼드에 이어 쿼드 플러스까지 언급해 이를 실체화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올해 가을 쿼드 4개국 각료 회의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데, 이때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다만, 쿼드가 '당장' 나토처럼 공식 기구화되고, 더 나아가 쿼드 플러스로 확대될 가능성에는 신중한 전망이 많았습니다. 다른 회원국들도 지금 이 시점에, 미국의 의도하는 방향대로 힘을 실어줄 지 아직은 불투명하다는 겁니다. 최근 호주가 미국·인도 주도로 1992년 시작돼, 일본도 2015년부터 참여하고 있는 말라바르 합동 해상훈련에 초청되고, 특히 핵심 변수인 인도는 지난 6월 히말라야 국경지역 유혈충돌 이후 급격히 반중 기조로 돌아서는 건 사실입니다. 다만, 그 기조가 쿼드 4개국 각료 회의에서도 이어질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특히 인도의 경우, 미국과의 군사훈련에 적극 참여하면서도 정작 쿼드를 통한 군사동맹 체결은 꺼려왔고, 남아시아 역내 균형자 역할을 유지하려 해왔다는 점이 그 근거로 제시됐습니다.

우정엽 센터장은 "비동맹주의의 선봉 같은 국가인 인도가 지금 미국과 가깝게 지내는 이유는 중국의 부상에 맞선 현실적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인도의 비동맹주의를 넘어서는 수준의 (쿼드) 협력이 가능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원곤 교수도 "인도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굉장히 다른 해석을 하고 있었다. 모디 총리도 중국을 견제하는 거면 관심이 없다고 여러 번 얘기해왔다. 이는 호주도 약간 비슷한 입장"이라며 "(미국이) 쿼드를 얘기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이 무엇을 해나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 "한국, 선택의 딜레마…전략 대비해야"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한국이 '쿼드 플러스'라는 선택의 딜레마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비건 부장관의 말처럼 '쿼드의 나토화'는 미 차기 대통령의 커다란 성과가 될 수 있는 매력적인 의제이자, 또 마음만 먹으면 '미국 관점에선 쉽게 추진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둘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 사안을 이름만 달리 씌워 얼마든지 추진할 수 있단 얘기입니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도 미 대선까지 한국의 결정이 사실상 유보될 수는 있지만, 안심하고 내려놓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우려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 체제, 민주주의, 인권에 있어 원칙 싸움을 더 많이 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트럼프보다 '신냉전'에 가까워질 수 있다"며 세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박원곤 교수도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다면, 트럼프 행정부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반중' 다자체제 구축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박 교수는 "우리로선 둘 다 어려운 상황일테지만, 바이든 행정부 정책이 확실한 규범에 맞게 중국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면 그 땐 오히려 우리가 '명분'을 찾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혜영 기자kh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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