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먹는데 배달수수료 왜 올릴까? 배달대행업체들의 속내는

민서연 기자 2020. 9. 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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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중개업체가 대행사 역할하면서 기존 배달대행업체 입지 위축
"배달료 3000원, 2018년에 책정된 것… 배달 시장 불균형 개선해야"

배달대행업체의 지역 지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최근 배달대행업체 본사와 계약을 해지했다. 얼마 전 배달대행업체의 본사에서 배달 수수료를 동결하겠다고 한 발표가 현장 상황과 맞지 않아 지점장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수많은 배달대행업체 지점장들이 영업 유지를 위해 수수료를 500원이라도 올릴지 고민하지만, 조금만 올려도 시장에서 '나쁜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배달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 따르면 지난달 29~30일 주문 건수는 전주 같은 요일(22~23일) 대비 8.8% 늘어났다. 배달대행업체도 바빠졌다. 배달대행업체 바로고의 지난달 30일 배달 접수 건수는 57만5000건으로 7월 마지막 주 일요일보다 25.8%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늘어난 배달 수요로 배달 시장 종사자들이 모두 떼돈을 벌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지만, 배달대행업체들의 상황은 다르다. 배달대행업체 본사와 계약을 맺고 각 지역에서 배달 서비스를 담당하는 지점들은 배달원(라이더) 수급이 어려워 배달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에 국내 배달대행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하는 대행업체 생각대로의 노원·동대문·서초 등 지사들은 라이더를 잡기 위해 수수료를 올리기도 했다.

국내 배달산업의 구조를 보면 소비자가 주문한 음식은 소비자-배달어플-일반음식점-배달중개사·배달대행업체-라이더-소비자 순으로 전달된다. 최근 수수료 인상으로 지탄을 받은 업체들은 일반음식점과 라이더를 연결하는 배달대행업체들이다. 이 업체들은 본사와 계약을 맺은 전국의 지사(허브·스테이션)들이다. 본사에 비용을 지불하고 주문수급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본사로 들어오는 주문이 지사로 할당되는 형태다.

각 지점들은 지점에 들어오는 주문량과 지점이 가지고 있는 라이더 공급량에 따라 적정 수수료를 책정한다. 음식점에서 지불한 수수료는 라이더와 지점으로 배분된다. 예컨대 지점이 음식점과 건당 3000원에 배달 계약을 맺으면 2600원에서 2700원 정도가 라이더 수익으로 배분되고 지점은 300원에서 400원 정도를 가져간다. 음식점은 가게로 직접 들어오지 않는 주문을 배달대행업체를 통해 공급받고, 업체에서 진행하는 프로모션 혜택 등을 받게 된다.

배달 앱 도입 초기에는 소비자가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고, 해당 음식점과 계약된 배달대행업체들을 통해 소비자에게 음식이 전달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배달시장이 커지자 배달앱들이 직접 배달중개에 나섰다. 배달의민족이 도입한 배민라이더스와 요기요의 요기요플러스가 이에 속한다. 배달 수요가 점점 늘면서 일반인들을 활용해 근거리 배달 대행을 진행하는 배민커넥트 등의 모델이 생겨나기도 했다.

배달대행업체의 지점장들은 지난해 5월 들어온 쿠팡이츠로 인한 타격이 가장 컸다고 했다. 쿠팡이츠는 건당 수수료 1만5000원을 라이더에게 지급한다. 음식점은 5000원 정도를 수수료로 부담하고, 쿠팡 본사가 1만원을 지원해 라이더에게 1만5000원을 지급하는 구조다.

이런 전략으로 쿠팡이츠는 서울과 경기 일부지역 라이더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이에 배달의민족은 배민라이더스 신규 배달원 1명당 최대 100만원의 프로모션 비용을 지급하고, 요기요는 신규 배달원에 최대 200만원의 보너스를 지급하는 식으로 맞섰다.

배달 앱 간의 수수료 전쟁에도 배달대행업체 지사들은 2018년도에 책정된 3000원대의 배달 수수료를 유지해왔다. 한국 사회에서는 '배달은 당연한 것, 싸야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쉽게 올렸다가 시장에서 퇴출될까 우려됐기 때문이다. 또 일의 특성상 동네에서 마주치는 가맹점 사장들과 동네 라이더 청년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 상점주에게 부담을 지우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더들은 수수료를 많이 주는 곳으로 빠져나갔고, 전국에 지점을 둔 기존 배달대행업체들은 라이더 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이렇다 보니 배달 시간이 지연됐고, 가맹 상점의 피해로 이어졌다.

배달대행업체 지점장들은 배달 수요 증가로 라이더들의 사고가 빈번해지고 각 지사들이 부담해야 할 보험료도 매년 상승한 사실을 고려하면, 현재의 수수료는 라이더와 상점주, 배달대행업체 모두에게 터무니없이 적다고 입을 모은다.

김씨는 "지사에서 배달 수수료 올린다는 기사가 나간 후 댓글에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말도 보이던데 차라리 제소해줬으면 좋겠다"며 "현 배달 시장 구조가 얼마나 불균형하게 형성됐는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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