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선] 386 민주화운동 자녀에게 대입 특혜 준다고?

안혜리 2020. 9. 4.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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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고대·이대 등에 전형 존재
조국식 학벌 세습 단면 드러내
공정 버린 민주화 팔이 언제까지
안혜리 논설위원

“586 정치엘리트들이 기득권 세력이 된 지는 좀 되었고, 지금은 이 기득권 세력의 세대 재생산 단계.”

지금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조국 흑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내놓은 현 집권세력에 대한 진단이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이 책에서 “조국이 자녀 입시에서 그렇게 무리를 한 것은 교육을 통해 자신의 학벌과 노동시장의 지위를 세습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했다. 쉽게 풀어쓰자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같은 세력이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된 지는 이미 오래됐고, 이제 그가 누리고 있는 특권을 고스란히 그의 자식에게 물려주는 단계라는 얘기다. 지난 1~2년 동안 온 국민이 이미 생생하게 목격한 바다.

그런데 외견상으론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최근 맘카페를 뜨겁게 달군 ‘연세대의 민주화운동 자녀 특혜 논란’ 역시 이런 386 운동권들의 특권 세습이라는 맥락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설마 했는데 연세대 민주화운동자 자녀 전형 진짜 있어요. 의예, 치예, 약학 다 가능.’ 언제부터인지 대입 사이트와 각종 커뮤니티엔 이런 류의 글이 속속 올라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연세대의 2022학년도(현 고2 대상) 입시전형이 일부 와전된 것으로 이 학교 의대, 치대, 약대 입시에선 민주화운동 관련자 자녀를 위한 특별 전형 정원이 없다. 재밌는 건 이 해프닝을 통해 연세대를 비롯해 고려대와 이화여대 등 국내 여러 사립 명문대들이 비록 의·치대는 아니지만 다른 전공에선 특별전형 형식으로 386 운동권 자녀들을 이미 배려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알려졌다는 점이다.

가령 10여 년 전부터 민주화운동 자녀 특별전형을 둬온 연세대는 2022학년도 입시부터는 아예 수시 학생부종합 기회균형 전형의 모집인원을 80명에서 110명으로 30명 더 늘린다. 늘어난 정원(기회균형 II)은 민주화운동 자녀와 다문화 자녀, 장애인 부모 자녀, 벽·오지 근무경력 있는 선교사 자녀만 따로(※보훈대상자와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은 기회균형 I)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수능 점수 없이 서류평가와 면접평가를 통해 선발한다.

여기서 말하는 민주화운동이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민주화운동 관련자 증서’ 제출 가능자다. 5·18 유공자와는 전혀 다른 종류다. 무슨 증서인가 싶어 검색 포털에 스스로 인증한 몇몇 사례를 찾아봤다.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활동자금을 마련하겠다며 대기업 회장 집을 털다 현행범으로 잡혀 실형을 받았던 사람, 시위하다 집시법으로 2년 집행유예 받은 사람, 민간기업에서 불법 파업하다 해고된 사람 등 대체로 386 운동권들이다. 주로 노무현 정부 시절에 명예회복을 시켜준다며 신청을 받아 증서를 발급해줬다. 이 증서가 소문처럼 의대, 치대, 약대는 아닐지라도, 그리고 그 수가 알려진 것처럼 그리 많지 않더라도 어쨌든 그들 자녀의 명문대 입시에 특혜로 작용해온 건 분명한 사실이다.

연세대는 최근 민주화운동 전형과 관련해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달 28일 “교육부의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따른 것으로 민주화운동 전형은 없다”는 해명을 내놨다. 교육부가 2019년 사회통합전형 선발을 10% 이상 의무화했기에 해당 모집인원을 늘렸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뭔가 찜찜하다. 언어장벽이 예상되는 다문화 자녀나 기독교 학교가 정규교육의 혜택에서 상당 기간 소외된 벽·오지 선교사 자녀를 배려하는 건 수긍이 간다. 하지만 30~40년 전에 돌 좀 던졌다고 대체 왜 그 자녀까지 대입에서 배려를 받아야 하나.

물론 대다수 국민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정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공공의대 학생 선발과 관련한 공정성 논란에서도 확인됐듯이, 내편 네편 갈라서 내편이면 의대생을 시·도지사가 추천하거나 시민단체에 선발권을 주는 등의 무리를 해서라도 특혜를 주고, 네편이면 최소한의 공정성은커녕 불이익도 줄 수 있다는 이 정권의 작동방식이 투영된 것이라는 걸. 그러니 이 정권 기득권 세력에 속하지 못한 학부모들로선 과장된 의혹까지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내 아이를 공공의대 보내려면 어느 시민단체에 가입해야 하느냐”며 불안해하는 것이다.

긴 말 필요 없다. 정부 정책에 반발하는 의사를 윽박지르는 것으로는 모자라, “코로나 헌신은 의사가 아닌 간호사”라는 거짓정보까지 공식 SNS 계정에 올리는 식으로 내편 네편을 확실히 갈라치기 하며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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