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알아서 쓰라"는 동부지검장

박국희 기자 2020. 9. 4.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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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희 사회부 기자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과 관련, 당시 군 관계자가 “추 장관 보좌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검찰에 진술했다는 사실이 1일 알려지자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은 “그런 진술은 없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추 장관 역시 “보좌관에게 전화를 시킨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불과 하루 만에 “보좌관 전화를 받았다”는 군 관계자의 통화 음성이 국회에서 공개됐다. 이 관계자는 언론에 “검찰이 왜 그런 식의 해명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도 했다.

동부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보좌관 진술은 없었다”던 전날 동부지검 공식 입장과 정면 배치되는 통화 음성이 하루 만에 공개된 상황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동부지검장은 “입장은 없다”며 “어제 입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알아서 쓰라”며 고성을 지르더니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엇이 동부지검장의 심기를 그토록 거슬리게 했는지 황당했다. 피의 사실 공표가 되는 수사 내용을 물어본 것도 아니고 전날 동부지검 스스로 내놓은 “보좌관 관련 진술은 없었다”는 해명이 거짓으로 비칠 만한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 것뿐이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수사 책임자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요청한 것이 그에게는 그토록 불쾌한 것이었을까.

“알아서 쓰라”는 동부지검장의 태도는 결국 세금을 받는 공직자로서 국민을 섬기기보다는 자신을 동부지검장에 앉힌 추 장관에 대한 ‘육탄 방어’를 우선시하겠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동부지검장은 직전에 대검 간부로 있으면서 ‘채널A 사건’의 수사심의위원회에 대검 실무진이 “범죄 성립이 안 된다”는 의견서를 제출하려 하자 이를 막았던 검사다.

앞서 추 장관 아들의 고발 사건을 넉 달간 가지고만 있었던 전임 동부지검장 역시 법무부 차관으로 영전했다. ‘조국 무혐의’를 외치던 검사는 후배로부터 “당신이 검사냐”는 말을 면전에서 듣는 수모를 겪고도 검찰 예산과 인사를 총괄하는 법무부 간부로 승진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대변인은 지방으로 좌천되고, 추 장관 대변인은 중앙지검 요직을 꿰찼다. ‘육탄 압수수색’으로 감찰을 받던 검사는 승진하고, 감찰 책임자는 사표를 냈다. 대통령을 ‘달님’이라 칭송하고 윤 총장을 ‘짜장면 대마왕’이라 조롱한 검사는 지방에서 서울청으로 발탁됐다. 차기 검찰총장을 꿈꾸는 검사는 사표를 내고 떠나는 후배로부터 “그분이 검사냐”는 말을 공개적으로 듣고 있다.

정권은 검사를 인사로 길들이고, 이에 부응하는 ‘애완견 검사’들이 바통을 서로 주고받으며 검찰 요직을 나눠 먹고 있다. 이들이 9개월째 뭉개고 있는 추 장관 아들 사건의 결론도 사실 어떻게 나올지는 뻔하다. 애완견 검사들의 득세를 지켜보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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