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위태로운 '싱글 노후'..5천만원 빚에도 파산 내몰려

작년 개인파산 9383건 분석해보니
파산신청 70%가 50세 이상
동거가족 없는 사람이 60%
90%가 월소득 150만원 안돼
파산원인은 "사업 실패·실직"
전문가 "코로나 파산 대비를"

파산을 신청한 채무자 대부분은 한계선상에 몰린 중장년층으로 나타났다. 1억원이 되지 않는 채무도 갚을 여력이 되지 않아 파산을 선택한 비율도 절반이 넘었다. 지난해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개인파산 9383건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파산을 신청한 채무자를 대상으로 연령·재산 통계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위기에 몰리며 올해 개인파산 접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4일 서울회생법원 개인파산 통계에 따르면 파산 신청인 중 70.7%가 50세 이상으로 나타났다. 채무 총액을 기준으로 봤을 때 5000만원 이하는 26.4%, 1억원 이하는 51.9%로 나타났다. 비교적 소액 채무로도 파산에 내몰리는 중·장년층이 많다는 것이 통계로 드러난 셈이다. 10억원 이상 고액 채무자 비중은 5.33%에 불과했다.

소득 기준으로 살펴봤을 때, 한 달 수입이 1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채무자가 76.9%였다. 월수입 150만원 이하 채무자를 포함하면 88.6%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들의 월수입 중간값은 58만원으로 나타났다. 파산을 신청한 채무자 가운데 동거 가족이 없는 경우도 59.9%로 60%에 육박했다. 31.8%는 이혼 경험이 있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장년층 파산은 어려운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의 사정을 반영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코로나19 사태로 이들의 사정이 더욱 악화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2차 유행이 진행 중이라 타격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중·장년층 파산에 대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집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게 효과가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산에 내몰린 원인은 다양했다. 중복 응답이 가능한 질문에서 사업 실패는 48.1%, 실직·근로소득 감소는 45.1%로 나타났다. 의료비 지출 증가나 보증채무 부담을 원인으로 꼽은 채무자도 각각 21.7%, 11.1%를 차지했다.

개인회생을 신청한 채무자는 파산 신청인들과 나이와 소득 등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올해 상반기 서울회생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채무자 352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연령별로 30~49세 비율이 62.9%로 나타났다. 비교적 근로를 통해 수익을 얻기 쉬운 나이의 채무자는 파산보다 회생을 더욱 선호하는 셈이다. 월 소득 중위값도 191만원으로, 파산을 신청한 채무자에 비해 3배 이상 높았다.

개인회생 신청인은 법원에 제출된 변제계획안에 기록된 채무에서 실제 변제된 사례가 39%였다.

서경환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54·사법연수원 21기)는 "예상보다 개인회생절차에서 실제 변제 비율이 더 높았다"고 했다. 이어 "회생절차를 밟기 위해 생계비를 최대한 줄여 많은 금액을 변제할 수 있도록 변제계획안을 제출하는 사례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개인파산을 신청했던 채무자가 다시 파산 절차를 밟는 사례는 적었다. 지난해 접수된 개인파산 사건 가운데 개인파산을 신청한 적이 있는 채무자 비율과 면책 결정까지 받은 채무자 비율은 각각 4.5%, 3.7%였다.

코로나19 사태를 제외하더라도 노년층 파산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해외에서 의료비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노년층이 파산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해외 사례를 봤을 때 60대 이상에서 건강 문제로 노후 파산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논의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노후 파산이 더욱 확산될 수 있다. 고령층이 더욱 취약한 환경에 놓이기 전에 대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