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해도 여전히 의사"..'의료악법'이 괴물로 키웠다?

한민선 기자 2020. 9.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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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지혜 디자이너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국립공공의료보건대학원(공공의대) 설립에 반발한 대한의사협회의 집단휴진이 보름 만에 종료됐다.

그동안 의사단체의 파업에 공감하지 못했던 국민들이 적지 않았고,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의료진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특히'의사집단을 괴물로 키운 2000년 의료악법의 개정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은 29만명(4일 오후 5시 기준)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청원인은 "의사들이 진료거부를 할 수 있는 이유는 2000년 개정된 의료악법 때문"이라고 밝혔다. 의사들이 파업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2000년 개정된 의료법이 있다는 지적인데, 의료법을 살펴보니 실제 이 둘의 연관성은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2000년 의료법 어떻게 개정됐길래?…살인해도 끄떡없는 의사면허
청원인이 말한 '의료악법'은 2000년 1월 당시 보건복지위원장인 김찬우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으로 추정된다. 당시 국민의 의료 이용 편의와 의료 서비스의 효율화를 이유로 의사 결격 사유가 대폭 수정됐다./사진=국가법령정보센터

청원인이 말한 '의료악법'은 2000년 1월 당시 보건복지위원장인 김찬우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으로 추정된다. 당시 국민의 의료 이용 편의와 의료 서비스의 효율화를 이유로 의사 결격 사유가 대폭 수정됐다.

개정 전의 의료법을 살펴보면,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의 집행이 종료되지 아니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되지 아니한 자'를 결격사유 및 면허취소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어떤 종류의 범죄라도 금고형을 선고받으면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2000년 당시 의료법이 개정되며 면허 취소 사유가 축소됐다. 현재는 의료법을 비롯해 형법상 허위진단서 작성, 위조사문서행사, 업무상비밀누설 등이나 특정 의료법령 관련 법률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인 경우에만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됐다.

쉽게 말해 현행법상 우리나라 의사들은 환자를 상대로 살인, 사체유기, 절도, 강간, 성추행 등의 죄를 지어도 면허가 취소되지 않는다. 반면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국립대학 및 사립대학 교수, 공무원 등의 경우,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으면 전문직과 관련한 등록·자격이 취소되는 법률 규정이 존재한다.

수면내시경 환자 성폭행한 의사도 여전히 병원 운영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실제 개정안 이후 일부 의사들이 강력 범죄를 저지르고도 면허를 유지한 채 환자를 진료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계속 비판이 제기됐다. 2007년 수면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온 여성 환자들을 성폭행한 의사는 징역 7년을 선고받았지만, 그 이후에도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에는 한 개인병원 의사가 간호조무사를 12년 동안 성폭행하고 같은 병원을 운영 중인 사실이 전해져 논란이 됐다.

면허가 취소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 면허 재교부를 신청하면 대부분 받아들여진다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예를 들어 허위 진단서를 작성해 금고형 이상의 선고를 받아 면허가 취소되더라도, 3년이 지나면 면허 재교부가 가능하다. 의사면허가 사실상 '종신 면허'로 불리는 이유다.

이에 의사 면허 취소나 면허 정지의 사유를 늘리거나 면허 취소 후 재교부 기간을 연장하자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다수 등장했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6월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성폭행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박탈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권 의원은 "일본은 벌금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으면 의사면허가 취소되거나 정지되고 미국도 유죄 전력이 있는 의사는 면허를 받을 수 없다"며 "의료인 면허를 규제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업할 수 있는 이유가 의료악법 때문이다?…따져보니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다만 권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의사들의 집단 휴진을 막을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강력 범죄에 한해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파업 이후 전공의와 전임의 278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으며 이를 따르지 않은 응급실 전공의 10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중 4명에 한해 고발을 취하했고, 6명의 전공의에 대한 고발은 유지한 상태다. 의료법에 따라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개시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면허정지 처분이나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청원인이 "지금의 의사집단은 의료법 이외의 어떠한 범죄를 저질러도 면허를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한 부분은 맞지만, "(업무개시명령을 따르지 않아) 3년 징역이나 3000만원 벌금 정도의 공권력은 전혀 무서울 게 없는 무소불위의 괴물이 된 것"이라는 지적은 사실과 다른 셈이다. 만약 업무개시명령을 따르지 않아 의료법에 따라 의사들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게 된다면 현행법 하에서도 면허가 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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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선 기자 sunnyda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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