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 재논의' 공공의대, 전문가들이 내놓는 방안은

주영재 기자 2020. 9. 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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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의전원보다 의과대학이 바람직… 의무복무 끝나도 지역에 정착 유도해야

정부와 의료계가 ‘의·정 협의체’를 구성해 보건의료 현안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의료계는 그간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한방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를 문제삼으며 파업과 집단휴진을 이어갔다. 그중에서도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확대가 갈등의 핵심이다. 지역 간 의료 접근성의 차이가 크고, 필수 의료인력이 부족하다는 공감대는 대체로 있지만 해법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공의대로 감염·응급·분만·수술 등 필수 의료인력을 양성하고, 의대 정원을 확대해 지역의사 선발전형을 도입하자는 것이 정부·여당의 방안이다. 반면 의협 등은 두 정책을 백지화한 후 수가 인상이나 인프라 확충 등을 중심으로 대안을 찾자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의료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필수 의료 인력 확보와 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김태엽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 분회장이 9월 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의사들의 진료 거부를 비판하고 의료인력 확충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늬만 ‘국립’ 안 되도록 지원 확실히 해야

의협은 의사가 부족하지 않고, 오히려 고령화로 인구가 줄면 과잉공급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은퇴하는 의사들이 늘고, 초고령 사회로 가면서 의료수요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과잉공급론에 동의하기 어렵다”면서도 “현재 정부안은 정부가 소기의 목표인 지역의료인 보강과 감염내과, 소아외과, 중증외상 등 비인기과 의사 확보를 실현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지금의 정부안은 지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실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의대 정원을 여러 군데 분산하면 크게 의미가 없다”면서 “같은 의대에서 어떤 사람은 공공의사, 어떤 사람은 일반의사로 나눠 교육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만약 의대 정원을 400명 늘린다면, 공공의대 혹은 국립대 의대를 통해서 하는 것이 좋다”면서 “그 순서도 (수련 교육을 받게 될) 국립중앙의료원과 종합병원급 공공병원의 시설과 인력을 크게 개선한 후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의대 정원 확충과 공공의대 설립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지역의 필수과목 의사 부족이 심각하고, 처우 개선만으로는 분포의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전 국민 7명 중 1명이 의료취약지역에서 산다”며 “의사는 당연히 늘려야 하고,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립이든 사립이든 기존 의대 정원을 늘리는 건 쉽고, 공공의대는 공공적인 의사를 키울 수 있는 장점은 확실하지만 설립에는 적어도 2~3년이 걸린다”면서 “어느 하나만 해야 한다고 할 게 아니라 두 방안을 병행해야 하다”고 말했다.

국립공공의대를 설립한다면 의과대학으로 할지,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으로 할지 선택해야 한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안에 따르면 공공의대는 학부가 아닌 석·박사 과정의 ‘공공보건의료대학원’이다. 이름은 ‘국립’이지만 설립 형태는 법인이라는 점에서 향후 충분한 재정을 지원할지 불투명하다. 법안에 따르면 학생의 입학금, 수업료, 교재비, 기숙사비 등 학업에 필요한 경비를 부담하지만 대학의 인건비, 경상적 경비, 시설확충비, 교육·연구 발전을 위한 지원금 등은 ‘지원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으로 되어 있다.

의전원이 의대로 전환하는 흐름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의전원보다는 6년제 의과대학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의전원은 실패한 모델로, 기초 실력이나 윤리의식, 교양의 측면에서 의대로 입학한 이들에 비해 의전원 출신들이 더 좋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 평가이다.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갖춘 인재들이 사람 중심의 의료를 펼칠 것이라 기대했지만 실제 그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대에 비해 입학 연령이 높은 편이라 빨리 임상에 들어가 돈을 벌려는 현실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도 많아 공중보건의가 줄어드는 부작용도 있다.

조희숙 강원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오는 학생을 대상으로 예과 때부터 공공의료에 대한 소양과 기본 의학 교육을 하는 것이 지역의사 양성 목적에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종합대학이 아닌 경우 2년간의 예과 교육을 위한 교수 인원을 따로 충원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 때문에 조 교수는 “예과 교육 훈련 시스템을 국립중앙의료원 등에 둔다면 의대보다 의전원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봤다. 물론 이 경우에도 국립중앙의료원이 수련기관으로서의 명실상부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시설의 양적·질적 향상과 교수 요원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공공의대 정원 역시 현재의 49명으로는 부족하며, 매년 50명씩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9월 4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정 협의체 구성 합의서 체결식에서 합의서에 서명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무원 임용해 소명감, 자기계발 기회 줘야

공공의대 졸업자들은 졸업 후 10년간 보건소, 지방의료원, 국립병원 등은 물론 보건복지부, 질병 관리청, 시·도 등에서 의무복무를 한다. 우수 인재를 유치할 수 있도록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 파견자를 뽑을 때 우선적으로 선발할 수 있는 근거도 뒀다. 하지만 의무복무 기간이 끝나면 다시 수도권으로 향할 우려가 있다. 지방에서, 그리고 공공기관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료에 종사할 학생을 선발하는 지역의사선발전형을 담은 지역의사법안이 지난 7월 30일 발의됐다. 하지만 현재 공중보건장학제도가 선발 인원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을 볼 때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의대에 입학한 학생들의 집안 환경이 부유한 경우가 많고, 학자금 대출도 용이해 장학금이 큰 유인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공공의대 졸업생을 공무원 신분으로 임용해 신분상의 불안을 해소하고, 해외연수 기회 등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실제 의료원 의사들은 신분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황이다. 지방의료원의 경우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되고, 의료원장과의 계약으로 봉급을 받는 신분이다. 우석균 대표는 “정서적·물질적 뿌리가 있는 지역 고등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선발하고, 공공의료기관을 충실히 만들어 대우를 높이면 지역에서 일하면서도 자기실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의대정원 확대는 사립대 정원을 늘려 사학재벌에 힘을 실어주기보다 국립대 또는 공공의대 중심으로 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인의협 등 시민단체는 그간 국공립의대를 중심으로 정원을 30~50% 늘려 공공의료 인재를 선발해 15년간 의무복무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우 대표는 “내 돈으로 병원 짓고, 내 돈으로 등록금 내서 다니는데 정부가 왜 관여하냐고 말한다”며 “사립대학은 물론 사립대 의대와 병원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정부 재정을 투입해 세운 것임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우 대표는 “코로나 시기에 어떤 경우에도 윤리적 의식을 포기하지 않는 ‘정규군’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의대가 비싸다는 선입견부터 없애도록 장학금 등으로 수련 방식을 공공화하고, 공공의사로 의무복무하는 의사를 키우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역별 국립대 의대와 공공의대, 국립중앙의료원과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 간의 수평적·수직적 네트워크를 마련해 대도시·지방 간의 순환 근무를 원활히 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지역선발전형에 비례해 지역의 전공의 인턴 인원(티오)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강원대 의전원의 경우 졸업생의 14% 정도만 강원도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나머지는 서울·수도권 등에서 일한다. 조 교수는 “전공의 전체 숫자가 우리나라 병원에서 원하는 전공의 숫자보다 훨씬 부족하기 때문에 경쟁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지방의대 출신이라고 해도 서울·수도권의 빅5에서 원하는 전공의 수련을 충분히 할 수 있다”면서 “지역인재전형으로 열심히 뽑아도 일단 서울·수도권으로 전공의 수련을 하려고 떠나면 애향심도 사라지고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다만 지역에 전공의 티오를 확대하려면 수련을 받을 지방대 병원과 교수에 대한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공의대 설립과 의료 격차 해소 등 의료개혁이 지지를 받으려면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할 필요도 있다. 정부·의료계만이 아니라 의료재정의 핵심 기여자이자 의료 정책의 수요자인 시민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우석균 대표는 “역사적으로 의료개혁은 의사집단의 집단적 저항을 극복하면서 이루어졌다”면서 “정부가 양보할 때도 원리 원칙이 있는데 의사와 정부가 밀실협상을 해 끝내는 건 곤란하다”고 밝혔다. 우 대표는 “의료제도는 의사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결정해야 한다”면서 “시민들의 의지에 반하는 의사파업은 기득권자들의 저항일 뿐, 의사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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