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판정승? 당정 백기투항?..내분 휩싸인 의료계
실리에 집중한 최 회장과 명분을 고수한 전공의들이 맞서는 모양새다. 최 회장이 전공의들의 반발에도 정부·여당과 합의에 이른 배경에는 실리론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최 회장과 정부·여당은 공공의대·의대정원 확대 등의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관련 논의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안정화된 이후로 미루기로 합의했다.
코로나19의 치료제·백신의 개발은 빨라야 올해 연말로 예상되고, 치료제와 백신 보급을 통한 전 세계적인 사태 안정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 때문에 집권 후반부에 접어든 문재인 정권 입장에선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 사실상 물 건너 간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에 따라 의협이 정부에 판정승을 거뒀다거나, 당정이 백기투항을 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더욱이 의협은 정부·여당과 협상을 통해 전공의들의 고발 취하,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접수 기간 추가 연장을 얻어내기도 했다. 의협이 적지 않은 실리를 챙겼음을 보여준다.
사실 개원의들이 회원의 다수는 의협으로선 7일 예고된 3차 집단휴진에 나서기에는 부담이 컸다. 여기에 의료계 집단휴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감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결국 추가 파업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의협은 실리를 극대화한 것이다.
의협은 의료계 최대 단체이지만, 활동은 개원의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동네 의원들은 코로나19 상황을 맞아 환자수가 줄면서 일부 경영난을 겪고 있다.
여기에 이른바 '맘카페' 등에서는 집단휴진에 참여한 동네 의원에 대한 '보이콧'까지 이어지고 있어 동네의원 입장에서 집단휴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실제 전공의의 휴진율에 비해 동네병원의 파업 참가율은 매우 저조한 편이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의료계 집단휴진과 관련 공감도를 조사한 결과 '비공감' 응답이 55.2%로, '공감' 응답 38.6%를 앞섰다.
최 회장은 "(전공의 요구대로) 철회 후 원점 재논의를 요구해서 투쟁할 수 있다. 그러나 중단 후 원점 재논의로 합의했는데 무슨 차이가 있어 철회라는 용어에 집착하나"라며 "의료인 자신도 환자들에게 피해를 준다. 철회 후 원점 재논의 요구는 정말 소모적인 투쟁 목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전공의들을 포함한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전공의·전임의·의대생으로 구성)는 명분과 절차를 우선시하는 분위기다.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한데 전공의 측은 정부·여당 협상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박지현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최 회장과의 통화에서 전공의들이 최종 협상안에서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최종 협상안이 협상 과정중에 수정됐으면 내용을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그 과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4일 인스타 라이브를 통해 "(이번 합의가) 최대집 회장의 단독행동인지 그 외 의협 몇몇 이사들과 진행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는다"라며 "전공의협의회와는 협상 테이블도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애당초 요구한 대로 합의문에 더 구속력 있는 '철회' 문구를 담지 않았기에 의협과 정부·여당간 합의문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공의들에 따르면 지난 3일 범의료계 4대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범투위)의 3일 회의에서 도출된 여당과 협상안에는 '법안 철회' 등의 내용이 담겼지만, 최종 합의안에는 이같은 내용이 제외됐다.
'철회'를 명문화하지 않으면 정부가 언제든 다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배경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만, 전공의들은 오는 7일 업무 복귀 여부 및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대전협이 의협의 산하단체인 만큼 합의문을 마냥 무시하고 집단휴진을 이어갈 수는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전협 비대위는 "합의 과정에서 일어난 절차적 문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최 회장 및 범투위 협상 실무단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다"며 "누구보다 분하지만, 합의문이 어떻게 이행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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