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 수입 0..여행사 대표는 오늘도 '배달 콜'만 기다린다

김지아 2020. 9. 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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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후 음식배달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4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위치한 배달의 민족 라이더스 센터의 모습. 뉴스1


9년 차 여행사 대표 이모(48)씨. 매일 아침 서울 강남의 텅 빈 사무실로 출근해 ‘배달 콜’을 받기 위해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씨는 지난 4월에 이어 8월말 부터 다시 자전거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여행사 수입이 연초부터 수개월째 ‘0’를 기록하고 있어 사무실 임대료와·관리비, 유급휴직 중인 직원들 월급을 감당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이씨뿐 아니라 최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배민 커넥트’ ‘쿠팡이츠쿠리어’등 배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배민커넥트는 “누적 지원자수가 22만명"이라고 밝힐 정도다. 자영업이나 아르바이트에서 떨어져 나와 ‘코로나 보릿고개’를 넘고있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이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고 배달 일을 하는 그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경쟁 치열해져 콜잡기 어려워”
#오전 10시 30분. 이 씨의 일과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이 때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가 ‘피크타임’이다. 피크타임에 배달하면 2배 정도 높은 배달료를 받을 수 있다. 평소 1건당 배달료가 약 4000원이지만, 이 시간엔 약 8000원을 받는다. 이씨의 앱에 ‘1.5㎞를 6분 안에 다녀오라’는 메시지가 떴다. 그는 “음식을 픽업하는 시간과 이동 시간을 다 합치면 빠듯하지만, 콜이 잡힌 것만도 다행”이라며 뛰쳐나갔다. 최근 배달원들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1시간에 2~3건을 잡기도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씨가 자전거 배달을 하면서 업체와 주고받은 메시지. 자전거 배달이지만, 계단을 오르내려야 할때가 많다. [사진 이씨 제공]

#정오. 이씨는 종종 황당한 일도 겪는다. 자전거로 배달하지만, 내비게이션이 계단을 오르라고 안내할 때도 많다. 그는 대치동에서 잠실동까지 배달하는 동안 수많은 계단을 마주쳤다. 이 씨는 “이럴 때마다 자전거를 직접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며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크다”고 말했다.


“배달원 안전보다 음식이 우선”

이씨가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타고다닌 자전거. [사진 이씨 제공]

#오후 2시. 오후 1시 30분이 지나면 앱을 끈다. 일주일에 배달 콜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20시간으로 제한돼 있어서다. 저녁 피크타임이 올 때까지 이 씨는 사무실에서 회사 일을 처리 한다. 여행사 수입은 몇달 째 끊겼지만, 고용유지지원금 신청·4대 보험료 납입 등 여전히 할 일은 많다. 이씨가 사무실 임대료 등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비용만 최소 200만원이다. 정부에서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직원들의 월급 90%를 보존하고 있지만, 나머지 10%는이 씨의 몫이다. 그는 “차라리 4월 달에 폐업을 하는 게 나을 뻔 했다”고 한탄했다.

#오후 5시. 저녁 피크타임이 시작됐다. 비가 내리지만 이씨는 오히려 이런 상황이 반갑다. 폭우 등 위험한 상황에선 ‘프로모션’이라는 이름으로 배달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음식을 감싸기 위한 우비도 챙겼다. 그는 “음식을 담은 봉투도 어쩔 수 없이 비를 맞는데 일부 손님들은 불쾌하다며 환불을 요구한다”며 “그 금액은 배달원들이 모두 물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배달원들 안전은 뒷전이라고 했다. 그는 “배달을 하다 넘어져 배달업체에 전화하면 ‘음식은 괜찮냐’고 먼저 묻는다"며 “그럴땐 내 자신이 처량해지고 씁쓸하다"고 했다. 오후 7시까지 이어지는 저녁 피크타임 배달을 마치면 이 씨는 축 처진 몸을 끌고 집으로 향한다.


“2차 재난지원금, 여행업도 포함되길”

지난 5월 시민들이 소상공인 2차 금융지원대출을 신청하고 있다. 소상공인 2차 금융지원대출은 개인사업자에게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서를 기반으로 긴급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상품이다. 뉴스1


이씨가 배달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버는 돈은 약 170만원. 그는 “쿠팡이츠에서는 배달원들 하루 수입이 47만원, 연봉이 약 1억원이라지만, 글쎄 그건 극소수일 것"이라며 “사회적거리두기 2.5단계로 배달 주문도 늘었지만, 못지않게 배달원도 늘어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이 씨는 2차 재난지원금 지급대상에 여행업이 포함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그는 “가족들 생활비도 필요해 지난 5월 긴급대출도 받았다”며 “갚아야 하는 돈인데 하늘길이 언제 열릴지 몰라 막막하다”고 하소연 했다. 이씨는 “올해 초에는 ‘쿠팡 플렉스’에서 택배 배달을 했는데 거기서 나같은 동네 여행사 사장님들을 많이 만났다”며 “2차 재난지원금을 준다는데 PC방이나 음식점과 함께 나같은 여행업자 꼭 포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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